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개국 이상 다녀봤지만 역시 한식이 최고”
맨하탄집 부엌에서 얇게 밀은 오이와 고추장 양념을 뿌린 아스파라가스 요리를 만든 김영자씨.
20년 이상 30개국 이상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보고 조리법을 배우기도 한 김영자씨, 한국일보에 ‘김영자의 요리교실’과 ‘맛 기행’ 칼럼을 연재하며 뉴욕과 뉴저지에서 요리강습을 통해 서양요리와 한국요리법을 알리기도 했다. 요리 전문가 김영자씨의 맛과 멋 인생을 들어본다.
▲뒤늦게 미쳐버렸다
뉴욕 맨하탄을 근거지로 프랑스의 에비앙과 독일 함부르크를 오가면서 살고 있는 김영자씨는 지금도 여행지마다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이다. 맛도 보고 주방에 직접 들어가서 요리법도 배운다. “지난겨울 영국에서 에티켓 교육을 받았다. 요리와 연관이 있으니, 식탁예의를 좀더 구체적으
로 알고 싶어 시작했는데 전반적인 사회적 예의를 배웠다. ”는 김영자씨의 삶은 늘 이렇게 요리와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려서부터 요리에 취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는 손 하나 까딱 안한 게으름뱅이였다. 외할머니가 유난히 요리를 잘하셨기 때문에 요리를 할 생각은 안했어도, 항상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할머니는 개성식 요리를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는 생조기를 잘라 넣고 만드셨던 겨울의 보쌈김치였다.”67년 서강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그 해 도미, 뉴욕에서 패션 공부를 한 후 10여년간 패션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독일인 한스와 결혼했다. 당장 매일 음식을 뭐 해먹을까 하는 고민이 닥쳐왔다. 그래서 84년경 요리학원을 다녔고 그곳에서 요리의 참맛을 발견했다.
“매일 해야 하는 요리를 걱정하고 싶지 않아 시작했는데, 한마디로 홀딱 반했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았다고 할까? 늦게 철들어서, 거기에 미쳐버린 것이다.” 1987년 남편이 생일선물로 이태리 피렌체 요리학원 단기코스에 보내줬고 학원이 끝나고 일류 레스토랑에서 실습을 했다. 그 후에도 생일선물로 파리의 리츠 에즈코피에 요리학원에서 공부했고 역시 학원 수업 후에는 근처 고급 레스토랑에서 야채를 다듬으며 쉐프나 보조들이 만드는 요리를 배웠다.
▲맛에 최선을 다해야
김영자씨는 항공사 컨설턴트로 일하며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 덕에 항공료와 숙박시설을 저렴하게 받아 세상구경을 원없이 했다. 그는 여행을 갈 때는 요리에 꼭 필요한 양념, 손에 착 달라붙는 칼 같은 조리기구를 늘 챙겨간다. “칼이나 도구는 아무래도 문제가 되니 체크인 하는 가방에 넣는다. 헌데, 간혹 작은 병이지만 참기름 병이 깨질 까봐, 혹은 고추장이 넘쳐 병 밖으로 뭉글뭉글 넘쳐 나오지 않을까 가슴을 조린 적이 여러 번 있다. 기본적인 한국 양념 외에, 서양 양념은 너트멕, 프로방스허브, 사프론 같은 것을 갖고 다닌다. 서양사람들에게 자기네한테 생소한 한국요리를 해주면 무척 좋아한다. 음식만큼 사람을 쉬 가깝게 해주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그는 천상 타고난 요리사이다. 요리세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세계적인 요리사로 두 사람을 든다.
“모두 프랑스 태생이긴 해도 지금은 오래된 뉴요커이다. 장조르지는 뛰어난 재주뿐만이 아니라 비즈니스 센스가 놀랍다. 여러 개의 그의 레스토랑에 가보면 항상 새로운 것을 내놓는데, 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하겠는가. 또 정클로느 네델릭 (글로리어스푸드라는 케이터링회사의 파트너)도 재주 있고 수백 명, 수천 명을 위한 고급음식을 준비하는데, 맛을 위해서 기울이는 그 세심한 노력에 감탄한다. 적당히 라는 것이 없다. 지금도 바쁠 때는 가끔 가서 일을 해준다.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고, 맛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의 정신, 그것이 내가 가장 많이 배우는 점이다.”고 말한다.
신기하고 새로운 요리가 있다면 적극 달려가 배우는 김영자씨의 성격은 용감하고 진취적으로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고개를 흔든다.“용감하다고요? (주위를 돌아보며)누가요? 저는 제가 좀더 용감했으면 하는데요. 일손이 느린 것은 타고난 것이니,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죽어하고 노력을 한다.”며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아무에게도 눌리지 않는 강인한 성격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다. 그 마음이 약한 것이 힘들게 느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말하는 김영자씨, 그의 가정생활은 어떨까.
▲한국요리가 최고
김영자씨는 1945년 김재협, 원유봉씨의 3남1녀 중 장녀로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서울 성심여중의 기숙사에 있으면서 공부를 했는데 학교에 외국 수녀들이 여러 명 있어 그때부터 서양 사람들과의 접촉이 있었다.독일인 남편이 어느 날 냉장고에 넣어둔 된장 냄새를 맡고 쓰러진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할 수 없는 음식은 없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든다. 두부는 너무 좋아해서 거의 냉장고에 두고 산다. 남편은 무슨 음식이던지 잘 먹는다. 남이 먹는 음식이면 먹을 수 있다는 씩씩한 사고방식을 가졌다.”
현재 남편은 은퇴했고, 딸 윤이(한국이름·28)는 런던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에서 일하고 있다. “윤이는 한국요리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집에 올 때는 꼭 한국요리를 기대한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가 유창하다. 엄마와 전화할 때는 항상 한국말로 하고, 요새는 이메일로 쉬운 것은 한
글로 쓰고 있다”김영자씨도 가장 감칠맛 나는 요리는 역시 한국요리라고 생각한다. 일식과 이태리 요리를 좋아 하지만, 사실 어느 나라 요리든지 잘 만들면 다 맛이 있다고. 그는 별로 기름기가 없는 산뜻한 음식, 살 안찌는 음식만 좋아하니 간혹 서양 사람들이 “한국요리가 정말 건강음식이냐”고 물으면 “저를 보셔요” 하고 말할만큼 한국요리 홍보 전문가를 자처한다.
작년에는 뉴욕한국일보 41주년 특별기획으로 연재되었던 칼럼을 모아 저서 ‘그대에게 만찬을’, 한국요리를 영문으로 소개한 ‘Korean Cuisine’를 출간하기도 했다. 또한 aT 센터(농수산물 유통공사)와 뉴욕, 독일, 서울에서 요리 특강을 하면서 슬라이드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강연도 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전세계적으로 한식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뿌듯하다고 한다.
“정부가 훌륭한 한식당을 뉴욕에 세우면 미국인들의 관심을 일구어 다른 한식당에도 더 찾아가는 효과를 내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한식당보다는 요리학원을 세우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좀더 한식 연구 개발에 힘쓰겠다”
김영자씨는 올해와 내년에도 지금처럼 외국의 영사관과 함께 한국요리 강습을 하거나 개인적으로 한국음식 소개를 계속할 예정이다.“일로만 생각하지 않고 사교를 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도 중요하지만 사는 것을 즐기는 것도 무척 중요하지 않은가!”화사하게, 우아하게 말하는 김영자씨, 요리솜씨만큼 매너가 일품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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