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위크‘세계를 뒤흔드는 여성 150인’ VA 거주 농학자 김필주 박사
채영신을 꿈꾸던 소녀는‘상록수’의 희망을 헐벗은 북녘 땅에 심었다. 버지니아 센터빌에 거주하는 김필주 박사(73). 2001년 비정부기구‘어글로브 서비스 인터내셔널(Agglobe Services International, Inc)’을 설립한 그는 황해도에 4개 농장을 임대받아 목화를 비롯한 각종 농산물을 재배하는 한편 선진 영농기술을 주민들에 전수하고 있다. ‘목화 할머니’로 불리는 김 박사는 지난해부터 평양과학기술대 농생명대 학장을 맡아 교육 사업에도 그의 지식과 노년의 정열을 보태고 있다. 지난 8일에는 뉴스위크 선정‘세계를 뒤흔드는 여성 150인’에 이름을 올렸다. 김필주 박사를 만나 그가 펼쳐온 대북 농업지원 및 교육사업에 대한 현황과 계획을 들어보았다.
●김필주 박사는 누구?
함경도 태생의 김 박사는 6·25전쟁 때 경기도 양평 피란지에서 농사에 관심을 가졌다. 소설‘상록수’의 채영신을 꿈꾼 그는 서울대 농대에 입학했고, 미시시피 주립대에서 석사, 코넬대에서 종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년 가까이 Pioneer Seed사 등 미 유수의 종자회사에서 근무했다. 부군인 주영돈 박사(2000년 작고)와 2남1녀를 두었다.
비료등 기반 부족이 식량자급 걸림돌
농장 4곳 북한 주민들 창의적.적극적
2009년이후 한국정부 지원 끊겨 타격
한인들 인도적 차원서 민족애 발휘를
-한국계로는 미쉘 리 전 워싱턴 교육감과 함께‘세계를 뒤흔든 여성 150인’에 선정됐다. 소감은?
놀랬다. 영광이지만 그걸 즐길 환경이 되느냐를 생각해봤다. 북한에선 2천300만 명이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고 올해는 기아가 더 심할 거란 소식이 있어 부담스럽다. (뉴스위크는 김 박사를 ‘세계에서 가장 배고픈 지역에 음식을 선물하는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북한 국적으로 잘못 소개됐다?
북한에서 주로 일하다 보니 그렇게 오보가 났나보다. 난 1962년 도미해 미국에 49년째 살고 있는 시민권자다. 2005년부터 버지니아 센터빌에 살다 얼마 전 집을 팔았다. 짐은 아직 이곳에 있지만 뉴욕에 자식들이 있어 그쪽으로 갈까 생각 중이다. 한빛지구촌교회에 출석했다.
-금년도 북한의 식량난이 왜 더 심각한가?
2010년에 전체 수확량이 떨어졌다. 추워서 봄이 늦어진데다 늦가을에는 비가 와 생산량이 저조했다. 비료가 적어 쌀이나 옥수수가 실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가장 시급한 게 유기질 비료다.
-아사자들이 나온다는 보도도 있다.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는데 무엇이 사실에 가깝나?
우리 농장이 있는 황해도는 곡창지대라 아사자는 없다. 다른 지역은 가보지 못해 정확한 실태를 모르겠다. 하지만 황해도마저도 식량이 모자라는 건 틀림없다. 우리 농장 안에도 밖에서 식량을 들여와야 할 실정이다.
-북한은 몇 차례나 다녀왔나?
1989년 북한을 처음 방문했다. 1년에 10차례는 가는데 한 1주일에서 열흘 이상 있기도 한다. 북한 간 게 그간 100차례도 넘었을 것이다. 50회까지는 세었는데 지금은 언제 갔다 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 올해도 2월19일 다녀왔고 3월26일 또 간다. 농장 일도 있고 요즘은 학교 일도 있어 더 오래 있어야 한다.
-평양과학기술대 학장을 맡은 것으로 안다?
지난해 평양과학기술대가 개교했다. 정보대와 농생명과학대, 경영대 등 3개 단과대에 150명의 학생이 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과목인 경영대가 허락된 게 놀랍다. 난 농생명과학대 학장을 맡았다. 수업은 전부 영어로 진행한다. 학생들이 영리하고 발랄하다. 미국과 서양 교수들이 홀딱 반했다.
-대학 운영과 재정은 북한 정부가 총괄하는가?
북측에서 임명한 총장과 김진경 총장이 협의 운영한다. 하지만 김 총장이 대부분 일을 처리하고 있다. 재정은 전액 외국 지원으로 충당한다. 실험실과 기자재, 온실, 농기구 마련 등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재미 한인들이 그간 많이 도와줬지만 더 지원해주었으면 한다.
-농장 규모는 어떤가?
황해북도 봉산군과 황해남도 삼천군 두 곳에서 모두 4개의 농장을 운영 중이다. 약 2970㎡(900만 평) 규모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만 6천500명에 부양가족 포함하면 1만5천명이나 된다. 올해 황해북도 연탄군 도치리에 농장 1곳을 추가하면 1천명 이상은 더 필요할 것이다.
-농장 운영은 북한 주민들 스스로 하는가?
북한의 파트너인 무역회사와 내가 합작회사 형태로 농장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이 농사지어 자급자족하고 목화만 북 정부가 수매한다. 수매한 돈은 받아서 농장 주민들이 노력 봉사한 결과에 따라 나눠준다. 농장에선 목화가 1/3가량 되고 벼와 옥수수, 보리, 감자, 채소 등 모든 농작물을 심는다. 온실도 1개 농장에 2개소씩 지어 겨울에도 채소가 생산된다. 양이 부족해 잔치 같은 경우에만 사용하고 있다.
-다른 농장에 비해 생산성은 어떤가. 사회주의 체제라 주민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주민들이 근로의욕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비료 등의 기반이 부족한 탓이 크다. 외부에서 기자재 등을 지원하니 성과가 좋다. 주민들은 기초교육이 잘 돼 있고 한민족이라 매사 적극적이다. 또 창의적인 편이라 열심히 일하되 생각하면서 일한다. 가슴 뿌듯하다. 투자에 비해 성과가 크다. 지원이 늘면 더 아름답고 행복한 마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뉴스위크는 “농장은 단순히 작물 생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자녀 교육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박사가 주로 하는 역할은?
나는 평양의 호텔에 머물며 농장을 방문해 지도를 하고 있다. 우수 종자를 선택해 공급하며 농산물 재배법이나 기술, 저장법 등을 지도한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고 있다. 북측에서 문제 삼지 않나?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건 북측 사람들도 다 안다. 함께 식사할 때 눈을 감고 같이 기도에 동참해줄 정도다.
-왜 북한 농업지원에 뛰어들었나?
미국 종자회사에 근무하던 중 1986년 장로교단의 이승만 목사(현재 리치몬드 거주)께서 북한의 종자 보급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제안해 왔다. 88년에 초청비자가 왔지만 무서워서 못 갔다. 여러 경로를 거쳐 89년 처음 평양을 방문했다. 북측은 척박한 토양에다 마땅한 농기구나 비료도 없어 주민들이 식량난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낸 소명의식을 깨달았다. 회사를 그만 두고 2001년 애글로브 서비스 인터내셔널사를 설립, 대북 농업지원에 전념했다.
-아무래도 외부 지원에 의존할 텐데 요즘 사정은 어떤가?
2009년부터 큰 타격을 받았다. 한국 정부가 바뀌면서 지원이 끊겼다. 미국도 북한과 관계가 원활치 않아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마음이 열린 미국인들이 인도적 지원을 계속 해주고 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내 나이 일흔 셋이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많다. 후계자도 양성하고 모금도 더 해야 한다. 월드뱅크 등 미 기관들의 문을 두드리고 있으나 아직은 어렵다.
연간 150만 달러의 지원만 있으며 내 마스터플랜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부족한 식량을 언제까지나 지원해주는 건 불가능하다. 유기질 비료로 토양을 개선하고 꾸준히 종자를 개량해 북녘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도와야 한다.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생산물을 마켓에 공급해야 한다.
현재 시급한 건 목화의 씨와 면을 분리하는 가공공장이다. 식품 가공공장도 세우고 목초 재배도 해 시장에 내놓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한다. 같은 민족애로 어려움에 처한 북한 동포들을 도와야 한다.
문의 pkjoo99@gmail.com (310) 482-9333 크리스틴 안, 한빛지구촌교회 내 지구촌 농업협력 및 식량나누기 운동 (703) 591-6400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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