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 영화제에서 관객상 등 2개 수상…입양아 `성장소설’
아이들이 눈덮힌 들판에서 뛰어놀며 부르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영화는 시작됐다. 고아원의 배식 장면으로 바뀌고 남들보다 식사 속도가 느리지만 마지막 숟갈까지 밥그릇을 놓지 않는 소년이 클로즈업된다. 다섯 살의 전정식이다.
13일 밤(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플라지 극장에선 `피부색 - 꿀색’이란 영화가 상영됐다. `브뤼셀 국제 영화제’의 주요 초청 작품 중 하나다.
9일 폐막한 `제36회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장편 부문 3개 상 중 하나인 관객상과 특별상인 `유니세프(국제아동기금)상’을 받았다.
전정식(47)이 2008년 출간한 2권 짜리 동명 원작 만화를 토대로 그와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로랑 브와로가 함께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영화 제목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입양될 당시 서류에 적힌 피부색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누군가가 흔히 사용하는 살색이나 노란색이란 말 대신에 당시로선 `상상력 넘치는’ 단어일 수 있는 `꿀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영화는 전정식이 1970년 벨기에로 입양돼 융 헤닌(Jung Henin)으로 불리며 사춘기가 되기까지 갈등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부모와 형제 등 가족들과의 사랑과 갈등, 연애감정, 숱한 내면의 고민들…이런 과정을 거쳐 어느덧 한 뼘 이상 훌쩍 자라나는 모습. 여느 성장 소설, 성장 영화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동양에서 서양으로 입양된 아이의 성장기라는 점에서 고민과 갈등의 내용과 색깔이 사뭇 다르다. 전정식이면서 융 헤닌이기도 한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이를 극복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은 독특한 것이다.
양부모의 사랑, 형제들 간의 우애, 친구들과의 우정, 벨기에 어른들의 따뜻한 배려만 그려져 있지 않다. 생부모에 대한 아이의 그리움과 고독, 성적표를 고치고 부지불식 간에 학교 친구가 흘린 지갑을 숨기는 비행, 훈계의 채찍질을 하는 부모에 대한 반항 등도 숨기지 않고 그리고 있다. 양부모는 친자식과 다름 없이 똑같이 사랑하고 훈육하는 것이지만 어린 융 헤닌, 아니 전정식은 채울 수 없는 결핍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며 악몽을 꾸기도 한다.
영화는 어린 정식이 양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과정과 그의 내면이 중심이다. 대부분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돼 있다. 다큐멘터리답게 양부모가 촬영한 어릴 때의 비디오 필름, 한국전쟁과 이후 피폐한 한국의 상황, 홀트아동복지회 관련 자료 영상들이 삽입됐다.
전정식이 영화 촬영팀과 함께 찾은 서울의 현재 모습도 몽타주에 사용됐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는 모습과 남대문시장 등 서울 거리가 과거의 한국과 대비된다. 고궁의 연못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정식의 뒷모습과 서울 지하철 창문에 비친 그의 무심한 얼굴이 벨기에에서의 성장 과정과 교직된다.
영화는 무겁지만은 않다. 작가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비장하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유머가 섞인 시선으로 관조하는 듯이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투명한 색채의 아름다운 2D 풍경을 배경 삼아 만화 속 3D 인물들이 살갑게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이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해 준다.
그럼에도 관객들의 마음은 가볍지 않다. 특히 한국인 관객들은 착잡하다. 청년기까지 그린 만화와 달리 영화는 집을 나갔다 돌아온 정식이 양부모와의 화해하는 것을 암시하는 사춘기 직후에서 끝났다. 불이 들어 오자 한 고위 관료는 촉촉해진 눈가를 서둘러 닦았다.
자정이 가까워 오기까지 팬들에게 만화책에 사인해주고 대화하느라 정신없는 전정식에게 물었다. 이 작품 이전에도 그는 벨기에 등 프랑스어권에서 꽤 이름이 난 만화가다.
친부모는 만나고 싶지 않은가? 그는 "그럴 생각이 없다. 현실적으로 찾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생물학적 부모를 찾으려 애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랑을 쏟으면 부모다. 그런 부모 형제의 사랑과 가정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보도를 보고 만약 친부모나 형제가 찾으면 만나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전정식은 한국이 자기 아이들을 버리고 외국으로 입양을 보낸 것에 어릴 땐 수치스러웠고 개인적으로 무척 고통스러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는 어쩔 수 없었던 한국과 개인들의 사정을 알게 됐고 자식을 보낸 부모와 기르는 양부모의 아픔과 심정을 "이해하려 노력했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가급적 원망을 않으려 하지만 그러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그의 심정은 원작만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정식의 대사에 녹아 있는 듯하다. 책날개에도 별도로 인쇄된 그 말은 이렇다. "미국인 홀트 씨가 고아원과 병원, 따뜻한 새 가족을 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이를 고마워해야 할지 항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외국에 입양된 한국 아이들이 20만 명,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브뤼셀=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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