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마르시그리오(53)는 열여덟 살에 아빠가 됐다.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는 마흔아홉 이었다. 첫째와 둘째의 터울을 이룬 31년 사이에 그는 이혼을 했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장성한 자녀를 둔 40대, 50대 혹은 60대 남성들 가운데 마리시그리오처럼 늦둥이를 키우는 남성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일찌감치 결혼을 하고,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야말로 ‘파릇파릇한 나이’에 자녀를 둔 ‘베이비 붐’ 아빠 세대다. 가정을 꾸린 후 열심히 일하며 경력을 쌓아가다 어찌어찌 이혼을 하고, 전처보다 훨씬 젊은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고목나무에 꽃피우 듯 아기를 낳은 ‘나이든 아빠’들이다.
재혼 후 ‘젊은 부인’과 낳은 아이 키우는 재미에 푹~
“오래 살아서 끝까지 돌봐줘야 할텐데…” 불안감도
재혼을 통해 어린 늦둥이를 본 남성들은 이들의 성장과정을 끝까지 지켜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길어진 평균수명과 건강한 라이프스타일, 결혼과 연령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의 변화에 힘입어 묵직한 나이에 두 번째 육아의 기회를 잡은 아빠들은 과거 ‘초짜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자녀양육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게인스빌 소재 플로리다주립대 사회학 교수인 마르시그리오는 “첫 번째 결혼생활에서는 솔직히 여성주의 원칙을 포용하지 못한 채 가사일과 양육은 아내가, 돈벌이는 남편이 주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었다”며 “이제 가장으로서의 생계부양 역할이 예전처럼 지배적이지 않기 때문에 보다 충실한 형태의 자녀 양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배우자가 이전의 ‘오리지널’ 파트너에 비해 훨씬 경력 지향적이라는 점도 이른바 ‘후속 가정’(sequentialfamily)을 이룬 남성이 자녀의 ‘공동양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높여주는 요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녀양육 2편이 전편에 비해 쉬운 것은 절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한번 해 본 역할이기 때문에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깔끔하게 소화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은 그야말로 오산이다.
특히 ‘후속 자녀’를 염두에 두지 않았던 할아버지뻘 연령대의 아빠라면 늘그막의 아이 키우기가 못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사정없이 성깔을 피워대는 늦둥이 탓에 밤잠을 설치다보면 체력은 물론 인내심까지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새 장가 들고 아이를 낳더니 손자손녀들을 영 소홀히 한다”는 장성한 자녀들의 불만으로 가족 간의 알력이 돋을 수도 있다. 이러다보면 “해질녘에 이게 무슨 생고생이냐”는 장탄식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제 2의 자녀양육 기회를 갖게 된 대부분의 중고 아빠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지난여름 고교 영어교사직에서 은퇴한 그레그 웨인레인(60)도 그 중 한 명이다. 뉴욕주 앨버니 외곽인 이스트 그린부시에 거주하는 그는 열한 살 된 딸 브레일과 일곱 살짜리 아들 베킷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오전과 오후에 아이들을 스쿨버스까지 바래다주고, 데려오는 일은 그의 몫이다. 아침을 챙겨 먹이고, 아이들을 과외활동 장소로 이리저리 ‘운반’하는 택시기사 노릇도 그가 전담한다.
웨인레인은 첫 번째 부인 소생인 큰 딸 크리스틴(43)과 아들 제시(37)가 어렸을 때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들이 태어났던 60년대 말과 70년대 초는 남성과 여성의 가정 내 역할이 고정되어 있었다. 웨인레인은 “그때만 해도 아빠는 바깥일을 하고 아이들은 엄마가 키우는 것이라는 고착된 사회적 통념에 속속들이 젖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두 살배기 딸 소렌느와 하루의 거의 전부를 보내는 맨해턴 소재 캔사스주립대학의 더그 포웰(48)은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네 딸을 키울 때보다 훨씬 느긋한 아빠가 됐다고 자평했다. 이들은 지금 16~24세다.
1996년 정관수술을 한 포웰은 재혼 후 캔사스주립대학 불어과 부교수인 아내가 아이를 원하자 정자를 기증받아 소렌느를 얻었다.
두 살짜리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는 포웰은 소렌느가 잠자는 시간에 맞춰 식품안전에 관한 원거리 온라인 강의를 컴퓨터에 올리는 등 하루 일정을 온통 늦둥이를 중심축 삼아 짜놓았다.
사실 미국의 아빠들이 18세 이하 미성년자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지난 1965년 이후 크게 늘어났다.
퓨리서치 센터가 2006~2008년도 전국 가정증가 조사에 참여한 15~44세의 응답자 1만3,495명으로부터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1965년의 경우 아빠가 미성년자 자녀들을 돌보는데 사용하는 시간은 주당 2.6시간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1975년에는 주당 2.7시간, 1985년에는 주당 3시간으로 더딘 증가세를 보이다가 1985년부터 2000년 사이에 주당 6.5시간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에 첫 아이를 가졌던 ‘구시대의 아빠’들도 재혼을 통해 제 2의 양육기회를 부여받으면서 이같은 시대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대부분 “신참 아빠였을 당시 자녀 양육에 있어 너무 과민반응을 보였다”는 견해를 보였다. “첫 경험”은 늘 두렵고 서툴게 마련이다.‘후속 가정’의 아빠들은 과거의 경험과 교훈이 있기 때문에 자녀양육에 이전보다 조금은 느긋하고 자신 있게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늙은 아빠들은 나이가 주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어린 자녀들의 성장과정을 곁에서 끝까지 지켜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들의 머릿속에 붙박이처럼 박혀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과년한’ 아빠들은 운동에 남다른 열성을 보인다.
40세에 재혼해 1997년 아들을 보고 2001년 딸까지 얻은 자영업자 모리스 콜로토니오(60)은 즐겨 타던 모터사이클을 처분하고 대신 자전거를 이용한다. 안전보다는 운동효과를 위해서다.
오는 8월에 54세 되는 언론인 케이스 스트랜드버그는 스스로를 ‘운동광’이라고 부른다. 2009년 재혼한 소피(41)와의 사이에 젖먹이 아들을 둔 그는 “아이 곁을 오래 지켜주고 함께 놀아줄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퇴직 영어교사인 웨인레인(60)은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이 나이가 되니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해지고 두려워진다”며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매주 5일 피트니스센터에서 체력을 다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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