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일본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그 강도가 무려 9.0으로 작년에 발행한 아이티 지진의 100배가 강한 참사였다. 도후쿠(東北) 대지진으로 이후 명명된 이 참사는 지진뿐 아니라 이후 밀려온 해일(쓰나미)과 원전 파괴로 이어지는 실로 엄청난 재앙이었다.필자도 대중 매체를 통해 지진 광경과 쓰나미 피해를 보면서 두려움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해일의 경우 한순간에 수십 미터 높이의 바닷물이 해안가로부터 몇 십 킬로미터 떨어진 내륙지방까지 밀려들어 왔으니 아무리 대비를 잘하고 있던 일본이라 해도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자동차가 장난감처럼 떠다니고 배들이 밭으로 산으로 밀려들어오고 집과 건물은 성냥갑처럼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현실감조차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까? 지진이 일어난 시간은 오후 2시 30분이었는데 불과 5분도 안되어 쓰나미가 들이 닥쳤다.
이 정도 시간에 어린이, 노인을 비롯한 노약자는 물론이고 건강한 사람도 피신할 시간이 없었으리라. 다행이 한국은 이런 지진 지역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 가슴에는 만일 이런 규모의 지진이나 쓰나미가 한반도를 덮친다면 얼마나 큰 피해가 일어날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평소에 준비하지 않고, 태만하고, 방만한 우리들의 태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집 불 구경하듯 관망하지만 말고 우리도 응급 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겠다. 어쨌든 순식간에 바다에 휩쓸려간 수많은 희생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앞으로 이렇게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과연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필자는 일본인들은 다르다고 본다. 그들은 한민족만큼이나 강한 민족이다. 이런 시련도 견딜 것이며 오히려 더욱 강한 일본으로 재 탄생할 것을 믿는다. 오늘 잠시나마 일본인 희생자와 그들 가족을 위해 기도를 바쳐본다.왜 이런 시련, 고통, 죽음이 삶에 있는 것일까? 굳이 일본 참사를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 고통과 시련이 항상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암 등 질병과 필사의 투쟁을 하는 많은 형제 자매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암세포가 이미
너무 온몸에 퍼져 치료가 불가능하자 오히려 의연하고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에 귀의하는 이들도 있다.
비즈니스가 파산지경에 이르러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받는 이들도 주위에 부지기수이다.고통은 삶에 있어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우리 존재의 일부이다. 고통 없이, 아픔 없이, 죽음 없이 살고 싶지만 우리 삶에서 이를 극복할 도리가 없다. 그러면 꼭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하나님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이 의문이 바로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 십자가에 달려 괴로움에 피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물은 질문이었다. 이제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순절이다. 자! 고통의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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