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현(뉴저지 메이플우드 성당 본당신부)
지금은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필자가 초등학교 (당시에는 국민학교였다) 5학년 과학시간에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신기한 실험을 했던 것이 떠오른다. 선생님이 나눠주신 이 특수한 종이를 물에 적셨다. 그때 내 앞에 있는 물이 산성이면 흰 종이가 붉은 색으로 변하고 알칼리성분이 있으면 청색으로 색깔이 변했다. 이 과정이 너무도 신기하여 아직도 그 시험지를 가지고 실험했던 기억만은 다른 기억과는 달리 생생하다.
우리 삶에도 이렇게 깨끗한 답을 주는 시험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살다보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깨끗한 물에 떠오르는 의문을 담그면 빨간색, 청색 등 알기 쉬운 답이 되어 보여 질 수 있다면. 그런 인생이라면 말다툼 할 필요도, 거짓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저 입 다 물고 있으면 즉석에서 나를 대신해서 대답을 해 주는 그런 시험지를 꿈 꿔본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는 그런 간단한 답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우리 인생살이에서 흑백의 논리처럼 분명하게 선을 긋고 살아 갈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자체가 내가 아직도 덜 성숙된 증거이리라.
인생은 혼란스러운 것이다. 심지어 지저분하다고 표현 할 수도 있다(Life is messy). 그렇지만 주어진 삶은 살아가야만 한다. 그것도 최선을 다해서 말이다. 이번 주가 예수님의 성지주일이다. 그분의 마지막이 성스럽고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탐욕과 죄악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모와 수난을 당하셨다. 조용히 복음을 음미한다. 감은 눈에 떠오르는 형상은 이 성주간 일주일 사이에 인간사의 온갖 추하고 악한 모습이 다 연출되어 떠오른다.
마치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카라마조프 형제들’에 나오는 인간군상 세상만사를 다시 읽는 것처럼 인간 삶의 모든 모습이 주마간산처럼 지나간다. 자신만만하게 충성을 다짐했다가 번쩍이는 칼날 앞에 죽을 것 같아 스승을 배신하고 도망하는 제자들, 닭이 울자 그때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눈물을 흘리는 베드로, 냉정하게 주판알을 굴려 한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자신의 권력유지에 유리하다고 결정을 내리는 권력자들, 조그만 불복종과 반항이라도 무참하게 짓밟는 로마 점령군들, 호산나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따르다가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고 그 분께 돌을 던지는 예루살렘 주민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이 성 주간을 돌아보면 어찌 그 많은 사건들이 불과 일주일 만에 일어났을까 신기하기만하다. 2000년이 지난 현재도 이해하기 힘든데 당시 생존했던 이들은 과연 자신들이 저지른 짓이 무엇이었는지 혹은 경험한 일이 무슨 의미였는지 깨닫고 소화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사건들이 한꺼번에 일어났으리라. 하지만 이 죄악과 기적은 매일 일어나고 있다. 예수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행위가 바로 우리 일상의 모습이다. 매일매일 서로를 시기하고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배신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해친 다음 곧 후회하고 참회한다고 하지만 이미 소중한 사람은 상해 있다.
이에 더해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가책 없이 내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려 하지는 않는지? 내가 조금 더 잘났다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는지? 하루는 좋다고 칭찬을 하고 다음 날에는 내 마음에 안 든다고 가시 돋친 말의 돌을 던지지 않는지? 이 성주간에 우리 스스로를 가만히 살펴보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하신 행적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성찰 중 그분만이 우리 삶을 판단하는 진정한 리트머스 시험지임을 깨닫게 된다.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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