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쓴 신경숙 작가의 방문으로 워싱턴에 ‘엄마 찾기’ 열풍이 잠시 불었다.
본보의 초청으로 2일 김영봉 목사와 대담을 가진 신 씨를 보기 위해 독립기념일 연휴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인들이 행사장인 와싱톤한인교회로 몰려들었고 진지한 자세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본 뒤 작가에게 궁금했던 질문들을 던졌다.
워싱턴에 온 소감을 묻는 첫 질문에 신 씨는 “미국에서 만나는 분들은 저마다 마음 속에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것 같다”며 “이분들의 이민사가 결국 나중에 소설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엄마를 부탁해’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16살 때 고향 전북 정읍을 떠나며 밤기차 속에서 보았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강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헌사 같은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그 것이 결국 ‘엄마를 부탁해’로 태어났다는 얘기.
그러나 신 씨는 “만들어진 작품 속의 어머니는 그 당시 기억에 있는 어머니와는 다르다”라며 “이 소설은 읽는 사람에게 각자의 엄마를 생각게 하는 입구 같은 것이지 똑같이 공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설을 읽고 난 후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은 연못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다른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안고 있는 조각 ‘피에타’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마지막 장면과 관련된 작가의 독특한 경험도 소개했다. 먼발치에서 그 작품을 봤을 때 자신도 모르게 군중을 헤치고 그 앞에 다가서게 됐고 결국 에필로그에 사용하게 됐다는 것.
신 씨는 “잃어버린 것은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며 인간은 자연발생적으로 그것들을 찾으려 한다”며 “그러나 소설은 계속 질문을 던지고 독자들은 스스로 답을 찾고 받아들이지만 신앙은 해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신 씨는 1일 워싱턴문인회(회장 유양희) 주최로 한국문화원에서도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이병한 기자>
신경숙-김영봉 목사 대담 요지
신경숙 씨는 김영봉 목사와의 대담은 물론 질의응답 시간에도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성의를 다하는 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간간히 웃음을 섞어가며 소녀시절부터 시작해 현재에 이르는 자신의 삶과 문학세계를 보여주면서 즐거운 토요일 오후를 선물한 신 씨와 김영봉 목사의 대담을 요약 정리한다.
▲ 김영봉 목사(이하 김)-‘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 신경숙(이하 신)-16살 때 전북 정읍에서 밤기차를 타고 엄마와 함께 서울로 올라오던 당시를 이상하리만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6월11일 저녁 8시57분. 사촌도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칠흑 같은 밤이었다. 어머니는 졸고 계셨는데 힘들고 고단해 보이셨다. 생각했다. 언젠가 작가가 되면 어머니를 위해 아름다운 헌사 같은 작품을 쓰겠다고.
▲ 김- 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무서웠다는 사람도 있었고 엄마에 대한 별 스토리가 없어서 공감이 안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의 경험처럼 받아들였다.
▲ 신- 그런 다양한 반응들이 나는 더 좋다. 어떤 미국 분은 나의 어머니뻘 연령이셨는데 자신의 어머니와 굉장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미리 이 책을 읽었으면 어머니와 화해 노력을 했을 텐데 라고 말씀하실 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엄마를 부탁해’는 개개인들에게 엄마를 생각하게 만드는 입구같은 소설이지 똑같이 느껴야하는 건 아니다. 물론 자전적인 면도 있지만 가족 전체의 이야기이고 연못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다양하게 일어나듯 반응도 다를 수밖에 없다.
▲ 김- 이제 미국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끄는 소설이 됐는데 이런 파장을 예상했나?
▲ 신-작품을 쓸 때 다른 것은 잘 생각하지 못한다. 완성에만 전념하는 것도 벅차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다보면 등장인물들이 각자 할 말이 많아진다. 저절로 쓰고 싶은 말들이 생겨난다. 어떤 기대감은 있었겠지만 ‘이건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바람이 불면 독일의 민들레 씨앗이 날려 한국에서 피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태어나게 된다.
▲ 김- 목사로서 설교도 굉장히 창조적인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쓸 때 처음 구상했던 작품의 목적과 방향이 일치하는가?
▲ 신- 형식은 분명히 생각해 놓았다. 엄마를 부탁해는 한 사람씩 무대에 올라 말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작품에 몰두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있다. ‘엄마를 부탁해’는 사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첫 문장이 전체를 완성했다. 16살 때의 결심 7년 뒤 작가가 됐지만 27년이 지나 그 말은 노크 소리처럼 크게 다가와 놀랐다. 왜 그동안 그렇게 못썼을까 하고 질문했다. 거기서부터 폭풍처럼 애기들이 풀려나갔다. 하지만 소설 속의 어머니는 16살 때 생각했던 그 모습은 아니다. 강하고 흔들리지 않던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준 어머니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고 공허하고 비어있는 엄마의 모습이 됐다.
▲ 김- 혹평을 하는 사람은 가부장제도 아래서 희생되는 어머니를 정당화했다고 말한다. 속상한 평은 없었나?
▲ 신- 우리는 엄마를 엄마로 태어난 사람처럼 생각한다. 엄마도 작은 신발을 신었던 어린 아이었고 처음 배운 말이 엄마였다. 소설 마지막에는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생동안 엄마가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평을 하면서 자기가 쓰고 싶은 말을 쓰는 경우를 본다. 어쨌든 내 작품이 폭넓게 읽히고 있다고 이해하려 한다.
▲ 김-마지막 부분에 ‘피에타’ 상에서 독백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을 작품에 넣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기독교 소설들이 ‘엄마를 부탁해’ 만큼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문학과 종교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 신-어떤 분이 ‘4장으로 그냥 작품을 끝낸다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다 로마의 바티칸에서 피에타상을 보았다. 그 때 나도 모르게 군중을 헤치고 그 앞으로 걸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설명할 수 없는 강한 느낌이 왔다. 피에타는 성큼성큼 내 작품으로 걸어들어 왔다. 작품은 ‘엄마를 잃어버린지 9개월째다’로 끝나는데 잃어버린 것은 영원히 잃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인간은 자연발생적으로 그것을 찾으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어머니와 가족은 정읍 읍내에 있던 성당에 자주 가셨지만 정작 나는 별로 종교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도 가족 안에서 나는 잘 어울렸다.
문학은 질문은 하지만 해답은 각자 찾는다는 점에서 진실을 말하는 종교와 차이가 있다. 그런 면에서 김 목사님이 ‘엄마를 부탁해’를 가지고 설교를 하고 ‘엄마가 희망입니다’라는 책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김 목사님의 명성을 듣고 있었기에 긴장도 됐다. 김 목사님은 행간에 숨어 있는 많은 것들을 확인시켜 줬다. 숨겨져 있는 것이 드러난 것보다 10배는 많았다. 그러나 문학 작품은 숨겨야 한다. 거기가 종교와 갈라지는 지점이다. 소설은 질문을 한다면 종교는 진실이라는 해답을 준다. 그런데 작가는 정말 그런건가 하고 질문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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