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선 요즘 ‘거리의 예술(Art in the Streets)’ 전시회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거리의 벽과 버스와 지하철과 유리창 뒤쪽에 휘갈겨졌던 도심의 그래피티가 미술애호가들의 찬사 속에 전시되고 있다.
그러나 미술관에서 몇 블럭 떨어진 곳에선 같은 종류의 벽화(혹은 낙서?)를 그리다 적발되면 당장 유치장 행이다. 경찰당국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주 이 전시회 개막 이후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빌딩과 가로등, 우체통 등에 그래피티가 부쩍 늘어났다는 것. 그동안 경찰의 노력으로 상당히 감소되었던 거리낙서가 전시회를 계기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는 경찰은 단속 또한 다시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LA 현대미술관 ‘거리의 예술’ 전시회 계기로 논란 재연
“동굴벽화에서 미술 시작” “공공건물 훼손하는 밴달리즘”
LA의 주류 문화계가 칭찬해 마지않는 똑같은 일을 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체포해야 하다니, 경찰의 입장이 다소 난감하긴 하다.
실제로 일각에선 이번 전시회로 인해 40년 해묵은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 그래피티의 본질은 무엇인가, MOCA의 게펜 현대관 같은 주류미술관이 많은 사람들이 밴달리즘으로 간주하는 이같은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은 적절한 일인가.
“이 근처의 엉터리들이 모두 그래피티 찬미자들을 이용하려는 것처럼 들린다”고 LA의 경찰국장과 뉴욕의 경찰 커미셔너를 역임하며 거리 그래피티 근절을 우선과제의 하나로 삼았던 윌리엄 브래튼은 말한다.
브래튼은 미술관측에 전시회를 중단하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결코 관람하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전시되고 있는 게 바로 우리가 이 부근에서 매일 본 것일 테니까”
지난주엔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불리는 한 프랑스인 태거(tagger, 그래피티 예술가중 한 종류)가 미술관 인근 빌딩 벽에 기어오르다가 체포 구금된 후 석방되었다. 그를 석방한 후에야 빌딩 벽에서 태그를 발견한 경찰은 그를 다시 찾고 있다.
LA경찰국의 선임 오피서 잭 리히터는 프랑스 태거의 에피소드가 이번 전시회로 ‘용기’를 얻어 급증된 리틀도꾜 인근 그래피티 케이스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는 공공장소를 훼손시키는 사람은 누구건, 설사 그의 ‘작품’이 미술관에 걸릴 수준의 것이라 해도, 반드시 기소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누구든 반드시 감옥에 갈 것이다. 티켓을 주는 게 아니다. 내가 직접 감옥에 집어넣을 것이다”
MOCA의 디렉터 제프리 다이치는 전시회와 관련된 낙서 증가는 과장된 것이라고 일축하면서도 미술관은 인근지역에서 그래피티가 발견될 경우 언제라도 제거인력을 보낼 준비가 되어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론 극소수일 뿐이다. 오히려 이처럼 너무 관심을 쏟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되는 전시회를 위축시키고 밴달리즘을 조장하는 역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40,586 스케어피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이 전시회는 1년 동안 준비한 것으로 그래피티 전시회 중 가장 야심찬 것이라고 한 미술관 관계자는 말했다. 그래피티를 예술의 한 형태로 인정하는 확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40년전 뉴욕의 그래피티 라이터인 ‘타키 183’은 당시 5개 카운티에 걸쳐 지하철과 다리, 학교 운동장과 건물 벽에 그의 독특한 태그를 그려 거친 도심지 생활의 상징으로 떠올랐었다. 타키의 태그는 이번 전시회에서도 포함되었으며 개막일에 그 자신이 참석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거리 예술가로 이름 난 키스 헤어링, 셰퍼드 페어리, 샤즈 보호르케, 헨리 샬판트 등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회 자체는 대성공이어서 개막 첫 주엔 입장객들이 긴 줄을 이루기도 했다. 관람객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솔직히 난 전에는 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이젠 이 같은 그래피티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고 영화제작자 에릭 왓슨은 말한다. 미술교육가 신시아 밀튼버거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표현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거든다. 멜로즈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아트 딜러 닐스 캔터는 “미술은 원시인이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LA전시회를 둘러싼 논쟁은 전 세계 많은 도시에서 일어났던 논쟁을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 그래피티는 정당한 예술의 한 형태인가? 사회는 이를 폐기시켜야 할까, 아니면 전시회를 통해 인정해야 할까? 그러나 이번 전시회로도 확실한 결론은 아직 나올 듯싶지 않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LA현대미술관 ‘거리의 예술’ 전시회. 경찰은 이 전시회 때문에 다운타운의 거리낙서가 급증했다면서 단속강화를 다짐했다.
미술관 외벽을 장식한 사진벽화에까지 휘갈긴 낙서.
LA 다운타운 길가 유틸리티 박스에 누군가 그려놓은 성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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