▶ LA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개막공연서 깜짝 등장
▶ 주인공 역 마토스 출연취소 공연 12분 전에 통보 받아
클래식 음악회나 오페라 공연에서는 지휘자나 주역의 갑작스런 변고로 인해 대타가 무대에 서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런 비상사태를 대비해 무대 뒤에 늘 커버(cover)가 대기하고 있는데 실제 그런 일은 드문 편이라 커버는 신인이나 무명이 맡곤 한다. 그런데 이런 기회에 무명 연주자가 대타로 나서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 스타가 된 예가 적지 않다. 굳이 지휘자 토스카니니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최근에는 한국인 중에도 세계적인 뉴스가 된 인물이 둘이나 있는데 성악가 사무엘 윤과 홍혜경이다.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은 2012년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의 개막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공연 4일 전 전격 교체된 타이틀 롤을 맡아 공연을 성공으로 이끌어 독일 언론의 격찬을 받았다. 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홍혜경은 2년 전 5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개막 하루 전 맡게 된 ‘로미오와 줄리엣’의 10대 소녀 줄리엣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릿 저널이 대서특필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신문에서 보기만 하던 그런 일이 지난 9일 내가 참석했던 LA 오페라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Flying Dutchman·이하 네덜란드인) 오프닝 공연에서 일어났다. 주인공 젠타 역의 엘리자베테 마토스(Elisabete Matos)가 개막 12분 전 갑자기 공연을 취소하는 바람에 대타 소프라노 줄리 매커로브(Julie Makerov)가 무대에 오른 것이다. 포르투갈 출신의 마토스는 이날 LA 데뷔공연을 앞두고 의상과 분장까지 마쳤으나 7시18분 감기 기운으로 인한 가슴체증을 호소하며 물러섰고, 이 바람에 LA 토박이인 매커로브가 대신 LA 오페라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매커로브는 2010년 토론토의 캐나디언 오페라에서 이 역을 노래한 적이 있으며 지난 4주 동안 있었던 이번 공연의 리허설에 모두 참석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무대에서 연습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막이 오르기 불과 12분 전 출연 통보를 받았을 때는 너무 놀라서 그 흥분이 공연 끝날 때까지 가시지 않았다고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또 다행이었던 것은 ‘네덜란드인’의 여주인공은 거의 한 시간이 지나고 2막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그녀가 발성 연습과 분장할 시간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객석에는 그녀의 남편과 친구 몇 명이 앉아 있었다니 완벽한 데뷔 무대였던 셈이다.
공연은 어땠냐고? 스타 탄생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썩 훌륭하게 배역을 ‘커버’하며 이날 커튼콜에서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런 경우 관건이 되는 것은 얼마나 잘했나가 아니라 얼마나 실수가 없었는가이므로, 매커로브는 살짝 ‘삑사리’를 몇 번 내긴 했어도 한 차례의 실수 없이 공연을 힘차게 끌고 가 사람들의 기립박수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휘자 제임스 콘론은 “독일에서 활동할 때 이런 일을 자주 봤는데 매커로브는 정말 침착하고 훌륭했다”고 칭찬했고, 상대역 주인공 네덜란드인을 맡은 토머스 토마손 역시 자신도 2007년 바르셀로나에서의 ‘네덜란드인’ 개막공연 때 주인공의 커버로 출연했었다며 “매커로브는 너무나 잘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한편 토마손은 이날 공연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호연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어둡고 음울한 캐릭터, 저주받은 사나이의 운명을 고독하고 강렬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그의 존재만으로도 이번 공연은 충분히 볼만하다 하겠다. 젠타의 약혼자 역(코리 빅스)을 제외한 출연진과 합창단, 오케스트라 모두 아주 수려한 연주를 들려준다. 세트는 미니멀리스틱 한 무대로 단순하게 처리됐지만 뱃사람과 군중의 의상이 멋있었고 그걸 잘 살려준 음산한 조명도 좋았다.
‘네덜란드인’은 바그너의 비교적 초기작이기 때문에 너무 길지도 지루하지도 않고, 음악도 아름다워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오페라다. 남은 5회 공연(3월17·21·24·27·30일)에는 원래 캐스트인 엘리자베스 마토스가 출연할 예정이다.
티켓 문의 www.laopera.com
(213)972-8001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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