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궁전으로 불리는 크루즈가 고장이 나서 탑승객들이 조난 수준의 어려움을 겪는 사건이 심심찮게 터지곤 한다. 화재 등의 이유로 크루즈 내 전기 시스템이 파괴되면 탑승객들은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발이 묵인 채 갑판에서 새우잠을 자고 화장실에서 오물이 넘치는 환경에서 며칠 씩 견뎌야 한다. 크루즈 선박이 무사히 항구로 견인되고 나서야 지옥의 시간은 끝이 나는 것이다. 선박에 엔진이나 발전기 고장에 대비한 지원 시스템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화재로 전력 잃으면 며칠 씩 발 묶여
승객들 갑판에서 새우잠 자며 불안
뉴욕, 용커스에 사는 77세의 버니스 스프렉만 할머니는 지난 2010년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가 악몽 같은 기억만 얻었다. “정말 지옥 같았다”고 그는 말한다. “화장실이 너무 캄캄해서 구명 자켓을 이용해야 했어요. 자켓에 작은 불이 있어서 반짝 반짝 하거든요.”
그는 카니발 크루즈의 스플렌더를 탔다가 이런 경험을 했다. 그런데 같은 카니발 크루즈 소속의 트라이엄프의 승객 4,200명이 이번에 또 같은 경험을 했다. 이들 승객은 오물로 질척거리는 카펫에서 케첩 샌드위치를 먹으며 5일을 버텨야 했다.
두 선박 모두 갑판 밑에서 화재가 발생, 전기 시스템이 파괴되면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스플렌더 안전사고에 대한 해안경비대의 1차 조사에 의하면 화재 진압 행동 수칙에 대단한 허점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돌려서 열게 되어있는 밸브를 잡아 뽑으라고 사용 안내서에 적혀있는 것 같은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지 2년이 지난 지금 스플렌더 화재 사건 진상에 대한 최종 보고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크루즈 선박 안전문제를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서로 떠넘기는 데서 생기는 일이다.
스플렌더는 미국을 본거지로 하고 있었지만 법적으로는 파나마에 등록이 되어 있다. 다시 말해 파나마 해양청이 조사를 주도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2010년 화재 이후 파나마 당국은 미 해안 경비대에 조사를 일임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양국의 관리들이 각기 준비한 보고서 초안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여러 달을 보낸 것이었다.
파나마의 한 관리에 의하면 파나마 해양청은 지난 2012년 10월 스플렌더 보고서에 대한 검토를 완료했다. 하지만 해안 경비대의 리사 노박 대변인은 해안 경비대 보고서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카니발 트라이엄프 케이스는 바하마 당국이 조사를 하게될 것이다. 선박이 바하마에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크루즈 선박 안전문제를 다룬 연방상원의 제이 록펠러 의원(민? 웨스트버지니아)은 크루즈 선박들이 이중생활을 하는 것 같다고 해안 경비대 측에 서한을 보냈다. 항구 가까이 있는 동안에만 감독을 받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고 나면 누구의 규제도 없이 완전히 자기 세상이라는 것이다.
크루즈 업계 대표들은 크루즈 휴가가 대단히 안전하며 연간 2,000만명이 별 문제 없이 크루즈를 탄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에 대한 가장 황당한 예외가 지난해 이탈리아 해안에서 일어났다. 카니발 산하 회사가 운영하는 코스타 콘코디아가 해안에 좌초해 32명이 사망했다.
트라이엄프의 경우 선박의 안전장비로 불길을 진화했다고 해안경비대는 밝혔다. 그리고 트라이엄프와 스플렌더 모두 승객이나 승무원 누구도 심한 부상 없이 무사히 육지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렇게 무사 귀환한 덕분에 대부분 여행객들은 크루즈 예약을 하면서 깨닫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전력이 끊길 경우 배가 항구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할 지원 시스템을 갖춘 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시스템을 갖추자면 돈이 들기 때문에 크루즈 업체들이 눈을 감는 것이다.
그 결과 선박의 엔진이 꺼지고 온갖 불편과 위험을 초래하는 사건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12년 연말에는 콘코디아의 자매 선박인 코스타 알레그라가 발전실에서 불이 나 전력을 잃으면서 인도양에서부터 견인되어야 했다.
트라이엄프, 스플렌더 같은 선박 승객들은 그래도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배가 고장 났을 때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다. 만약 폭풍우 속에서 배가 서버렸거나 혹은 해안에서 더 먼 곳이나 해적들이 출몰하는 곳에서 사고가 났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을 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크루즈 업계는 현재 선박 규모를 대폭 키운 신세대 크루즈를 도입하고 있어 전반적 안전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가 있다. 로얄 캐리비언의 오아시스 오브 더 시스 같은 신형 거대 선박은 총 5,400명의 승객과 2,160명의 승무원을 태울 수 있다. 스플렌더 같은 기존의 선박 탑승자 보다 1/3이 더 많은 숫자이다.
어떤 선박에서든 탑승자들을 대피시키는 것은 위험한 일인데 오아시스 같은 초대형 선박에서 승객들을 대피시키자면 보통 일이 아니다. 오아시스는 6,500명에 대한 구명보트를 구비하고 있다. 최대 인원이 탔을 경우 1,000석이 부족한 것이다.
로얄 캐리비안의 신시아 마티네즈 대변인은 필요할 경우 승무원들은 비상 탈출로로 미끄러져 내려가 구명뗏목을 타면 된다고 설명한다.
해양 전문가들이 크루즈 안전대책을 개선하라고 촉구한 것은 트라이엄프나 스플렌더 세대의 배가 건조되던 10여 년 전 부터였다. 지난 2000년 유엔의 선박 안전문제 담당기관인 국제 해양기구는 크루즈 안전지침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크루즈 선박에 지원 엔진과 발전기를 갖추라는 것이 그 하나이다. 화재나 다른 원인으로 선박의 주 엔진이 작동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2006년 유엔 해양기구 규정에 따라 2010년 7월 이후 건조되는 크루즈 선박들은 이런 시스템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지난 10년 크루즈 업체들은 증가하는 소비자 수요에 맞추느라 선박의 규모만 경쟁적으로 늘렸을 지원 시스템을 자발적으로 추가하지는 않았다. 간단한 논리였다. 선박 안에 설비 보다 객실을 많이 만들어야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재 안전을 위한 지원 시스템을 갖춘 크루즈 선박은 10척 내외이다. 로얄 캐리비언의 오아시스와 자매 선박인 얼루어 오브 더 시스는 모두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마티네즈 대변인은 말한다.
지원 시스템 없는 크루즈를 탄다면 바다 한가운데서 악몽 같은 경험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스플렌더에 탔던 스프렉만 할머니는 최근 트라이엄프 고장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혔다고 한다. 운영회사인 카니발의 안전 불감증을 말하는 것이다.
“저들이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또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요.”
<뉴욕 타임스 -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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