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간 방대한 자료 추적‘장수의 비결’결론은…
장수의 비결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객관적 대답을 구하려면 장수한 사람들의 특성과 생활습관을 면밀히 관찰해 이들이 공유하는 공통분모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자료는 진시황의 ‘불로초’만큼이나 구하기 어렵다. 표본집단을 정해 장기간 정기적인 관찰을 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워낙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연구에 착수할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스탠포드 연구팀 대이어 1,528명 사례 수집
신중하고 꾸준하고 깐깐한 스타일이 장수
80년에 걸쳐 이어진 학자들의 ‘이어 달리기’ 연구가 ‘장수 프로젝트’라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그러나 심리학자인 UC리버사이드의 하워드 S. 프리드만 박사와 라시에라 대학의 레슬리 R. 마틴 박사는 선배 학자들이 60년에 걸쳐 축적한 방대한 자료에 힘입어 불가능에 가까운 ‘장수 연구’에 한 단락을 지을 수 있었다.
물론 추가 조사를 실시하고 자료를 분석하기 위해 20년간 품을 팔아야 했지만 스탠포드대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루이스 터만 박사와 그의 후임 연구원들이 1921년부터 장장 60년간 공들여 수집한 자료가 없었다면 이들이 공저로 내놓은 ‘장수 프로젝트’(Longevity Project)는 아마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터만 박사가 시작한 장기추적 연구는 원래 지적인 지도력의 사회적 예측변수를 알아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쉽게 말해 어떤 특성을 지닌 어린이들이 미래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지를 수십 년에 걸쳐 지켜보는 게 이 연구의 본래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터만 박사는 장래가 촉망되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11세 어린이 1528명을 추려낸 뒤 이들의 놀이습관과 부모들의 이혼경력, 성격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수집했다. 터만 박사의 연구팀은 5년 혹은 10년 주기로 연구대상인 어린이들은 물론 이들의 부모와 교사들까지 접촉해 가며 자료를 보충했다.
터만 박사가 1956년 타계한 후에도 그의 유업은 후배들에 의해 줄기차게 이어졌고 20여년 전 사제지간인 프리드만과 레슬리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프리드만 박사는 당시 대학원생이던 레슬리의 지도 교수였다. 1990년 터만 박사팀의 자료를 접한 두 사람은 이후 20년간 표본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일일이 추적,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의 경우에는 사망연도를 확인하고 생존자의 경우에는 추가 면접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자료를 보완했다.
그렇다면 프리드만과 레슬리 박사가 지난 20년간 방대한 자료더미를 뒤져 찾아낸 장수의 비결은 무엇일까. 이들은 ‘장수 프로젝트’를 통해 장수와 관련한 다섯 가지 대표적 속설을 제시한 후 이를 통계자료와 일일이 대비하는 방식으로 오래 사는 사람들의 특성을 소개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명랑하고 쾌활한 사고방식이 스트레스를 줄여 장수를 가져온다.
그럴듯한 얘기지만 통계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다. 장기추적 조사결과 연구 대상자들 가운데 어린 시절 “천하태평”이라든지 “부정적인 면을 보려들지 않고” “지극히 낙천적이며 쾌활한 성격”을 지녔다는 등의 평가를 받았던 사람들이 장수한 사례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프리드만 박사는 명랑하고 즐거운 심리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라는 속설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나치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은 건강 이상 등 비상사태나 돌발상황에 대비하려 들지 않고 위험한 일에 신중하게 대처하지 않는 습성을 보인다. 낙천적인 태도는 인생을 즐겁게 사는 데는 꼭 필요한 덕목일지 몰라도 장수의 비결은 아니다. 물론 통계결과가 그려낸 장수인도 냉소적인 ‘삐딱이’나 ‘외톨이’는 아니었다.
▶정원 일이나 산책은 건강을 지키기에 불충분하다.
정부의 지침은 한 번에 30분씩 최소한 1주일에 4차례 완만하거나 강도 높은 수준의 운동을 할 것을 권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업데이트된 의학적 조언이지만 실질적인 충고는 못된다.
프리드만과 레슬리는 이번 연구에서도 중년의 신체적인 활동성은 건강과 장수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드러났다며 “그러나 몸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 하겠노라 다짐했다가 얼마 못가 싫증을 내고 때려치운 사람들은 십중팔구 장수에 이르지 못했다”고 전했다.
장수한 사람들은 어느 한 시점에 시작한 활동을 평생 계속하는 일정한 패턴을 보였다.
▶심각한 것은 건강에 해롭다.
장수한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보여준 가장 공통된 특성은 신중함이었다. 마치 과학자나 교수처럼 신중하고, 집요하며 생각과 행동이 잘 정돈된 사람이 오래 잘 살았다. ‘단순 공주’ ‘명랑 왕자’처럼 근심거리 하나 없는 듯 생활하는 사람의 수명은 긴 편이 못됐다. 연구팀은 “신중한 사람은 건강을 지키는 일에도 신경을 쓰고 위험스런 활동을 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프리드만 박사는 청소년 시절 검소하고 생각이 구체적이며 끈질기고 책임감이 강했던 사람들이 가장 오래 살았다고 밝혔다.
한 가지 특기할 점은 장수한 사람들 가운데 다소 신경질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사람 좋다”는 호평을 듣는 흐늘흐늘한 ‘무골호인’보다 ‘깐깐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장수하는 경향을 보였다.
▶쉽게 살아라. 일 너무 열심히 하면 오래 못산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사람이 요절한 사례는 드물었다. 반면 별다른 발전도 없이 보따리를 싸들고 이리 저리 일자리를 옮겨 다닌 사람들은 승진이나 비즈니스 확장으로 꾸준히 책임범위를 넓혀간 직장인이나 사업자들에 비해 단명한 것으로 조사됐다.
70세 이후까지 일을 계속한 연구 참여자들 가운데서도 사회적 관계, 행복감 혹은 웰빙보다 생산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 오래 살았다. 행복하거나 느슨한 삶을 즐기는 참여자들에 비해 자신의 목표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쪽의 수명이 길었다는 얘기다.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고, 그 목표를 향해 끊임 없이 정진하는 자가 장수한다.
▶결혼해야 오래 산다.
프리드만 박사와 레슬리 박사는 재혼자, 이혼을 전혀 하지 않은 기혼자, 이혼자, 독신자들 사이의 수명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성별차도 컸다. 이들은 “성적으로 만족스럽고 행복한 결혼은 미래의 건강과 장수 여부를 가늠하는 데 유용한 선행지표”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독신여성은 기혼여성과 수명차를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흡족한 사회생활을 꾸려가는 독신 여성의 경우는 기혼 여성에 비해 절대 명줄이 짧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네 부류 가운데 최고 장수그룹은 기혼 남성이었다. 독신남은 재혼남보다 수명이 길었지만 기혼남에 비해서는 짧았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남편과 이혼 후 홀로 사는 이른바 ‘돌싱’(돌아온 싱글)들이 기혼 여성만큼이나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결혼은 여성들의 수명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운동의 양보다 지속성에 무게를 둔 사람들이 더 오래 산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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