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드라마에서 딸부잣집은 많았다. 당연히 딸들을 저마다 좋은 데로 시집보내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며느리들이 재가하는 얘기다. 남편이 있다면 흔하디흔한 불륜이겠지만 남편이 없는 며느리들의 결혼 이야기는 ‘드라마’가 된다.
MBC 일일극 ‘불굴의 며느리’가 며느리들의 숨겨진 욕망을 다루며 인기몰이 중이다. 시청률은 15% 전후로 경쟁작인 KBS ‘우리집 여자들’에 5-6%포인트가량 뒤지고 있지만 체감인기는 그보다 훨씬 높다.
무엇보다 MBC는 지난 몇 년간 한자릿대 시청률에서 허우적대거나 ‘막장 드라마’라 비난받던 일일극이 모처럼 만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는 점에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며느리들의 숨겨진 욕망 = ‘불굴의 며느리’는 며느리들의 은밀한 욕망을 다룬다.
층층시하인 300년 된 종가를 무대로 하고 있고 비교적 밝은 톤의 일일 홈드라마로 포장해서 착시현상이 빚어질 뿐, 이 드라마가 다루는 이야기는 상당히 자극적이며 파격적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남편과 아들이 없는 한집안에서 살을 맞대고 같이 살아나가고 있고, 그 며느리들이 하나같이 새 짝을 찾게 된다는 설정이 그러하다.
무대가 되는 김씨 종가 만월당에는 청상과부인 11대 종부 최막녀(강부자 분)와 홍상과부인 12대 종부 차혜자(김보연), 그리고 남편의 외도로 이혼했지만 그와 동시에 그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은 13대 종부 오영심(신애라)이 함께 살고 있다.
또 오영심의 손아래 동서 한혜원(강경헌)은 ‘생과부’다. 만월당의 둘째 아들인 한혜원의 남편은 경제사범으로 아내와 딸을 두고 도피 중에 바람이 나서 이혼을 요구하고 나섰다.
드라마는 이들 과부가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저마다 새 짝을 찾는 파격적인 스토리를 전개하며 며느리들의 숨겨진 욕망을 다룬다.
차혜자는 어린 시절 첫사랑 오빠 장석남(이영하)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고 있고, 오영심은 한참 연하인 재벌 2세 문신우(박윤재)와 열애 중이다. 또 한혜원은 문신우의 형인 동시에 자기 친구의 전 남편인 문세진(이훈)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이혼녀가 연하의 훈남과 맺어지는 ‘줌마렐라’ 스토리가 한 단계 더 발전한 데다, 시어머니까지 며느리와 동시에 연애하고 있고, 동서지간인 두 여성이 재벌 2세 형제와 나란히 겹사돈을 맺게 될지 모르는 실로 엄청난 상황이 펼쳐지는 것.
까딱하면 ‘막장 드라마’라는 수렁에 빠지기 쉬운 설정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다양한 에피소드, 빠른 전개, 인간미 넘치는 살가운 캐릭터로 아슬아슬하게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초반 힘이 실렸던 전형적인 악녀 임지은(김유리)의 약발이 떨어지고, 문세진의 전처 박세령(전익령)은 뒤늦게 사랑에 매달리는 모습을 통해 단순한 선악구도에서 벗어난 것도 차별점이다.
◇모녀 같은 고부간의 판타지 = 여기에 더해 ‘불굴의 며느리’는 고부(姑婦) 간의 판타지를 구현하며 주부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부갈등을 요즘 식으로 표현한 것이 ‘며느리의 남편은 내 아들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불굴의 며느리’에서는 늘 보아오던 고부 갈등이 없다. 기본적으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있어야 할 아들이 모두 없는 데다, 시어머니는 친정엄마 같고 며느리들은 딸같이 군다. 이들의 관계는 애틋하고 절절한데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판타지보다 더한 판타지다.
특히 오영심이 갈 데 없는 고아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이혼 직후 전남편이 죽자 다시 만월당에 들어가 사는 설정은 현실에서 좀체 만나기 어려운 스토리다. 그의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는 미안함과 애틋함에 오영심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했고 오영심도 엄마, 외할머니와 산다는 생각으로 사실상 남남인 만월당에 들어갔다.
과부들의 신데렐라 스토리에 더해 고부간의 판타지가 펼쳐지자 이 드라마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우주 판타지다. 작가는 안드로메다에서 살다 왔나’ ‘실제 종가에 사는 분들이 보면 혀를 찰 것’ ‘만월당의 여자들은 남자 없으면 못사나’ 등의 지적도 눈에 띈다.
그러나 대다수 시청자는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빠른 전개에 눈을 뗄 수 없다’ ‘오영심과 문신우가 해피엔딩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저런 시어머니가 계시면 좋겠다’ 등의 글을 올리며 드라마의 판타지를 응원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작아진’ 딸들 = 며느리들이 득세하면서 이 드라마에서 딸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존재라는 점도 흥미롭다.
만월당에는 3명의 딸이 등장하는데 최막녀의 딸인 김금실(임예진)은 ‘이혼 중독자’라는 별명이 붙은 집안의 사고뭉치다.
또 차혜자의 큰딸 김연정(이하늬)은 당찬 성격이지만 마흔이 다되도록 시집을 안 간 노처녀로 마음에 품었던 동창 문신우를 큰 올케 오영심에게 내준 ‘헛똑똑이’이고, 그 아래 동생인 순정(김준형)은 대학 첫 MT에서 덜컥 임신을 해버리고 남자에게 차인 미혼모다.
드라마는 이런 딸들의 이야기를 며느리들의 스토리 뒤에 배치해 기존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인물간 구도에 변화를 꾀했다. 티 안 나는 듯 하지만 은근한 전복이다.
앞서 제작진은 남자들의 씨가 말라 멸문의 위기에 처한 만월당의 위기의 여자들이 어떻게 역경을 헤쳐나갈지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비록 역경을 헤쳐나가는 방식이 결국은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는 뻔한 결말이라 할지라도, 여성 시청자들은 이미 드라마 속 며느리들의 욕망에 동화돼 청량감을 느끼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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