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의 성장과 양태에 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이제 암도 만성질환처럼 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더욱 많은 환자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4~8일(현지시간) 일정으로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암학회(ASCO)의 조지 슬레지(George W. Sledge Jr) 회장(미국 인디애나의대 종양학·진단검사의학과 교수)은 6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제 암은 비만이나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병처럼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 된 것이다. 이 때문인지 학회는 이번 연례총회의 주제를 ‘환자, 경로, 진전(Patients. Pathways. Progress)’으로 정했다.
슬레지 회장은 "올해는 인류 암 연구에 큰 투자를 이끌어낸 미국 국가종양법(National Cancer Act)이 발효된 지 40년이 되는 해"라고 상기시킨 뒤 "우리는 이 같은 투자의 결과로 암환자의 생존기간이 연장됐으며, 삶의 질도 향상됐다는 평가를 매일같이 듣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학회장 한편에서는 암치료에 대한 슬레지 회장의 평가가 너무 긍정적인 ‘자평’ 수준에 불과하다는 전문가들의 비꼬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일부 종양학자들은 "암은 아직도 ‘정복해야 할 숙원’으로 남아 있고, 아직 연구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만성질환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지적에도 이번 암학회에서는 암의 메커니즘을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새로운 연구결과가 제시되면서 실제 암을 만성질환처럼 관리할 수 있는 시대에 한 발짝 더 다가섰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암학회서 발표된 것 중 주목할 만한 연구내용을 정리해본다.
◇여성에게 음주보다 흡연이 더 위험 = 미국 피츠버그대학 공공보건대학원 의학통계학과 스테파니 랜드(Stephanie Land) 박사는 1만3천명의 건강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를 통해 흡연이 음주에 비해 암 발생 위험을 더 높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성을 흡연기간에 따라 35년 이상과 15년 이상~35년 미만으로 나눴을 때 유방암 위험도는 흡연하지 않는 여성보다 각각 60%, 34% 높았다. 반면 15년 이하 흡연자는 유방암 위험이 증가하지 않았다.
대장암 위험 또한 흡연 경력이 긴 여성에서 더 높았다. 담배를 35년 이상 피운 여성은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 여성에 비해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4배나 됐다.
연구팀은 특히 흡연이 유방암 가족력이 있는 여성에게 유방암 발생 위험을 크게 높인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랜드 박사는 "가족병력이나 기타 요인으로 유방암 위험이 큰 여성이 장기간 담배를 피우면 다른 여성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면서 "이번 연구는 여성의 흡연이 유방암 위험에 미치는 영향을 전향적으로 평가한 최초의 대규모 연구"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방암 가족 병력이 있는 여성은 담배를 끊고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음주는 이번 연구에서 유방암 발병과 상관성이 없었다. 오히려 하루 한 잔 정도의 적당한 음주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대장암 위험을 60% 감소시켰다.
◇자궁경부암 진단엔 HPV 검사가 세포진 검사보다 정확 = 미국국립암연구소 암역학 분과 호르무즈 카트키(Hormuzd Katki) 책임연구원은 정기 자궁암 검진에서 인간유두종바이러스(HPV) 검사와 세포진 검사(Pap smear)를 병행한 여성은 검사주기를 기존 1년에서 3년까지 안전하게 연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특히 자궁경부암 진단에서 HPV 검사가 기존 세포진 검사보다 더 정확도가 높을 수 있다는 점도 규명했다.
카트키 박사는 "이번 결과는 HPV 검사와 세포진 검사에서 각각 음성, 정상으로 나온 여성이라면 3년 후 재검사를 받아도 안전하다는 것을 공식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결과는 HPV 음성 결과만 있어도 검사주기를 3년으로 연장하는 데 매우 높은 신뢰감을 지닐 수 있다는 의미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기 임상검사를 통한 추가적인 증거와 전문가 패널의 공식 권고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궁경부암은 성 접촉을 통해 전염되는 HPV 감염이 원인이다. 자궁 경부에서 세포 검체를 추출해 바이러스 DNA를 검출하면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다. HPV는 감염돼도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사라지게 되지만 일부는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보통 처음 감염된 이후 수십 년 지나야 발병한다.
세포진 검사 도입으로 자궁경부암 발병률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검진 프로그램에 HPV 검사를 추가해 병행하면 발병률을 더욱 줄일 수 있다는 게 카트키 박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병행 검사가 실제 임상에서 잘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의사나 검사를 받는 여성 모두 검사간격을 1년 이상 연장해도 안전할지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 난소암 진단법 사망 위험 낮추지 못해 = 유타대의대 솔트레이크시티 헌츠먼 종양연구소 선드라 바이즈(Saundra Buys) 교수는 여성 8만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조기 난소암 진단에 ‘CA-125 혈액검사’와 ‘경질초음파’를 사용해도 종양에 의한 사망 위험을 낮추지 못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들 검사가 증상을 진단하고 질병 상태와 난소암 진단 환자에 대한 치료제의 효율성을 측정하기 위해 광범위하고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집단에서 병을 진단해내는 데는 유용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바이즈 교수는 덧붙였다.
바이즈 교수는 "난소암 조기 진단을 위한 좋은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CA-125와 경질초음파 검사로 난소암을 조기에 찾아낼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지만, 결과는 이 검사가 효과적이지 않고 거짓 양성이 많아 실제로는 피검자에게 해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남성, 44~50세 때 전립선 검사는 필수 = 전립선 특이항원(PSA) 농도를 측정하면 전립선암으로 사망하거나 전이성 전립선암으로 발전할 위험도를 향후 최대 30년까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결과가 뉴욕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한스 릴자(Hans Lilja) 박사팀에 의해 제시됐다.
PSA는 전립선암 가능성이 큰 사람에게만 특이적으로 나타나는 물질로, 이 수치를 보면 전립선암 여부를 추정할 수 있다. PSA 수치가 3.0ng/㎖ 이상이면 전립선암 고위험군으로 본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전립선암 사망자의 44%가 44~50세 때 측정한 PSA 수치(1.6ng/㎖)가 상위 10% 이내인 남성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를 근거로 릴자 박사는 "모든 전립선암 사망의 절반 가까이는 이들 소수의 집단에 해당하는 남성을 집중 검사하면 예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동일 연령 집단과 비교하면 PSA 수치가 낮은 남성은 상대적으로 전이성 전립선암으로 발전하거나 수십년 후 전립선암으로 사망할 위험이 더 낮으며(28% 대 0.5%), 검사는 평생 세 차례만 받으면 된다는 점도 새롭게 알아냈다.
(시카고=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