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4월 한인 이민사회에 큰 상흔과 충격을 남겼던 4.29 폭동이 벌써 내년이면 20주년이 된다. 4.29 폭동은 인종화합과 정치력 신장이라는 큰 화두를 던지며 미국내 한인사회 인식 전환에 커다란 분수령이 됐지만, 19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어느덧 잊혀져가는 사건이 되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4.29 폭동이 한인사회에 미친 영향과 교훈을 후세들에게 알리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노력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4.29 폭동 19주년 기념일을 맞으며 한인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4.29의 역사와 교훈 되새기기 노력’의 궤적을 뒤따라가 본다.
연극 ‘The Space in Between’에서 리커를 운영하는 여주인공이 폭동으로 숨진 모친의 영정을 들고 오열하고 있다.
“아픈 역사 알리자” 자료 집대성 작업
문화·학술적 접근위해 연극 재구성
인종화합·정치력 신장 방안 모색도
■체계적인 기록 남기기
한미연합회(KAC)는 4.29 폭동이 발생한 1992년 4월부터 6월까지 집중 보도된 한인 언론사의 각종 폭동관련 기사와 사진, 오디오, 비디오 등을 집대성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LA 폭동은 한인 1.5세와 2세들에게도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운 전환점이 된 한인 이민사에 획을 긋는 사건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이에 대한 조명이 부족한 실정이어서 2012년 LA 폭동 20주년을 앞두고 폭동관련 자료를 집대성해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을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의 에드워드 박(사회학) 교수에게 위촉해 현재 추진하고 있다.
한미연합회 LA지부의 그레이스 유 사무국장은 “한국어 신문과 방송에 나온 기사와 자료를 영어로 번역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2세 한인들은 물론 주류사회에도 알려 줄 것”이라며 “2세들이 부모 세대가 겪었던 어려움을 알아야 역사의 계승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 아이덴티티가 형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폭동에 대한 1세 한인들의 역사 인식도 중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폭동 때문에 너무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폭동으로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미국이라는 다인종 사회에서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되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레이스 유 사무국장은 “체계적인 자료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폭동의 원인과 교훈 등을 이젠 2세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1세들도 피해의식 때문에 폭동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 말고 역사적 의미를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폭동에 관한 체계적인 기록을 남기기 위한 커뮤니티의 지원과 관심 또한 절실한 실정이다. USC 부부총장과 LA 시장실 자문위원을 지낸 케이 송 박사는 “기록을 제대로 보관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USC 코리안 헤리티지 도서관 등 전문기관과 연대해 자료를 영구적으로 남길 수 있는 방안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LA 폭동의 비극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연극을 제작해 공연한 UCLA 한인학생회 ‘한울림’ 학생들.
■2세들의 간접 체험
이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4.29 에세이 콘테스트가 진행되기도 했다. 한인 2세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폭동을 직접 겪고 피해를 입은 한인들과 경찰 및 변호사 등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후 폭동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다인종이 모여 사는 LA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등의 내용을 에세이로 작성한 것이다.
이번 에세이 콘테스트에 참가한 김수연(토랜스 노스고교 12학년)양은 “LA 폭동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발생한 사건이라 책이나 비디오 등을 봐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며 “폭동을 경험한 한인들과의 인터뷰, 에세이 작업을 통해 폭동은 나의 내면에 살아 숨 쉬는 역사로 생생하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김양은 이번 에세이 콘테스트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LA의 인종문제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고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LA 폭동을 경험한 인터뷰 대상자인 한인 입양아 출신의 에밀 맥 LAFD 부국장은 폭동 당시 한인타운과 사우스LA 등에서 14년 경력의 캡틴 소방관으로 근무했는데 폭동 둘째 날 한인타운에 출동해 8가와 버몬트 상가 등이 불타는 것을 보고 당시 받은 충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맥 부국장은 “폭동은 불행한 사건이지만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인종이 모여 사는 LA에서 상호 간에 차이점을 이해하고 화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에세이 콘테스트는 폭동을 경험한 한인들과 이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학생들 간의 만남을 통해 잊혀져가는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역사의 교훈을 얻는 계기가 됐으며 인터뷰 내용 자체가 귀중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4.29 에세이 콘테스트에 참가한 김수연양이 한인 입양인 출신의 에밀 맥 LA소방국 부국장으로부터 4.29 폭동 당시 경험을 듣고 있다. (박상혁 기자)
■문화·학술적 조명 필요
4.29에 대한 문화적, 학술적 조명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면서 연극 등을 통해 4.29를 재조명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UCLA 한인학생회 ‘한울림’은 지난 7일 캠퍼스 내 로이스홀 무대에서 ‘2011 한국 문화의 밤’ 행사의 일환으로 LA 폭동의 비극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연극 ‘The Space in Between’을 무대에 올려 잊혀져가는 폭동의 아픔과 상처를 되짚어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연극은 폭동 당시 편의점을 운영하던 한인 여성의 절망적인 상황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표현했다.
이 날 연극을 관람한 학부모 전원호씨는 “어리고 철이 없게만 봐왔던 딸이 연극의 재정을 담당하고 직접 출연하면서 폭동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신도 큰 자극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을 총괄한 조한나 감독(UCLA 4학년)은 “아시안 아메리칸학 시간에 김대실씨가 제작한 4.29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이 연극이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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