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 키트’온라인 판매로‘죽을 권리’논쟁 재연
지난해 12월 오리건 주 세일럼, 제이크 클로노스키는 동생 닉의 방문을 두드렸다. 잠긴 문 안에선 기척이 없었다. 문을 뜯고 들어간 그의 눈앞엔 참담한 광경이 펼쳐 있었다. 29살의 동생은 침대에 누운 채 죽어 있었다. 머리에 헬륨개스 탱크로 연결된 튜브가 달린 플라스틱 봉지를 쓰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한 여성이 온라인을 통해 주문판매하는 이른바 ‘자살 키트’를 사용한 개스에 의한 질식사였다. “그 여자의 현금 인출기 속 어딘가에 내 동생이 목숨 값으로 지불한 60달러짜리 체크가 있을 것”이라며 제이크(30)는 자살 키트 ‘행상인’에 대한 분노를 억제하지 못했다.
과학교사 출신 91세 할머니의 60달러 자살도구 전세계서 주문
FBI,‘우편 사기’ 혐의로 압수 수색, 위법 여부는 아직 불확실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인근 엘카흔에 거주하는 샬롯 하이돈이 파는 것은 ‘간단한 죽음’을 위한 상품이다. 나비 스티커로 장식된 박스 안에는 투명 플라스틱 봉지와 의료용 가는 튜브가 ‘마지막 퇴장(Final Exit)’이라는 책자와 함께 들어 있다. 헬륨탱크는 파티용 풍선을 불기위해서 라고 하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안내도 곁들였다.
헬륨개스를 마신 후 사망까지의 시간은 불과 몇 분이며 키트의 가격은 60달러 - ‘싸고 간단한 죽음의 도구’가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고 아무에게나 온라인으로 손쉽게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오리건 청년의 자살로 미디어의 조명을 받으면서 ‘죽을 권리’에 대한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주문은 세계 각처에서 들어온다. 젊은 사람부터 노인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우울증부터 불치병까지 구입 이유도 가지자지다.
초등학교 과학교사 출신으로 91세인 하이돈은 “사람들은 빌딩에서 뛰어내리거나 목을 매서 자살을 한다”면서 그러나 자신의 제품은 사람들을 “영원히 잠들면서 평화롭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주장한다.
오리건 사건이후 주문은 거의 두 배로 늘어 한 달 100건에 달하고 있으나 하이돈 자신은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지난주엔 FBI가 가택을 수색, 우송하려던 자살 키트 수십 박스를 압수했다.
우편 및 전송 사기위반에 대한 수사라고 했다. 하이돈이 불량상품 판매와 의료도구 불법처리를 금지하는 현행법을 위반했는지도 수사 대상이라고 했다.
특정 조건하의 자살을 합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오리건에선 자살도구 판매를 불법화시키는 법안이 상정됐다.
하이돈은 안락사를 돕다가 1999년 감옥에 간 의사 잭 커보키안에 비유되고 있지만 남가주 랜치스타일의 자택에서 기자들을 만난 친근한 말씨의 사교적인 그녀의 모습은 ‘죽음의 의사’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130여명의 안락사를 도와 2급 살인죄로 실형을 선고받고 8년 6개월간 복역한 바 있는 커보키안은 3일 타계했다)
챙 넓은 모자에 선글래스를 쓴 키가 큰 하이돈은 기자들에게 자신의 목적은 연민에서 나온 사명감이라고 강조했다. ‘퇴장’을 돕는 플라스틱백은 고통스런 삶을 인도적인 방법으로 마무리해준다는 것. 연방당국의 수사에 대해선 걱정보다는 황당했다면서 자신이 감옥에 간다는 생각에 대해선 웃음이 나올 지경이라고 했다.
“내가 범죄자처럼 보입니까?” 잘 손질된 앞마당 잔디밭에 서서 그녀는 기자들에게 되물었다.
“네”라고 그녀의 비판자들은 대답할 것이다. 안락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도 그녀가 구매자의 신원이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채 자살 키트를 팔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살하려는 사람 중엔 이성적인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자살예방기관인 미 자살학협회의 디렉터 앨런 버만은 말한다.
“성인을 가장한 아이들이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여자는 자신이 그 물건을 파는 상대가 누구인지 생각을 안하는 겁니다.배경 체크도 없이 손에 총을 쥐어주는 셈이지요 ”
하이돈이 자살 돕기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건강했던 남편이 결장암에 걸린 후 긴 투병 끝에 고통스럽게 죽는 것을 지켜보면서였다.
그후 몇 년에 걸쳐 하이돈은 약 50명의 헬륨후드 방법을 사용한 죽음의 자리에 입회했다. 다른 안락사 주창자들처럼 그녀도 처음엔 키트 사용법을 시범하면서 사람들과 롤 플레이를 했다. 상상만큼 으스스한 경험은 아니라고 그녀는 말한다. “봉지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며 ‘난 언제나 모자 쓴 고양이(Cat in the Hat)’가 되고 싶었어요‘라고 농담하는 여자를 본적도 있었다”고 그녀는 전한다.
자살 키트를 판매하는 GLADD(Good Life And Dignified Death)그룹의 설립자이자 디렉터인 그녀는 자택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아들과 함께 물건을 포장해 싱가포르에서 사이프러스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고객들에게 우송한다. 역시 플로리다 등 노인 밀집지역에서의 주문이 많다. 자신의 상품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족들에게서 감사편지는 늘 오고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나 모든 유족이 감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오리건의 제이크 클로노스키는 그녀가 ‘죽음을 파는 장사치’라고 비난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회에서 이 회사는 죽음을 행상하는 틈새시장을 발견한 겁니다”
하이돈은 닉 클로노스키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 닉은 몇 달동안 자살을 생각해 왔으며 충동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미성년자를 피하기 위해 구매자의 운전면허 복사본을 요구할 생각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하이돈에게 지금 당장 급한 것은 FBI에게 압수당한 키트를 찾아오거나 안되면 주문한 사람들에게 환불해주는 일이다. “사람을 죽이는 돈벌이를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내게 관심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들을 돕는 일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1994년 오리건은 미국에선 처음으로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의사의 도움으로 자살하는 안락사를 합법화시켰으며 그 후 워싱턴과 몬태나에서도 합법화되었다. 2010년 오리건에서 이법에 따라 자살한 사람은 65명으로 집계되었다.
한편 연방하원에서는 타인의 자살을 부추기는데 온라인을 사용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을 고려중이다. 2003년 캘리포니아에서 19세 여대생 수지 곤잘레스가 온라인으로 지시를 받아가며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추진된 것이다.
‘마지막 퇴장’이라는 책자가 포함된 플래스틱 튜브와 봉지로 이루어진 자살 키트.
온라인으로 ‘자살 키트’를 판매하는 91세 전직 과학교사 샬롯 하이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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