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저지 한인천주교회 메이플우드 성당 원로사제
▶ 이민자들에 마음의 평화 주고파...
미동북부 한인가톨릭계의 살아있는 역사라 불리는 박창득 몬시뇰. 지난 3월 서품 50주년 금경축하식을 치른 박신부가 평생 해온 일은 엄청나다. 우리들의 영원한 신부님의 북한 동포 사랑과 ‘예쁜 작은 원수들’ 사랑 이야기를 들어본다.
▲뉴저지 한인천주교회의 시초
“1970년대초 가톨릭 신자가 개신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1972년 12월3일 저지시티 미국성당(Our Lady of Victories) 도서실에서 한국어 미사를 시작한 것이 뉴저지 한인천주교회의 시초가 되었다”고 말하는 박창득 몬시뇰(76).
다섯 한인가정으로 시작된 첫 미사는 그후 박신부의 손길이 닿는 뉴저지 곳곳에 성당을 탄생시키며 수많은 한인 신자들의 숨통을 터주었다.1972~2000년 28년간 뉴저지 한인천주교회(Saint Andrew Kim Church, 성 김대건 성당) 주임신부로 재임하면서 뉴저지에만 5개(103위, 데마레스트, 브라운스 밀, 애틀랜틱 시티, 뉴브런스윅) 한인성당을 설립했고 수많은 공소를 낳아 키웠다.
“신자가 늘고, 성당이 점차 커지고, 내가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다 하느님 뜻이지. 오는 5월 28일에는 할아버지가 되지. 손자 둘을 두었어. 기쁘고 자랑스러워”흐뭇해하는 박신부는 9남매를 둔 아버지 신부다.
여섯 사제(이 데이빗, 조민현 요셉, 박흥식 돈보스코, 김정수 디다고, 이경 바오로, 조후연 요셉-뉴왁교구)와 1명의 부제(김성규요셉), 2명의 수녀 (이데레사-살레지오회, 박젬마-평화의 마을수도회)에 현재 본당출신 신학생이 셋이다. 박신부가 설립한 메이플우드 성당에서 조민현 요셉 신부가 나왔고 오는 28일 조홍래 베드로 부제와 이충우 미카엘 부제가 사제서품을 받아 손자 신부가 되는 것이다. 이로써 메이플우드 성당은 8명의 사제를 배출하는 것이다.
2000년 4월 뉴왁교구 추천으로 요한 바오로 2세가 임명하여 박창득 몬시뇰(Prelate of Honor Monsignor)로 추대된 박신부(76).
1989년 한인 신자들과 북한을 방문, 평양 장충성당에서 북한 천주교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한 이래 북한을 35번이상 다니면서 빵과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고 있다.“한 핏줄인 북한사람들은 배고파 죽어 가는데 우리는 음식이 남아돌아간다. 원래 라면공장을 조직적으로 하여 맥도널드처럼 전국적으로 하고 싶었다. 1996년~2002년 평양 국수공장을 통해 식량을 도와주었다. 지금은 어린이 500명을 수용할 유치원을 나진선봉 지구에 짓고 있다.”세 차례에 걸쳐 간 수술을 하고 건강을 회복 중인 박신부는 작년 10월 20일 나진 선봉에 갔을
때 유치원 공사를 시작했다. 기초와 지하실은 작년 10월에 끝냈고 오는 10월에 완공할 예정이다. 완공 후에는 매월 교사들의 봉급과 어린이들의 양식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현재는 한국과 북한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기금이 걷히지 않는 편이지만 뜻있는 신자의 도움에 의지하여 공사를 진행 중이다. “식량이 풍족해지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통일을 논의할 수 있는 바탕이 생긴다. 그래서 열심히 도와주려 한다”고 말하는 박신부, 북한동포 돕기에 힘쓰는 그가 신부가 된 동기는 놀랍게도 공산주의자로부터의 핍박 때문이다.
▲살아나면 신부가 되겠다
1935년 충북 청주 출생인 박신부는 4남매 중 세 번째로 태어나 신앙심 깊은 부모님과 함께 청주제일장로교회를 다니다가 서산으로 이사 가며 온식구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소년 박창득은 시집살이를 심하게 하던 어머니가 장롱문 안쪽에 예수님 상본(像本)을 붙여놓고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몰래 들여다보는 것을 보았다. 서산 중학교 3학년때 6.25가 나고 인민군이 들어오자 성당을 함께 다니던 5~6명의 중학생들과 “우리가 성당을 지키자”며 손칼, 망치를 들고 성당을 지키기도 했다. 그러다가 좌익 사상을 지닌 나이 많은 급우들에게 개신교 학생 한명과 함께 반동분자라며 인민재판을 당했다.
소년 박창득은 고해성사를 보는 마음으로 “인민군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발길질은 물론 혁대 등의 도구로 몰매가 쏟아졌다. 한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맞아 집에서 몸조리 하던 중 내무서에서 처치할 학생 명단 30여명 중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누나네 집으로 피신을 갔다. 구석방에 숨어 지내며 유일하게 갖고 간 가톨릭서적 ‘준주성범’(Imitatio Christi)를 읽고 또 읽었다.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나머지 삶은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결심한 소년 박창득은 전쟁이 끝나고 인민군이 물러가자 본당신부님께 찾아가 신부가 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어머니도 “신학교에 가면 좋겠다”고 하셨다.그는 1961년 가톨릭 대학 신학부를 졸업한 후 한국 천주교 대전교구 사제로 서품받고 1967년 이태리 안젤리꿈 대학에서 종교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1970년 미국으로 왔다. 펜실베니아주 포코노 산 세인트 메리 성당 보좌신부로 온 것이다.
“미국이 사회학이 앞서있어 공부를 하러 온 것인데 건강도 그렇고 공부하기 어려워하던 차에 한인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고 말한다.
박신부는 70~76년 시절을 얘기하면서 허허하고 소탈한 웃음부터 짓는다.
“직장과 병원 알선, 픽업에 변기 수리, 법정 통역 등 온갖 일을 해야 했다. 사목자가 아닌 소셜워커로서의 일에 지쳐서 한국으로 돌아가려했다. 한국에 가서 주교님과 의논하여 공주 본당신부로 내정된 후 짐을 정리하러 미국에 다시 왔다. 마지막 8주동안 1주에 한번씩 주말 피정을 한 것이 성령세미나다. 세미나를 하면서 마음의 평화가 되살아나고, 성서의 말씀도 생생하게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이민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것만은 동포들에게 전달해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것이 박신부를 우리 곁에 머무르게 한 요인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속상하고 상처받아도 용서하고 나면 ‘예쁜 작은 원수들’이 되는 비결도 이 세미나에서 배웠다. 이렇게 1979년 시작된 성령의 바람이 불일듯 일어나 뉴저지 한인천주교회는 1980년 7월 미동부 처음으로 자체 성전을 마련했고 몬클레어 성당을 거쳐 오렌지 성당, 2005년 현재의 메이플우드 성당으로 이전하며 점차 커졌다.
박신부는 주일학교와 한글학교, 부부 주말피정(WWME), 학생피정, 무료건강진단, 복지회관, 신용조합, 각종 동호 모임을 만들어 즐겁게 지내게 했다.
현재 매달 발행되는 미주가톨릭 다이제스트는 1986년 박신부의 은경축 축의금을 기부해 첫 호를 발간한 것이고 1988년 11월 평화신문 발간, 1983년 북미주 한인사제협의회를 창립하여 초대, 2대, 3대 회장으로 12년간 봉사했다.
▲남녀 사랑에서 하느님 사랑을
“이제는 한인 사제 중 반 이상이 1.5세라 신부와 신자간 더욱 협조가 긴밀해 질 것이다”고 낙관하는 박신부는 지금도 초등학교 3학년이던 46년도에 돌아가신 아버지 사랑을 못잊는다."아버지 사랑을 크게 받았다. 아버지 묘에서 눈물이 말라버렸다. 그이후 우는 것을 잊어버렸다. 하느님은 살아계신다, 하느님은 돌아가시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영원히 살아계신다는 말씀을 청주장로교회 목사님에게서 듣고 어린 마음에 아버지도 살아나시지 않을까 막연하게 기대했다.”정작 평생 참았던 눈물이 터진 것은 한국의 TV 드라마를 보면서다.
“가을동화라는 드라마였는데 신부 두명과 함께 보다가 남녀의 순수한 사랑에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그야말로 봇물처럼 터졌다. 아, 저것이 하느님의 사랑이구나, 사심없이 모든 것을 주는 사랑,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며 평생 막혔던 눈물이 다 터졌다”2005년 12월 31일 은퇴한 박신부는 아침마다 뉴저지 오렌지타운에 있는 꽃동네에 가서 아침미사를 봉헌한다. 미국인 할아버지, 한인 할머니, 봉사자들과 함께 미사를 올리는 그는 여전히 소외되고 배고픈 자를 살피는 삶을 살고 있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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