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을 사기 위한 탁발托鉢
해인사 강원시절 공책 살 돈이 없어서 칠월 백중을 전에 탁발(탁발이란 부처님 당시에서부터 있었던 일로서 아침에 발우를 들고 일곱 집을 차례로 들러 밥을 빌어 수행처로 돌아와 사시<오전 9시에서 11시까지>에 공양하신 것을 뜻한다. 예전에는 탁발동령托鉢動鈴이라 했는데 절에서는 탁발이라고만 전해지고, 일반에서는 동령이라 하다가 곡식을 얻는다고 해서 동량으로 변했다.)을 한 일이 있다. 그대로 남의 집 앞에 가서 염불을 해주고 무엇이든 주면 고맙게 받고, 주지 않으면 그냥 돌아서는 것을 말한다. 여유 있게 수행 삼아서 하는 것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만, 진짜 없어서 하는 탁발은 참으로 절박한 것이다. 내가 탁발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아주 절박한 상황이었다. 공부하기로 계획한 일이니 공부는 마쳐야 하겠는데 어느 누가 책이나 공책 한 권 사라고 도와주는 자가 없었기에 생각다 못해 탁발까지 하게된 것이다.
내가 절에 들어가서 탁발이란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그 무더운 여름날, 두꺼운 대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어시발우(밥을 받아먹는 제일 큰 밥그릇)를 왼쪽 팔로 감싸들고, 오른 손엔 요령을 들고 김천 시내로 간 것이다. 첫 번째 집에 다다라 염불을 하려하니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은 두근두근하며 입이 떨어지지 않아, 염불을 하려해도 도대체 소리가 나오지 않아 한 집을 그냥 지나쳤다. 다시 용기를 내어 두 번째 집에 갔는데 역시 실패했다.
세 번째 집을 찾아가는 도중, 나는 많은 상념에 잠겼다.‘나는 수행자이다. 수행자인 내가 과연 이렇게 나약하단 말인가! 나에겐 탁발 하나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정말 없단 말인가! 내가 지금 강원에서 배운다는 것이 무엇을 위함이고, 하심下心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글로만 아는 공부란 정말 이렇게 나약하단 말인가! 아니야! 나는 기필코 이 일을 해내야만 한다. 내 얼굴이 아무리 뜨거워 달아올라도 나는 꼭 이번에 탁발이라는 관문을 통과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앞으로 수행 정진하면서 무슨 일이 닥쳐도 능히 해낼 수 있는 자신과 용기가 생기지 않겠는가. 절대 남 앞에서 부끄럼을 의식하지 말고 초연한 자세로 탁발을 하리라’하는 결심을 마음속 굳게 다짐하고 세 번째 집 문 앞에 다다라 요령을 흔들며 “마하반야 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이렇게 반야심경 일편을 봉독했다. 얼굴은 있는대로 달아오르고 몸은 떨렸으며 음성 또한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내가 어떻게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반야심경 일편을 하고 나니 동네 아이들이 구경거리라도 생긴 냥 여러 명 모였다. 나는 비로소 용기를 얻고 집집마다 차례로 염불을 하며 지나가는데, 아이들은 흩어지지 않고 내 뒤를 얼마동안 쭉 따라왔다. 이렇게 집집을 돌며 염불할 때, 돈을 주는 사람, 남편의 밥그릇에 쌀을 담아와 주는 사람, 돈을 던져주는 사람, 곱게 발우에 넣어주고 합장하며 절을 하고 가는 사람, 왜 자기 집은 그냥 갔느냐고 일부러 나와서 주는 사람, 교회 믿는다는 한마디로 문을 닫으며 거절하는 사람, 주인이 없다고 거절하는 사람 등등 사람들의 보시 형태는 각각이었다.
그 당시 탁발을 할 때, 하루 종일 어디 한번 편히 앉아보지 못해 다리가 뻣뻣하여 혼났다. 탁발을 해 가지고 구화사에 돌아오니 노보살님께서는 공부하는데 보태라하며 얼마 않됐지만 얻어온 쌀에 대한 값을 쳐서 나에게 주셨다. 나는 탁발한 돈을 내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공책이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썼다. 그 돈을 꺼내 쓸 때마다 내가 탁발하던 감회에 젖어 눈시울을 남몰래 적시기도하고 매만지며 썼지만, 이러한 일은 나와 함께 공부한 도반道伴스님 들은 아무도 모른다.
Nov 3. 2011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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