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심장마비와 뇌졸중 위험을 줄여준다는 연구결과가 근래 들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커피가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난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 커피는 심장에 부담을 주는 기호품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UC샌디에고 스트로크 센터 소장 토마스 헴멘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딱히 그럴 만한 증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교 음료로 제 격이고 향은 물론 맛까지 좋다보니 무언가 숨겨진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공연스런 의심”을 샀던 탓이다. 물론 ‘진상규명’을 위한 과학적 접근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커피와 심장건강 사이의 ‘의심스런 관계’를 파헤치려는 연구가 심심치 않게 이뤄졌지만 딱 부러지는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심장마비·뇌졸중 원인’누명 벗었지만
‘심장건강에 좋다’는 발표엔 의견 분분
당시 일부 연구진은 커피가 심장마비 위험을 높인다고 발표한 반면 심장발작과 뇌졸중의 위험을 줄여준다는 상반된 내용의 논문도 여러 건 나왔다. 게다가 이들 사이를 비집고 커피와 심장건강 사이의 연결고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줄줄이 끼어들었다.
이처럼 ‘3인3색’의 하나마나한 조사결과가 나온 이유는 연구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표본 집단이 너무 적었고, 커피의 영향을 살피는 추적조사 기간도 턱없이 짧았다. 이런 문제점들을 나름대로 극복한 첫 번째 연구는 10여년 전 하버드 보건대학의 주도로 이뤄졌다. 하버드 보건대는 4만5,000명의 건강한 전문직 남성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뒤 이를 바탕으로 지난 1990년, 커피가 심장마비나 뇌졸중 발병위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하버드 보건대의 발표를 기점삼아 커피는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이로운 것도 아닌 ‘무익무해’(無益無害)한 음료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하지만 커피가 심장마비와 뇌졸중의 위험을 줄여주는 ‘건강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새로운 주장이 지난 수년간 봇물을 이루면서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연구결과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2008년 핀란드의 흡연 남성 2만6,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하루 여덟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커피를 조금만 마시거나 아예 입조차 대지 않는 사람에 비해 뇌졸중 위험이 23% 낮아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어 UCLA와 USC의 공동연구팀은 9,000명이 참여한 국민건강영양조사(NHNES)의 서베이 자료를 분석, 커피의 뇌졸중 위험 축소 효과가 비흡연자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2009년의 한 학술회의에서 UCLA-USC 연구팀은 하루 한두 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5% 정도인 반면 하루 여섯 잔 이상을 마시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 수치가 2.9%로 줄어든다고 밝혔다.
하버드대학이 2009년 학술지인 ‘서큘레이션’에 게재한 논문 역시 하루 두 잔에서 네 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한 달에 한 잔 이내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 비해 뇌졸중으로 숨질 위험이 19%에서 20%가량 감소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버드대학의 논문은 8만3,000명의 여성 간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아직도 진행중인 장기추적 조사 프로젝트의 세부항목 자료에 기초해 작성된 것이다.
일본에서도 올해 이와 거의 유사한 내용의 논문이 화제를 모았다. 일본 연구팀은 8만1,000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하루 한두 잔의 커피를 마시면 심혈관 질환을 23%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을 유출해 냈다.
이에 대해 듀크대 스트로크센터의 래리 골드스타인 박사는 “근년 들어 나온 연구결과들은 한결 같이 커피가 심장건강에 이롭다는 점을 시사하지만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커피를 마시는 것과 뇌졸중 위험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로 커피가 위험을 줄이는 원인인지는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USC 신경과 부교수로 USLA-USC 논문 작성자 중 한 명인 너시스 사노시안 박사도 골드스타인 박사의 견해에 동의했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커피 자체가 아니라 이런 차이들 가운데 하나, 혹은 여러 개가 결합해 뇌졸중 위험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 일부 연구를 통해 드러난 바에 따르면 커피 애호가들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흡연율이 높고 교육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으며 칼륨이 풍부한 음식을 즐긴다. 이런 차이점 가운데 흡연이 뇌졸중 등 심혈관계 질환 발병률을 낮춰주는 요인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 나머지는 상관관계가 분명치 않다. 사노시안 박사는 “연구과정에서 드러난 커피 애호가와 비애호가 사이의 이 같은 차이점 외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다른 요인들이 뇌졸중 위험을 줄이는 원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UC샌디에고 스트로크 센터 소장인 토마스 헴멘 박사는 커피가 건강한 혈관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주장을 입증해 줄 명명백백한 증거는 쉽게 나오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런 연구는 커피를 많이, 혹은 적게 마시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대거 선정한 후 이들의 커피 섭취량과 건강상태를 수 십년에 걸쳐 관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여기에는 엄청난 노력과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편 시더스-사이나이 하트 인스티튜트의 심장병 전문의 마크 우르만은 커피가 안전하다고 하지만 적극적으로 장려할 만한 음료는 아니라며 기왕에 커피를 마시지 않던 사람이라면 새로 커피 습관을 들이지 말 것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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