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다 익스프레스’ 창업주 앤드류·페기 청 부부
‘팬다 익스프레스’(Panda Express)는 미국 내 대표적인 전국 규모의 중국 음식 체인이다. 동네 스트립 몰뿐 아니라 대형 샤핑몰마다 어김없이 자리 잡고 달콤새콤한 냄새를 풍기며 고객들의 미각을 자극하곤 한다. 팬다 곰을 로고로 삼은 팬다 익스프레스가 하루아침에 미국인의 식탁을 점령한 것은 아니다. 포브스는 2월4일자에서 팬다 익스프레스 설립자 부부의 인터뷰를 통해 대형 샤핑몰 음식부스를 점령하며 미국인들을 사로잡은 비결을 파헤쳤다. 팬다 익스프레스는 앤드류 청(65)과 페기 청(62)이 1973년 중소기업청 융자(SBA 론)와 친척들에게 빌린 돈을 합쳐 6만달러로 일궈낸 패스트푸드 중국 음식점이다. 올해 설립 40주년을 맞는 팬다 익스프레스는 지난해 총 매출이 170억달러를 넘어섰다. 본사는 LA 동쪽으로 20여마일 떨어진 로즈미드에 위치해 있으며 미국 내 42개 주와 멕시코시티에 팬다 익스프레스와 식당형 중국 음식 체인‘팬다 인’(Panda Inn), 일식 패드스푸드 체인인‘히바치-산’(Hibachi-San) 등 1,500여개의 업소를 운영 중이다. 다음은 설립자인 청씨 부부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1983년 첫 패스트푸드 중국음식으로 글렌데일에 오픈
투자·융자 없이 가능한 돈만 사용, 건강한 재무 유지
주방장·웨이터가 부사장으로… 더불어 성장에 자부심
앤드류: 제2차 대전 발발 2년 후에 중국 양쯔에서 태어났고 5세 때 가족이 모두 대만으로 탈출했다가 8년 후 일본으로 이주했다.
페기: 미얀마에서 태어났으나 가족이 홍콩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자랐다. 미국 대학으로 유학와 캔사스주 볼드윈에 있는 베이커 대학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앤드류: 미주리 대학으로 옮겨 수학 석사를 받았고 페기는 거기에서 전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매 주일마다 뉴욕에서 식당 웨이터 일을 했다. 아버지는 요리사였지만 식당을 구입할 능력은 없었다. 이것이 매우 불만이었고 언젠가는 꼭 내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페기: 과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함께 식당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앤드류: 뜻밖의 행운이 찾아 왔다. 사촌이 할리웃에 ‘팅호’(Ting Ho)라는 식당을 리스했다. 사촌은 영어를 못해 내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1972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식당에서 주 7일 열심히 일을 했고 월급은 한달에 800달러를 받았다. 몇 개월 후 사촌과 의견충돌이 생겨 그곳을 나와 패사디나에 있는 한 식당을 인수하기로 했다. 아버지와 나는 다른 사촌들에게 빌린 돈과 SBA융자로 6만달러를 마련해 1973년 6월8일 ‘팬다 인’을 오픈했다. 여기서 부모님, 남동생, 여동생 등 가족 모두가 무보수로 일을 했다. 돈이 없어 샌개브리엘의 방 2개짜리 아파트에서 온 가족이 살았다. 페기가 자주 놀러왔고 1975년 결혼했다.
페기: 3번째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맥도널 더글라스와 콤탈/3M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앤드류: 아버지가 1982년 별세했다. 내가 집안의 가장이 됐고 홀가분했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1982년 글렌데일에 ‘팬다 인’ 2호점을 오픈했다.
페기: 그때부터 나도 가족 비즈니스에 뛰어들게 됐다.
앤드류: 식당을 하면서 도나휴 패밀리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테리 도나휴는 UCLA 수석 풋볼코치였고 그의 동생인 댄이 마침 글렌데일 갤러리아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들이 그곳에 팬다 익스프레스를 열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1983년 10월 첫 패스트푸드 중국 음식으로 팬다 익스프레스를 열게 된 것이다. 인기는 폭발적이어서 1985년 5~9개를 더 오픈하거나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페기: 참 기회가 좋았다. 첫 10년 동안은 대형 사핑몰에만 업소를 열었다.
앤드류: 처음에는 각 업소의 운영을 따로따로 했었다. 왜냐하면 이들을 운영하고 관리할 능력이 아직 없었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반스 마켓의 회장인 빌 데이빌라가 단골 손님이었다. 그에게 반스 수퍼마켓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설득했다. 그래서 샤핑몰 이외에 처음으로 팬다 익스프레스가 반스마켓에 문을 열게 됐다. 난 매우 보수적이어서 처음에는 작은 공간을 잡았고 일주일에 6,000~7,000달러의 매출이 생겼다.
페기: 길거리 업소는 샤핑몰보다 고객이 많지 않다. 그래서 각종 디스카운트 프로그램과 음식을 소개하는 광고로 거리 마케팅을 시작했다. 아시안 음식에 호감을 갖고 이익을 남기기에 좋으며 적당한 렌트비를 받는 지역을 골라야 했다. 낮 시간대 행인들이 많고 밤에도 접근하기 쉬운 코너가 제일 좋은 위치다.
앤드류: 업소가 문을 열 때까지의 모든 준비는 내가 맡았고 페기는 그 후 운영과 관리를 맡았다.
페기: 엔지니어인 나로서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주문을 간편하게 받을 수 있게 1980년대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마 컴퓨터를 최초로 쓴 업체 중 하나였을 것이다. 본사에 앉아서도 고객들이 좋아하는 음식의 종류를 파악할 수 있다.
앤드류: 식당을 더 크게 만들었고 분위기도 바꾸었다. 음식가격은 조금 높은 편이다. 그래서 인건비 절약 방법을 찾았다. 서비스가 좋아야 비즈니스가 잘 된다. 직원들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주효 했다.
페기: 80년대 후반 들어 중국 음식은 ‘맘 앤 팝’(가족경영) 식당을 의미했고 체인점은 없었다. 1973년 전까지 중국 식당은 ‘찹 수이’ 정도나 서브했었지만 중국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독특한 요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팬다 익스프레스도 세련되고 좀 더 전통적인 음식으로 발전했다.
앤드류: 40주년의 해이다. 그동안 한 푼도 투자를 받은 적이 없고 은행에서 큰 돈을 빌린 적도 없다. 항상 사용할 수 있는 만큼만 사용해 건강한 재무구조를 유지했다.
페기: 1997년 254개 스토어를 열었고 1억7,87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면서 수억달러대 회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급망 시스템이었다. 제3자를 통해 물건을 공급하고 체인 형식으로 운영했다.
앤드류: 대부분의 스토어를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대학과 같은 기관과 협상을 할 때는 회사가 운영권을 따고 셋업을 도와준다. 그리고 양질의 서비스를 위한 교육과 감독을 맡는다. 비즈니스는 그러나 소유주 자신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만약 성장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근처에 비즈니스가 들어올 것이고 결국 망하고 만다.
페기: 앤드류는 성장을 추구하는 안목이 있다. 나는 시스템 방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 지에 초점을 맞춘다. 결혼했다고 모든 것이 다 쉽게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 의견충돌을 잘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 것이 맞다” “네 것이 맞다”가 아니다. 모든 사람의 아이디어가 가미된 다른 방법이 제일 좋다. 2010년 목표였던 1억6,900만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앤드류: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면허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 멕시코로 진출했고 곧 캐나다로도 갈 것이다. 많은 대학에 들어가 있다. 공항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정치적 끈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페기: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집어넣는(올인 하는) 주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민자다. 우리에게는 하면 된다는 마음 가짐이 있다. 또 검소하다. 1983년에서 2000년까지, 모든 새로운 가게를 오픈할 때마다 지원팀을 꾸린다. 모든 팀들이 한달가량 한 아파트에서 산다. 또 수퍼바이저도 호텔이 아니라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
오늘까지 비즈니스 성장과 회사 사람들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낀다. 식당 주방장과 웨이트레스로 같이 했던 이들이 회사의 부사장을 맡고 있다.
세세한 것에 신경 쓴다. 팬다에서는 아무리 작은 일도 우리에게는 큰 일이 된다. 우리는 매일 함께 애채를 썬다. 옆길은 항상 청결하다. 화장실은 깨끗하고 예쁘다. 작은 것 하나로도 고개들은 눈치챈다.
경쟁을 예상해 1992년 샤핑몰에 히바치-산을 시작했다. 일본 식당들이 팬다 익스프레스처럼 중국 음식을 팔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방어 전략이다.
끊임없이 배운다. 리더십과 영감을 얻는 책들을 구비하고 읽는다. 스티브 잡스 등 여러 가지 책들을 사서 싼 값에 직원들에 판다. 책을 읽고 나면 분명히 무언가 남을 것이며 그것이 회사에는 밑지고 판 책값을 충당해 주는 원천이 된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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