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영화배우이자 연출가인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자서전 ‘꿈꾸는 광대’를 발간했다.
이 책에서 김 전 장관은 자신의 꿈과 삶에 대한 기록을 담담히 풀어놨다.
음악을 사랑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며 문학과 음악, 미술 등 예술에 심취했던 그는 독문학에 대한 선망으로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에 입학하고 엉겁결에 연극반에 들어가 ‘광대 인생’의 첫발을 내딛는다.
그는 20대에 결핵에 걸려 투병하느라 힘든 시절을 보내기도 했지만, 연극과 판소리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아 19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대열 선두에서 전위적인 활동을 펼쳤다.
대학 졸업 후 문화잡지 ‘뿌리깊은 나무’의 기자, 배화여고에서 독어교사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다시 극단으로 돌아가 저항적인 문화운동을 펼쳤다.
마흔 살을 넘긴 그를 유명인으로 만들어준 것은 한국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편제’였다.
임권택 감독은 극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김 전 장관을 전작 ‘개벽’에 조연으로 출연시켰고 촬영 중 그가 판소리에 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이듬해인 1992년 ‘서편제’에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김 전 장관은 이 영화에 대해 "연극과 영화를 통틀어 그동안 내가 참여한 어느 작품보다 개인적 체험과 정서가 짙게 밴 작품이 되었다. 특히 유봉이라는 인물에는 내가 연극을 하고 판소리를 공부하면서 느낀 고통과 좌절, 소외감과 처철한 집념 같은 것이 군데군데 배어 있어 때로는 나를 가슴 아프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동안 영화와 연극을 비롯해 많은 활동을 해왔지만, 대부분 ‘서편제’ 그늘에 가려지고 여태껏 ‘서편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한탄할 일이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1999년 국립극장 극장장 공모에 응모해 심사위원들의 투표로 가장 많은 표를 얻어 국립극장장에 취임해 6년간 일했고, 2006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문화관광부 장관에 올랐다.
그는 책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상적인 만남을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어느 술자리에서 만났는데, 예술진흥정책과 관련해 시장주의적인 입장을 편 노 전 대통령에게 ‘문화 예술에 대한 식견이 천박하다’고 비난했다는 것.
하지만, 이후 국립극장장 시절 조용히 창극을 보러 온 대통령 부부를 만나 함께 만찬을 하면서 호감을 갖게 됐고, 노 전 대통령은 예전의 일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또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놀라운 문화적 식견을 갖춘 대통령", "내가 만난 최고의 관객"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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