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상영중인 로맨틱 코미디 ‘래리 크라운’(Larry Crowne)에서 중년에 대학을 못 나왔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뒤 뒤늦게 대학공부를 하며 자신을 새로 창조하는 수퍼마켓 종업원으로 나온 탐 행스(55)와의 인터뷰가 지난달 18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 호인인 행스는 시종일관 농담과 익살을 떨어댔는데 마치 연기를 하듯 큰 제스처와 함께 얼굴 표정과 눈 동작 그리고 가성까지 써 가면서 일사천리 속사포 쏘는 식으로 질문에 답했다. 참으로 명랑하고 쾌활하며 또 정력적인 사람으로 장난꾸러기 소년 같이 순진해 절로 정이 갔다.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을 때 기자가 한국 출신이라고 말하자 그는 “얼마 전 싱가포르 영화제에 참석했다가 귀국길에 재 급유차 서울에 기착했다”면서 “서울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내보내 주질 않더라”며 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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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일이 아쉽다고
그때로 돌아갈순 없어
삶은 계속 전진하는 것
*영화에서 무엇을 얘기하려고 했는가.
-래리는 특별히 똑똑한 사람은 아니나 평생을 바르게 살아왔다. 그런데도 본의 아니게 해고를 당했다. 자신의 선택과 일로써 스스로를 정의한 상식적인 사람이 본인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해고를 당한 뒤 어떻게 스스로를 완전히 재창조하는가를 얘기하고 싶었다.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큰 변화는 어떤 것이었나.
-결혼과 아기를 낳는 것이었다. 특히 아기를 낳기로 결정한 뒤로는 끊임없이 삶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아기를 가지기로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삶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당신은 과거 특별히 이루지 못해 후회할 일을 가지지 않았으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혹시 이제 나이가 먹으면서 삶에 대한 의문이나 또는 당신을 비껴간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경우가 있는가.
-나는 과거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르는데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삶과 일을 재 경험할 생각이 없다. 인생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하며 새롭게 정의되는 것이어서 소위 업적이란 별 의미가 없다. 우리 존재의 질은 정체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 전진해야 하며 또 냉소주의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 젊었을 땐 위기에 처해지더라도 그 것이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 해결되리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이가 먹으면 다소 현명해져 위기에 처해지더라도 스스로 일어서 삶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마련이다.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쉽게 거짓말 하는 사람이다. 거짓은 삶의 한 부분이라는 말도 있지만 난 그것을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난 대체로 괜찮은 사람으로 남에게도 공평하지만 누가 그 것을 악용할 경우 나의 분노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땐 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쳤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을 안 가르친다. 요즘은 윤리를 따르면 등신으로 여긴다. 난 그 것도 수용하기를 거부한다. 난 윤리대로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또 사람들에게도 그 것을 심어주고 싶다. 난 비윤리적인 사람을 싫어한다.
*당신은 나이스 가이로 알려졌는데 그런 인상으로 인해 오해라도 받는가.
-난 상당히 예의범절이 바른 사람이다. 그러나 난 등신이나 약골이 아니다. 특히 난 결코 비겁한 약골이 아님을 강조한다.
*현재 미국의 경기침체가 영화를 만드는데 영향이라도 미쳤는가.
-이 영화의 구상은 6년 전에 시작됐다. 그러나 그 뒤로 미 경제가 나빠지고 직장에서 구조조정 바람이 일면서 래리의 해고와 그로 인한 살던 집의 차압 등이 보다 사실적으로 부각되게 됐다. 각본을 처음 썼을 땐 래리가 집은 지키는 것으로 됐었다.
*당신은 래리처럼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녔는데 그 때 경험은 어땠는가.
-난 지난 1977년 고교를 졸업한 뒤 정규대학에 갈 학점도 모자라고 또 돈도 없는데다가 특별한 기술도 없어 커뮤니티 칼리지에 들어갔다. 그 땐 학비가 넉달에 15달러였다. 내가 다녔을 땐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머니들과 이혼한 남자들 그리고 베트남전서 돌아온 군인들이 많이 재학했었다. 이런 내 경험에 따라 래리를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도록 한 것이다.
*영화에서 래리가 해고를 당한 뒤 낙망하며 슬퍼하는 모습이 애처로웠는데 당신도 살면서 그런 경험을 했는가.
-앞이 캄캄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내 TV 쇼는 취소되고 계획했던 것들도 모두 흐지부지 되면서 뭐 하나 되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 일이 계획된 것이 없어 암담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난 갓난아기를 비롯해 두 아이의 아빠였는데 스튜디오 시티에 있던 집마저 내놓아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난 지금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다.
*당신은 영화에서 식당 쿡으로 일하는데 실제론 어떤가.
-난 점심과 저녁은 차릴 줄 모르나 아침 하나만은 기차게 잘 만든다. 남보다 일찍 일어나 프렌치토스트와 초컬릿 칩 팬케익 그리고 각종 주스와 커피를 비롯해 시리얼 등을 차려 놓기를 좋아한다.
*래리처럼 당신도 직장을 잃고 돈이 달리게 되면 당신은 그에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수퍼마켓 점원이라도 할 용의가 있는가.
-우선 씀씀이를 줄이고 차도 스쿠터로 바꿀 것이다. 난 지금 영화에서 쓴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 기름 값이 풀탱크에 26달러밖에 안 하는데 그 것으로 무한정 달린다. 물론 난 수퍼마켓 점원을 할 용의가 있다. 직업이 무엇이냐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난 그랜드캐년 안내원이 되고 싶다.
*이 번이 두 번째 감독 작품인데 감독으로서의 경험은 어땠는가.
-그 것은 나의 개인적 사명이다. 처음 영화 ‘댓 싱 유 두!’(1996)는 완전히 내 머리에서 직접 나와 만들었다. 감독한다는 것은 일종의 이상한 열병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감독은 한 작품에 적어도 2년 이상을 매달려야 한다. 이에 비하면 연기는 노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나는 내가 함께 일한 스필버그와 론 하워드 등 여러 감독의 작품에서 많은 것을 빌려다 쓴다. 처음 과 달리 이젠 많이 침착해지고 또 인내심도 생겨 감독하기가 보다 쉬웠다.
*아내(배우인 리타 윌슨으로 영화에 은행원으로 단역 출연)와의 오랜 화목한 결혼생활의 비결은 무엇인가.
-23년간의 결혼생활은 지금도 잘 보내고 있다. 비결 중 하나는 서로 상대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우린 영화를 만들면서 만났는데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 영화란 단순히 생계수단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난 내 아내처럼 훌륭한 여자를 떠날 만큼 멍청이가 아니다. 사람들은 쇼 비즈니스에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란 매우 힘들 것이라고 말하나 어떤 직업에 종사하건 간에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바른 사람을 만나면 그 것은 성공한다.
내가 래리처럼 된다면
수퍼마켓 점원도 되고
스쿠터 탈 용의 있어
*캘리포니아주에선 대학 미필이라고 해고했다간 고소당할 수가 있다. 그런데 왜 래리는 해고한 회사를 고소하지 않았는가.
-래리는 거짓말도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고교 졸업자인 그를 대학 미필이라는 진짜 이유로 해고 했으니 래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래리는 회사를 고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지 않은 까닭은 래리가 냉소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소를 한다 해도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일이 해결될 때까진 아마도 1억년은 걸려야 할 것이다. 래리는 그런 복잡한 절차를 제치고 곧바로 자기 삶의 재정비에 들어간 것이다.
*당신은 영화에서 늘 나이스 가이로만 나오는데 만약 제임스 본드의 악역이 제의된다면 맡을 용의가 있는가.
-맡지 않을 것 같다. 난 악역에 관심이 없다. 스크린에서 단순히 악인으로 나오기 위해 악역을 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아들과 딸은 지금 무엇을 하는가.
-알다시피 아들 칼린은 배우다. 바로 얼마 전에 딸을 낳았다. 딸 엘리자베스는 몇 년 전에 대학을 나온 뒤 계속 집필해 온 소설 원고를 곧 출판을 위해 랜덤 하우스에 보낼 예정이다. 그런데 딸이 그동안 일한 퍼시픽 팰리세이즈에 있는 책방이 문을 닫았다. 전자책 때문이다. 난 절대로 전자책을 안 사기로 맹세했다. 난 잡지와 신문과 종이책을 살 것이다. 책에 대한 나의 방침은 사서 읽고 간직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된 소감은.
-너무 좋다. 손녀를 안거나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달래고 어르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 당신들과 얘기하느니 손녀와 함께 놀겠다.
래리와 그의 스피치 교수 머세데스(줄리아 로버츠)가 교실 밖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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