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개그콘서트’의 팬들은 요즘 경상도 출신 세 남자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화제의 코너 ‘서울메이트’의 양상국(27)ㆍ허경환(30)ㆍ류정남(30) 얘기다.
각각 경남 김해(양상국)와 통영(허경환), 부산(류정남)이 고향인 세 남자는 일요일 밤마다 ‘완벽한 서울사람’을 외치며 어색한 서울말을 구사해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사투리 공포증’에서 벗어났다는 세 남자, 그리고 이들의 ‘로망’인 서울 여자 역으로 출연하는 신인 개그우먼 박소라(22)를 지난 4일 여의도 KBS 연구동에서 만났다.
"경상도 분들이 특히 좋아하세요. 한마디로 ‘난리’가 났죠.(웃음) 엊그제는 거제도에 사는 매형이 전화를 해서 ‘정남아, 요새 여기서는 너희 개그 얘기밖에 안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기분이 좋았죠."(류정남)
양상국은 "정남이 형이 이 코너를 하면서 처음으로 네이버 인물검색에 이름이 올라갔다"면서 "요즘 아주 흥분상태"라며 웃었다.
’서울메이트’는 서울로 올라온 경상도 출신 세 친구의 ‘서울말 정복기’를 그린다.
이제 막 서울에 도착한 류정남은 ‘순도 100%’의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친구들의 구박을 독차지하며, 서울말 배우기에 재미를 붙인 양상국은 류정남을 앞장서 구박하면서도 종종 막히는 단어가 나와 애를 먹는다.
’혼자 지하철을 탈 만큼’ 완벽한 서울사람이 된 허경환은 "서울말은 말끝만 올리면 되는 거 모르∼니?"라면서 특유의 손동작과 함께 ‘∼했기에, ∼했으므로’라는 문어체를 구사해 관객을 웃긴다.
’누구 아이디어로 탄생한 작품이냐’고 묻자 류정남은 "사연이 길다"고 했다.
"사실 이 코너는 5년도 더 된 거에요. 상국이가 2005년에 아마추어 개그 대회에서 첫선을 보였고, 2006년에는 저랑 같이 KBS ‘개그사냥’에서 공연했죠. 근데 얼마 뒤 다른 방송사 개그 프로그램에 똑같은 포맷의 정규 코너가 편성되더라고요. 당시 저희는 정식으로 데뷔하지 않은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항의할 방법이 없었죠."
허경환은 "그때 ‘개그사냥’을 연출했던 PD가 바로 개그콘서트의 서수민 감독님"이라면서 "감독님이 늘 ‘상국이 정남이 한을 풀어주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지난달 개그콘서트가 대대적인 코너 개편을 하면서 기회가 왔다"고 소개했다.
"감독님이 ‘요즘 사투리 개그 없으니까 한번 해보자’고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당장 뭉쳤죠.(웃음) 저희 둘에 경환이 형까지 합류하면서 ‘서울메이트’의 뼈대가 완성됐어요."(양상국)
사투리로 의기투합한 세 남자는 의욕이 넘쳤지만, 정작 ‘서울사람’들의 반응을 알 방법이 없어 난감했다. 그래서 합류한 게 바로 충남 천안 출신의 박소라(22)다.
"소라가 우리 얘기를 알아들으면 방송에 나가고, 못 알아들으면 접어요. 일종의 자체 검열이죠."(허경환)
양상국은 "소라가 사투리를 공부한답시고 우리가 하는 말을 종이에 적었는데, 소리나는 대로 막 적어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라며 웃은 뒤 "사투리를 안 쓰는 사람들에게는 우리 얘기가 외국어처럼 들리는 것 같아 신기했다"고 말했다.
"우리끼리 회의할 때 웃는 만큼만 반응이 나온다면 정말 ‘대박’일 텐데, 아무래도 수도권 시청자들에게는 우리 개그가 어려운가 봐요.(웃음) ‘이게 뭐야’ 하는 반응도 있더라고요. 사투리의 느낌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너무 어렵지 않은 단어를 고르는 게 최대 고민입니다."(허경환)
양상국은 "요즘은 경상도 분들 말투를 관찰하는 게 일"이라면서 "경상도에 한번 갔다오면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예전에 내가 썼던 말인데도 다 새롭게 들리는 것 같다"며 웃었다.
’서울메이트’가 인기 코너로 자리잡으면서 제5의 멤버를 노리는 동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한번은 영희(김영희)가 휴대전화에 10개가 넘는 단어를 저장해 왔더라고요. 선배 이건 어떨까요, 저건 어떨까요 하면서 욕심을 내는 거 있죠.(웃음) 다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어요."(류정남)
"박성호 선배도 은근히 관심이 많더라고요. ‘꽃미남 수사대 내리면 끼워줘’라면서 오디션을 자청하시는 거 있죠. 박성호 선배 같은 대선배도 우리 코너를 노리는 걸 보고 ‘반응이 좋긴 좋구나’하고 느꼈죠."(허경환)
양상국은 "경상도 남자가 또 들어오면 감당이 안된다"며 "강원도나 전라도면 몰라도…."라며 말끝을 흐려 동료들을 웃겼다.
사투리 개그에 열중하다 보니 웃지 못할 부작용도 생겼다.
허경환은 "서울에서 오래 살다보니 완벽한 표준어는 못해도 서울말의 ‘느낌’ 정도는 흉내낼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이 친구들을 하도 자주 만나 사투리만 늘었다"면서 "완벽한 경상도 남자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좋아요. 사실 이 코너를 하기 전까지는 표준어를 잘 못한다는 게 굉장한 고민거리였거든요. 연기자가 이래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근데 이 코너를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사투리 억양이 있으면서도 MC를 하는 강호동 선배처럼 나도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류정남)"
류정남의 말처럼 ‘서울메이트’는 멤버 모두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사투리 개그에 대한 한(恨)이 남아있던 양상국은 이 코너로 비로소 ‘원작자’로서의 자존심을 되찾았고, 코너보다는 캐릭터 위주로 승부해왔던 허경환은 ‘대표 코너’를 갖게 됐다.
올해 초 데뷔한 신인 개그맨 박소라는 비로소 ‘개그우먼 박소라’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인터넷에 ‘서울메이트에 나오는 여자 개그맨이 누구냐’라는 글이 올라오는 걸 보고 무척 신기했어요. 친구들도 이젠 ‘너 방송 나오는구나’라며 많이 알아봐주더라고요. 개그를 시작한 지 얼마 안돼 모든 게 부담이었는데 좋은 선배들을 만나 많이 배우고 있어요."(박소라)
양상국은 "’닥터피쉬’의 열혈팬, ‘선생 김봉투’의 백원만 캐릭터 등으로 인기를 얻었을 때도 내게 최고의 무기는 사투리 개그란 생각을 버린 적이 없다"면서 "정남이 형이랑 늘 ‘언젠가는 꼭 무대에 올려보자’고 다짐하곤 했는데 결국은 이렇게 하게 돼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실 코너를 짜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이 코너를 짤 때는 힘들지가 않아요. 내가 제일 자신있는 걸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랑 같이 해서 그런가봐요.(웃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연예대상 개그 코너부문 후보에 오르는 게 목표입니다."(허경환)
(서울=연합뉴스) 이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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