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집단거주시설의 노파들 사이에 왕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노인거주 시설로 기사의 특정내용과 상관없음.)
수년 전 뉴저지의 한 노인보호시설(assisted living facility)에 입주한 레바 바순의 모친은 옆방에 기거하는 이렌느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됐다. 남편과 사별한 후 오랫동안 고립된 생활을 해온 레아의 모친은 이렌느와 ‘실과 바늘’처럼 한시도 떨어지지 않은 채 붙어다녔다. 노인보호시설 내 모임이 있을 때는 먼저 간 사람이 자리를 잡아주었다. 찰떡처럼 밀착한 이들은 다른 노인들이 둘 사이에 끼어드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기어이 사단이 났다. 이렌느가 바순의 모친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제3의 입주자와 새로운 ‘짝패’를 이룬 것. 노인 주택단지를 통털어 이렌느 이외의 다른 입주자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바순의 모친은 다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몇 달 못가 새로운 친구로부터 버림을 받은 이렌느가 다시 바순의 모친에게로 돌아오면서 이들의 배타적인 ‘우정’은 이어졌고, 둘 사이의 관계는 수개월 전 이렌느가 타계하기 전까지 흔들림 없이 유지됐다.
TV라운지 점령·한 명 골라 집중 괴롭히기 등
‘마귀할멈’이 앞장… “사춘기 여중생들과 똑같아”
어머니 덕에 노인네들의 별난 ‘우정행각’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던 바순은 “고령자들의 집단주거 시설은‘주니어 하이’(중학교)와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평했다.
끼리끼리 모여 무리를 짓는 노인네들의 배타적 분파성이 주니어 하이에 다니는 사춘기 계집아이들의 짓거리와 다를 바 없더라는 것.
노인전용 아파트와 보호시설, 양호원과 시니어 센터의 관리자들에게 고령 여성들의 패거리 짓기와 구성원들끼리의 ‘이지메’나‘왕따’는 놀랄만한 일이 못된다.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판박이 현상이기 때문이다.
노파들의 왕따 현상을 연구하고 있는 애리조나주립대학 사회사업과 조교수 로빈 보니파스 박사는 “노인 집단시설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궁금하면 주니어 하이 시절의 카페테리아를 떠올리면 된다”고 말했다.
여학생들 가운데 친구들의 왕따에 열을 올리는 ‘싸가지 없는’ 계집아이가 있듯 노인시설에도 ‘마귀할멈’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의 하는 짓은 마치 ‘교본’에서 끄집어낸 것처럼 일치한다.
우선 공용장소를 장악하는 게 일차 목표다. 그 대표적인 장소는 TV라운지.
무리를 규합한 노인주거시설의 마귀할멈들은 TV라운지를 ‘점령’하고 프로그램 선정에서 블라인드 개폐와 자리 배정에 이르기까지 독단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이 패거리에 끼지 못한 노인들은 주변으로 밀려나면서 소외의 과정을 밟게 된다.
식당도 전장터다. “이 자리는 예약됐다”며 자신의 옆 좌석을 찜해 두는 노파들이 매번 너댓 명씩 나온다. 실제로 다른 사람을 위해 자리를 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달갑지 않은 사람을 따돌리려는 예방조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랜켈이 매사추세츠주 노인시설 관리자들로부터 수집한 사례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운동 시간이 끝난 후 한 입주자가 신참자에게 다가와 “당신의 동작이 틀려 다들 헷갈리니 클래스에 나오지 말아 달라”고 한껏 정중한 태도로 요구했다.
확인되지 않은 집단 의사를 가장해 자신의 자의적인 ‘요구’을 전달한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일격을 당한 상대는 초장부터 주눅이 들었다.
이처럼 “수준 높은 고단수 왕따”도 있지만 “미련스럽다” “뭘 알고나 지껄이는 게냐”는 등 상대의 모멸감을 자극하는 언어폭력으로 공개적인 망신을 주는 것도 흔히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최근 매사추세츠주의 뉴턴에 소재한 한 노인시설에서는 입주자 중 한 명이 딸의 방문을 막는 일이 벌어졌다. 비만한 딸이 왔다 갈 때마다 노골적인 헐뜯기와 무자비한 뒷말이 나돌자 견디다 못한 피해자가 아예 ‘원인제거’를 시도한 것이다.
노인 집단거주 시설에서는 사회적 금기에 해당하는 인종증오적인 발언도 거침없이 터져 나온다.
이에 대해 프랜켈은 치매로 언행의 억제기능이 상실되면서 머릿속에 숨겨두었던 생각이 여과 없이 표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니파스 박사는 “청소년기와 함께 노년기는 인생의 전체 여정 가운데 무력감을 가장 심하게 느끼는 시기로 이때 행해지는 사회적 조작이나 배타는 지배감(sense of control), 즉 힘(power)을 획득하고 싶은 욕망과 관계가 있다”고 풀이했다.
마귀할멈들이 노린 대상들 가운데 일부는 이들의 공격을 무시해 버리지만 다른 일부는 심리적으로 움츠러들게 된다. 노인시설 내 각종 활동이나 친교모임에서 점차 발을 빼거나, 아예 다른 시설로 옮겨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프랜켈은 노인시설의 관리자들과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왕따와 이지메 예방에 초점을 맞춘 웍샵을 제공하고 있다.
아직까지 고약스런 노파들의 행동 개선을 유도하는 효과를 거두진 못했으나 노인시설 스태프들의 보다 과감한 개입을 불러오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 한 예로 매사추세츠 노인 주거시설의 영어회화 강사는 홍콩 출신 입주자를 표적으로 한 러시아 태생 마귀할멈 5인방의 집단 이지메를 해제시켰다.
과학자로 활동한 경력을 지닌 이들 러시아 5인방은 영어회화 시간에 홍콩출신 입주자가 강사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발표를 할 때마다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알을 위로 굴리는 제스처를 취했고 러시아어로 우루루 험담을 늘어놓았다. 자신들보다 교육 수준이 낮고 영어가 서툰 그녀가 한없이 만만했던 것.
사회사업과 대학원생이자 전직 교사인 영어회화 강사는 한동안 이를 모른 척 방치했으나 프랜켈의 웍샵에 참석한 다음 강경대응으로 태도를 바꿨다. 그녀는 “내 수업시간에 부당한 언동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러시아 5인방을 정면으로 지목한 후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행동을 보인다면 수업을 그만둘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이후 러시아 마녀들은 꼬리를 내렸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노인주거시설 두 곳을 대상으로 왕따에 관한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보니파스 박사는 “청소년 가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노인들도 만만한 대상을 선별해 괴롭힌다”며 “피해자들이 이들의 공격에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도와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