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AC 영화사(주지 동진 스님)
▶ 13일 새둥지 이전법회
-----
설조 어른스님, 형전 스님 등 출가불자
원만화 보살, 김현태 거사 등 재가불자
불자들 함께 모여 ‘참 좋은 인연’ 서원
-----
‘그때’까지, 한민족이 터잡은 동방의 작은땅은 오고 가고 낳고 죽고 사람의 발자국들이 쌓이면서 늘어난 나이테가 수천겹을 헤아렸다. 어떤 인연으로 한 사람이 흔적을 남기고 그것을 인연으로 가족이 생기고 그것을 인연으로 이웃이 생기고 그것을 인연으로 마을이 생기고 그것을 인연으로 촌락이 생기고…. 고조선에서 부여, 동예, 옥저,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 입으로 전해지고 기록으로 남겨져 어엿한 역사의 뼈가 되고 살이 된 부족국가 내지 봉건왕조만 해도 수두룩했다. ‘그때’까지, 새크라멘토는 불러줄 이름도 없는 곳이었다. 많고 많은 황야의 서부(wild west) 중 한곳에 지나지 않았다.
혹시 그곳에 살았을지도 모를 원주민들, 어떤 인연으로 그곳을 지나쳤을지도 모를 원주민들은 그곳에 훗날의 내습자들 혹은 이주자들이 너끈히 알아듣고 기꺼이 불러줄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공인된 기록상 1839년 ‘그때,’ 잔 셔터라는 스위스계 이민자가 산 넘고 강 건너 서부로 서부로 향하다 요샛말로 그 어떤 필이 꽂혔는지 ‘그곳’ 강 언덕에 죽치고 살 주거지를 주섬주섬 꾸렸다. 벼락부자 금맥의 꿈을 안고 함께 온 혹은 뒤따라 온 사람들이 하나둘 그 언저리에 진을 쳤다. 더 많은 이들은 더 서쪽으로(북서쪽으로 남서쪽으로) 내달렸다. 하늘과 땅과 구름과 바람과 강과 들과 짐승들과 새들의 땅에는 시나브로 인기척이 늘었다. 수천년 전에 동방의 작은땅에서 그랬듯이 마을이 생겼다. 마을은 마을대로 몸집을 불렸다. 그런 마을들이 더욱 새끼를 쳐 군집을 이뤘다.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가장 풍요로운 땅 캘리포니아의 주도 새크라멘토는 그렇게 생겼다.
동방의 작은땅에서 온 코리안들이 새크라멘토에 첫발을 내디딘 것, 보다 정확히는 코리안들의 새크라멘토 본격이주의 제1막은 대략 1960년대였다. 1800년대 중반 유럽계 동부인들의 새크라멘토행이 거개들 금노다지 벼락부자의 꿈을 안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마차에 올라탄 것이었다면, 1900년대 코리안들의 새크라멘토행은 거개들 배움의 갈증 아니면 단지 새로운 삶터를 찾아나선 것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삶의 실뿌리를 내린 이가 손짓해 피붙이가 따라나서고 이들의 오순도순 삶 소식에 다른 몇몇도 긴가민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짐을 싸 그곳으로 향하고…. 알게 모르게 그렇게 볼륨을 키운 새크라멘토 한인사회는, 인근 소도시에 사는 이들까지 합쳐, 어느덧 2만명을 헤아리게 됐다. 1,2년 임기의 한인회가 벌써 23대째다. 세탁소며 리커스토어며 식당이며 루핑업소며 치과의원이며 수퍼마켓이며 한인들이 꾸리는 업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만 해도 손가락이 모자란다. 한인성당도 있다. 교구단위로 생김과 없어짐이 엄격하게 조절되는 성당이 있다는 건 그곳 한인사회가 덩치도 꽤 있고 근골도 꽤 붙었다는 뜻이다.
절이 없으랴. 절은 있었다. 한때는 ‘둘이나 혹은 둘밖에’ 없었다. 영화사와 고불사, 그리고 SF여래사(회주 설조스님)이 분원. 고불사는 어찌어찌 사라지고 이름만 남았다. 파란눈의 해종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여래사 분원을 빼면 새크라멘토 한인사회의 새크라멘토 한인사찰은 영화사 한곳이다.

영화사는 1992년 문을 열었다. 새크라멘토 한인사회의 성장에 상당한 가속도가 붙고도 한참 지나서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아쉬워할 일도 민망해할 일도 아니다. 재미 한인사회에서 절차림과 절살림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영화사가 이름만 남겨놓고 사라진 고불사처럼 되지 않고 지금껏 견뎌내준 것만 해도 적이 놀랍고 적이 고마울 일이다. 다른 건 다 몰라도 돈벌이 하나만은 자신있게 보였던 업소들도 자고나면 하나둘 손을 털고 문을 닫는 이 불황기에, 심지어 호황기 호시절에도 다른 건 다 몰라도 돈벌이 하나만은 영 쑥맥이었던 가난한 공부터가 모진 세월 능히 이 불황기까지 명맥이나마 유지했다는 건 차라리 경이롭다.
지나온 19년이 그랬다. 정법심 보살 등 뜻있는 이들이 불심을 알뜰살뜰 모아 영화사를 꾸렸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닥치고 덮치는 월렌트비 내는 날, 유틸리티비 내는 날, 인쇄비 외상 갚는 날….
이사도 숱하게 다녔다. 20년 가까이 적어도 새크라멘토 한인사회에서는 불자들이 이 절 저 절 찾아다닌 게 아니라 절이 이 곳 저 곳 옮겨다녔다, 형편이 조금 빤해지면 그만큼 더 낙락한 곳으로 형편이 조금 더 빠듯해지면 그만큼 더 헐거운 곳으로. 절이 떠도는 마당에 누군들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있으랴. 숱한 스님들이 오고 또 갔다. 대개들 ‘잠시 너머를’ 기약하고 왔다가 거의 예외없이 ‘잠시 이내에’ 떠났다. 혹은 몸이 축나서 떠나고 혹은 도리어 자신이 가난한 절집에 짐이 되는가 싶어 떠났다.

한 삼사년쯤 됐을까. 큰맘을 품고 이 절에 온 스님이 몸져누웠다. 의료비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미국땅에서 가난한 절간지기가 몸져눕는다는 건 집도 절도 스님도 파산을 의미했다. 오래 함께하리라 마음먹고 새크라멘토에 온 스님은 잠시를 기약하고 신병치료차 한국으로 떠났다. 자리는 듬성듬성 빌 때가 많지만 그래도 일요일 오전이면 찾아와 두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고 귀를 쫑긋 세우는 불자들을 마냥 저들끼리 놔둘 수는 없었던지 서울 어느 병상의 스님은 거뜬히 일어설 때까지 당신의 자리를 채워줄 대타를 찾았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그렇게 해드리지요…”
동진 스님의 영화사행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병상의 스님이 원기를 회복할 때까지 시한부였다. 시쳇말로 땜빵이었다. 그 이전에 동진 스님의 마음속 로드맵에 미국행 이정표는 아예 없었다. 캠퍼스에서 거리에서 최루탄에 눈물범벅 절규로 대학시절을 보냈고,잘만 세속의 기름진 삶이 어느 정도 보장된 졸업후의 방송작가시절, 어찌어찌 인연이 돼 그 모든 것을 집어치우고 승복을 입게 된 동진 스님의 마음길은 밤이나 낮이나 티벳에 닿아 있었다. 그 옛날 부처님이 고행하던 설산 티벳,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은 설산 티벳에서 나 또한 부처님같이…. 그런 스님에게 새크라멘토행은 티벳행을 위한 리허설쯤으로 받아들여졌을지 모른다. 병상의 스님에게 그러마고 약속하며 미국행을 준비하던 동진 스님은 당연한 자비심 말고도 밤낮없이 꿈꿔온 티벳행을 위해서라도 몸져누운 스님의 쾌유를 더 간절하게 빌었을지 모른다.
곡절이야 어떻든 영화사에는 다시금 웃음기가 돌았다. 스님의 빈 자리가 채워진 것만으로도 불자들은 힘을 얻었다. 작지만 당찬 동진 스님과 함께하니 더욱 그랬다. 비록 잠시를 기약하고 왔지만 단 한나절을 머물더라도 대충이란 없는 스님이었다. 예불도 참선도 과외공부도, 모든 것 끝난 뒤 사사로운 자리에서도 스님은 ‘부처님 법대로’를 강조하고 솔선했다. 더러는 절간을 맘편한 쉼터로 알았다가 스님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아예 발길을 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럴수록 스님은 더욱 채찍을 들었다.
일요법회가 끝나면 참선지도를 하고 금강경 강해를 하면서 불자들의 불자다움을 심어주려 안간힘을 썼다. 한달에 한번씩 꼬박 1년동안 금강경 강의를 위해 새크라멘토 영화사에서 오클랜드 보리사(주지 형전 스님)까지 발품을 팔기도 했다. 깐깐한 스님 아래 영화사 불자들은 하나둘 거듭났다. 불자들의 속살이 튼실해졌다. 말로만 오가던 서원, 렌트걱정 없는 새둥지를 바라는 서원은 비로소 기약없는 말의 태를 벗고 기약있는 싹을 내밀기 시작했다. 길게는 재작년, 짧게는 작년의 일이다.
꿈은 이뤄졌다. 새크라멘토 외곽, 도시와 농촌이 만나는 점이지대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 잭슨로드에 붙은 새 영화사는 5에이커가 넘는 대지는 건평이 약 1,700스퀘어다. 목장터나 밭농사터로 안성맞춤일 듯한 널따란 대지에는 겨울비를 잔뜩 먹고자란 풀이 지천으로 돋아나 저마다 푸르름을 뽐낸다. 적당한 높이는 울타리 대용 관목들이 길가는 사람들의 공연한 눈길을 막아주면서 더불어 자동차 소음을 조금은 덜어준다.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선인장들이 무리지어 서 있고 작은 불상과 낮은 불탑이 나무에 새겨진 영화사 간판을 배경으로 말없이 지켜보며 들어서는 이들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절간의 외양은 전 주인이 살다간 민가 그대로의 모습인데, 신발을 벗는 입구 왼쪽 벽에 걸린 걸개글씨가 눈길을 사뭇 그윽하게 붙잡는다. 들어단짝 괜히 찔리게 만드는 어떤 무서운 말도, 아직 발도 들여놓지 않았는데 벌써 뭔가 아프게 가르치려는 어떤 무거운 말도 아니다. 다만 이렇게 쓰여져 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언뜻 별스럽지 않은 그 글귀가 신발을 벗다 말고 다시금 눈길이 가게 만든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그걸 보고도 신발만 달랑 벗어놓고 홀랑 들어갈 이 누가 있을까. 거기에 잠시라도 감전이 된다면 신발 말고 다른 것도, 전부는 아니라도 상당히는 절로 벗어놓게 되지 않을까. 그런 교감만 오갔다 해도 영화사는 영화사가 거기에 있어야 할 몫의 태반은 하는 셈 아닐까.
새 영화사에서 13일(일) 오후에 이전법회가 열렸다. 다른 절 일요법회와 겹치지 않게 시간을 법회시작을 오후 3시로 잡았다.
19년만에 처음으로 렌트사찰 신세를 벗어나는 경사인데도 이전법회에 할애된 건 고작 1시간. 번다하고 요란한 것을 워낙 싫어하는 스님의 뜻과 부러 부르지는 않았지만 굳이 먼 걸음을 할 불자들이 돌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길고생을 덜 시키겠다는 스님의 뜻이 교차로 얽혀서 짜여진 시간이었다.
줄잡아 7,80명이 함께한 이전법회는 단촐하게 진행됐다. 명종, 개회사, 삼귀의, 반야심경, 입정에 이어 어른스님(설조스님)의 축하법문이 따랐다. 영화사의 새둥지 이전을 축하하는 말로 법문의 서두를 연 설조 스님은 “행복을 가꿔나가는 데가 도량”이라며 분수를 아는 보리심으로, 보상을 바라지 않는 보시로, 흔들림 없는 정진으로, 그리고 선정으로 행복을 가꿔나가기를 축원했다.
정법심 보살은 신도발원문을 통해 “부처님을 사랑하고 믿는 일만으로도 아무런 잘못이 없이 미움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 신심을 낸다는 것도 포교를 한다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고백처럼 살포시 나눈 뒤 “그래도 믿고 따르면 참평화를 얻는다는 믿음하나로…말라가는 신심을 다시 끌어올려 부처님의 행을 따라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발원했다.
자비행 보살이 축가로 ‘부처님 오신 날’을 부를 때는 그 깐깐한 동진 스님도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곧이어 공지사항을 전할 때는 다시 특유의 뼈있는 농담을 섞는 등 평소의 동진 스님으로 돌아와 참석자들에게 뼈있는 웃음을 유발했다. 이전법회안내광고에서도 그랬지만 팸플렛에 실린 모시는 말씀에서도 동진 스님의 동진 스님다움은 구구절절 묻어났다.
“…영화사가 첫 문을 연 것은 1992년, 그 사이 많은 스님께서 오셨지만 오래 계시지 못하고 떠나셨습니다. 그만큼 이 지역의 불교가 힘들다는 얘기도 됩니다…오랜 세월동안의 렌트하우스를 접고 새 절을 마련하여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이 절을 지켜내겠다는 각오로 시작했습니다. 돈이 있어서 산 것도 아니고 신도가 많아서 마련한 것도 아닙니다. 단 한가지 불교 역사 지난한 이 새크라멘토지역에 한국 절이 하나만이라도 있어야 된다는 소명감으로 시작했습니다…오래되어 손볼 곳도 많고 아주 작은 새둥지 같은 곳이지만 새크라멘토지역의 불자들겐 궁궐같은 절집입니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우리 영화사 불자들이 기쁘게 부처님의법을 배우고 펼칠 수 있도록, 그리하여 한국불교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여느 때처럼 사홍서원으로 마무리된 이전법회에는 여래사 설조 큰스님을 비롯해 보리사의 형전 스님과 돈오 스님, 운문사에서 동진스님과 함께 공부한 현오 스님이 한국에서 날아와 자리를 함께했다. 또 정법심 보살 등 영화사 불자들과 자비봉사회 원만화 회장,불자골프회 김현태 회장 등 북가주 곳곳 불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정태수 기자>
-----
◇영화사
▷주소 : 12181 Jackson Rd., Sloughhouse, CA95683
▷전화: 916.681.4068
▷이메일: trueofeast61@naver.com, younghwasa@frontier.com
▷카페: http://cafe.daum.net/younghwazencenter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