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인 로즈 크레센조가 HIV/AIDS 교육용 모임에서 받은 콘돔을 들고 있다.
HIV 바이러스는‘사망의 전령’으로 통했다. 일단 이 바이러스의 방문을 받았다 하면 반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즉 에이즈(AIDS)는 그 자체로 죽음의 다른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건 40년 전의 얘기다. 크게 개선된 항레트로바이러스 덕분에 HIV 바이러스 감염자도 이제는 거의 정상적인 수명을 누릴 수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에이즈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등장한지 40년이 지난 지금 의료계는 노화와 HIV가 교차하면서 만들어낸 독특한 도전에 직면한 상태이다.
신규 HIV감염자 10명 중 1명이 50세 이상인데
정부대책은 성생활 활발한 젊은이들에만 초점
골다공증·우울증 등 또 다른 고통에도 무관심
40년은 길다면 긴 세월이지만 학자들은 이제야 비로서 HIV, 혹은 AIDS 감염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의학적 치료가 무엇이고 적절한 지원방법은 무엇인지를 파악해가고 있다. 병은 이미 ‘중년기’로 접어들었지만 이들에 대한 이해정도는 아직도 ‘초딩’ 수준이다.
학자들은 나이든 HIV 감염자, 혹은 고령의 에이즈 환자들이 잊혀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에이즈와 HIV 연구는 아무래도 성생활이 활발한 젊은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다. 이런 와중에서 노인들은 관심의 레이다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미국내 노령 에이즈 인구는 무시하지 못 할 규모다. 2008년 기준으로 50세 이상인 미국내 HIV 보균자는 전체 감염자 인구의 20%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이 연령그룹이 오는 2020년에는 전체 HIV 보균자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원들은 HIV와 노화 사이의 상관관계를 주목해왔다. 이들 모두 인체 면역시스템에 타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노화가 진행되면 면역시스템의 세포들은 더 이상 분열을 하지 못하는 단계에 도달한다.
UCLA의 면역학 전문가인 리타 에프로스 박사에 따르면 정상적인 세포들이 일으킬 수 있는 세포분열의 횟수는 제한적으로 프로그램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한계에 도달하계 되면 면역 세포들은 더 이상 세포분열을 일으키지 않는다. 면역 체계가 성장을 멈추는 셈이다.
HIV 보균자의 경우 면역세포는 사력을 다해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에 맞서 싸운다.
힘겨운 ‘침입자’를 맞아 전투를 치르려니 아무래도 ‘병력 보강’이 필요하다. 물론 병력을 증원하기 위한 방법은 세포분열 외에는 없다.
하지만 세포분열에는 한계가 있다. 시종일관 세포 분열에 의존해야 하는 탓에 면역세포들은 더 이상 분열을 할 수 없는 종료점에 일찌감치 도달하게 된다.
적은 완강히 버티는데 이들을 퇴치할 아군의 병력은 남아 있지 않다. 이 시점에 도달하면 말 그대로 게임 “끝”이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노화 관련 질병들을 초래하는 염증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이 같은 면역체계의 변화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HIV보균자들이 만성질환을 더욱 자주 일으키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HIV 보균자들이 가장 자주 걸리는 ‘4대 질병’으로는 심혈관 질환, 암, 당뇨병과 만성 호흡기 질환이 꼽힌다.
보균자들은 골다공증에도 취약하다. 뼈가 약해져 뻑 하면 수수깡처럼 부러진다. 만성 간 및 콩팥 질환, 우울증도 HIV 보균자들을 유난히 자주 쫒아 다닌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는 죽음의 문턱에서 HIV 감염 환자들의 목숨을 숫하게 구해냈다.
하지만 빛은 그림자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UCLA 임상 에이즈 리서치/교육 센터의 주디스 쿠리어 박사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들은 뼈 밀도 감소, 골절위험 증가 등의 부작용을 동반한다고 경고했다.
나이든 HIV 보균자들의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데 비해 의료서비스 제공자들은 이들을 효과적으로 다룰만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우울증이다.
HIV에 감염된 나이든 성인들 가운데는 우울증 환자가 유난히 많다.
뉴욕 소재 ‘에이즈 커뮤니티 리서치 이니셔티브 오브 아메리카’의 스티븐 커크패트릭은 뉴욕의 고령 HIV 감염자 인구 가운데 50%가 우울증 환자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HIV 보균자들의 우울증은 만성적이다. 게다가 돌림병만큼 확산속도가 빠르다. 미국이건 영국이건 사정은 매 한가지다.
우울증에 걸린 HIV 보균자들은 약을 시간 맞춰 복용하는 법이 거의 없다. 압도적인 다수가 그렇다.
이들의 우울증은 항울제만으로는 다스려지지 않는다. 항울제는 정답이 될 수 없다.
커크패트릭은 소셜네트워크가 해지고 얇아지면서 우울증이 생겨난다고 지적했다.
나이 지긋한 HIV 보균자들의 공통점은 가족이나 자녀가 없다는 점이다. 잔소리하고 챙겨줄 사람이 전혀 없으니 마음은 외롭고 병든 몸은 고단하다.
이들은 주로 친구들에 의지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대부분의 ‘친구’는 HIV 보균자들이다.
노화와 에이즈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디면 우울증이 심화될 수 있다.
HIV 인구가 계속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이들에 관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실들이 새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예일대 에이즈 협진센터의 소장인 에이미 저스티스는 “65세 이상인 에이즈 환자들에 대해 사실 아는 바가 별로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65세에 도달할 때까지 살아남은 에이즈 환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드니 대학의 공중보건 연구원인 조엘 네긴은 나이든 HIV 환자에 대해 잘 모르는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을 아예 에이즈 인구 집계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세계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정보수집시 컷오프 연령은 49세로 잡혀 있다. 이 보다 나이가 든 환자들은 아예 무시된다. 존재하되 인정받지 못하는 그림자들이다.
이 때문에 나이든 성인들 사이에서 에이즈를 차단하려는 노력은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된다.
미국의 경우 신규 HIV감염자 10명당 1명은 50세 이상이다. “나이는 콘돔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다.
HIV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도 나이 들어 외롭기는 건강한 동년배와 다를 바 없다. 젊은이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이들도 사랑을 한다. HIV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50세 이상 환자들은 대부분 정부의 레이다에 뜨지 않는 ‘그림자 인간’이다. 이들에 관한 획기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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