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훌리오 빌도솔라는“거시적으로 볼 때 스페인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말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봉급 정산업무를 다루는 다국적 기업 중역으로 6년 간 일한 훌리오 빌도솔라(38)는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 인근으로 이주했다. 금융위기를 맞은 모국과 직업적 재정적 연결고리들을 모두 끊어버리는 대 결단이었다.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일하게 될 그는 이주에 앞서 스페인 은행에 있던 예금을 먼저 영국 은행으로 이체했다. 스페인의 경제가 악화하면서 돈과 사람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는 엑소더스 현상이 일고 있다.
경제악화 위기감에 예금 대거인출
부유층 이어 중산층도“떠나자!”
“거시적으로 볼 때 스페인의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빌로솔라는 지난 주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런던 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말했다.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스페인은 그리스 다음 타자가 될 것이고, 가치가 뚝 떨어진 페세타를 붙들고 있는 처지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경제가 계속 악화되다가 스페인은 결국 유로 존에서 탈퇴할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화폐가 유로에서 이전의 페세타로 복귀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스페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스페인이 그리스처럼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상황에 이를지라도 그런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기는 이직 시기상조이다. 하지만 조금만 형편이 되면 저마다 돈을 국외로 빼돌리고, 스스로 해외로 탈출하는 것이 한 추세가 되고 있다.
지난 7월 은행에서 인출된 예금은 750억 유로 혹은 940억 달러로 기록적이었다. 이는 스페인의 총 경제적 생산 규모의 7%에 해당하는 액수로 국가 경제 시스템이 버텨낼 수 있을 지에 의문이 생기면서 대규모 인출 사태가 일어났다.
이같은 예금 인출은 유로존의 심각한 문제인 광범위한 자본 이탈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무라의 최근 보고에 의하면 스페인에서 빠져나가는 자본은 지난 3개월 국내총생산의 50%에 달하는 액수이다. 대부분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과 채권을 팔아치운 결과이지만 스페인 국민들이 예금을 외국 은행으로 이체한 것도 한 몫을 한다.
이같은 추세는 지난해 중반부터 가속화한 것으로 스페인 은행 시스템에 대한 유럽연합의 1,000억 유로 지원 약속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있다.
스페인으로 볼 때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엑소더스 물결에 지식인층과 비즈니스 엘리트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업률이 25%에 달하는 나라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데 사람들이 신물이 난 것이다.
공식 통계에 의하면 영국에서 취업하기로 등록된 스페인 국민은 지난해 3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몇 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것은 1년 전에 비해 25% 증가한 수치이다.
바르셀로나의 폼페우 파브라 대학 경제학자인 호세 사르시아 몬탈보는 “패닉 현상이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부자들은 이미 돈을 빼돌렸습니다. 이제 전문직 종사자들과 중산층이 돈을 독일이나 런던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분위기가 아주, 아주 나쁩니다.”
유럽중앙은행이 채권시장에 개입함으로써 스페인 등 재정위기 국가들의 경제 시스템을 개선해주겠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전망은 개설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스페인의 그림은 점점 암울해지고 있다.
지난 주 스페인 정부 은행구제기금은 모기지 대출 거대은행인 방키아에 50억 유로를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은행은 파산과 함께 지난 5월 국유화 되었다. 그리고 다른 지방정부들에 이어 지난 3일에는 안달루시아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스에서 은행들로 점차 자본이 돌아오고 있고 유로 존의 다른 문제 국가들인 이탈리아, 아일랜드, 포르투갈에서 예금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스페인에서 돈과 사람이 대거 빠져나가는 엑소더스 현상은 유럽연합 정책결정자들에게 경고하는 바가 있다. 아무리 구제금융 지원을 해도 스페인의 경제가 엉망인 한에는 패닉현상을 멈출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경고이다.
그것은 그리스에서 배운 교훈이기도 하다. 유럽연합이 여러 차례 구제금융 지원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서는 지난 2009년 이후 총 예금고의 1/3 정도이 인출되었다. 화폐가 유로에서 이전의 드라크마로 돌아갈 지 모른다는 대중적 우려 때문이었다.
스페인은 파산 직전의 그리스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경제 규모가 훨씬 크고 다변적이며 부채도 더 적고 채권시장은 여전히 기능을 하고 있다. 스페인 은행에서 돈이 단거리 질주라기보다는 조깅 수준으로 빠져나간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모간 스텐리 자료에 의하면 소매업과 기업 예금은 지난 2011년 7월과 비교해 10% 떨어졌지만 전반적으로 스페인의 예금은 풍성한 편이다. 전체 예금 액수가 2조3,000억 유로에 달한다. 하지만 엑소더스가 시작되면 예금 인출은 합리적 사실과 분석을 뛰어넘기 일쑤이다.
이같은 예금 대거 인출의 불을 지핀 것은 방키아의 실패였다. 은행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정부 관리들의 확언만 믿었던 스페인 예금주들에게 방키아 파산은 크나 큰 충격이었다. 이어 정부가 방키아를 인수하자 국민들은 2001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예금이탈을 막기 위해 취한 예금계좌 동결조치를 떠올렸다. 이후 수백만 아르헨티나 인들이 스페인으로 이민와서 그 절망적 법적 투쟁과 날아가버린 예금에 관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전했다.
당시 아르헨티아에서 일하던 스페인 사람 에두아르도 페레즈(48)는 그 사태를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다. 그 역시 아르헨티나 예금 계좌에 모아두었던 돈의 4/5를 날렸다. 그의 친구들 중에는 예금 전부를 잃어버린 케이스도 있다고 한다.
스페인 북부 도시 빌바오에 사는 페레즈는 최근 스페인 은행에 예금해두었던 유로 중 1/3을 싱가포르 달러로 바꿔 싱가포르의 은행에 집어넣었다.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다 몇 개월 전 실직한 페레즈는 요즘 여행 웹사이트와 블로그를 꾸려나가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취업 전망이 점점 흐려지고 있어 예금을 뒤따라 싱가포르로 가서 아내와 새 삶을 시작해볼까를 고려 중이다.
영국의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스페인인 직원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모국의 사람들로부터 문의 전화를 받는다. 어떻게 해야 런던에 예금계좌를 개설하는 지에 대한 질문이다. 기꺼이 비행기를 타고 당일로 런던에 오겠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대부분 은행들이 새 구좌를 열려면 본인이 직접 오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 인근으로 이주한 빌도솔라 역시 이런 절차로 런던에 예금 구좌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뒤 이어 가족들을 모두 이끌고 아예 이주를 한 것이었다. “슬프지만 내가 보기에 당장으로서는 스페인에 미래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뉴욕 타임스 -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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