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영하는 치과병원에 인턴으로 일하는 아주 밝은 아가씨가 있다. 늘 생긋생긋 미소 짓고, 인사성이 밝아서 오가는 환자들에게 기분 좋은 인사를 해댄다. 약간 마른 체구의 왜소한 그녀는 만으로 18살이 안된, 아직 소녀티가 묻어나는 귀여운 히스패닉 여성이다.
그녀의 식구들이 모두 병원에서 근무하니 자기도 치과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싶다며 무작정 찾아와 인턴으로 시작하게 해달라고 한, 당돌하고 야무진 면도 있는 아가씨이다.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의 그녀는 금방 병원 스태프들과 친해졌고, 일도 빨리빨리 배웠다.
하지만 처음 그녀를 고용하면서 나는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그녀는 이제 임신 7개월째인 미혼모였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몸으로 일을 배울 수 있을지, 출산 후에 계속 일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어쨌든, 일단 그녀는 우리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고, 지금도 열심히 일을 하러 나온다.
그런 그녀를 위해 병원 직원들은 베이비샤워를 열어 주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 병원 진료시간이 끝난 후 우린 분주하게 테이블을 차리고, 음료수와 케이크, 외국인도 좋아할 수 있는 한국 바비큐 요리를 준비했다.
베이비샤워에 그녀의 식구들을 초대하기는 했지만 많이 오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미혼모인 그녀의 베이비샤워를 썩 환영해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기 아빠는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연락을 끊은 상황이었다. 그녀의 부모 역시 딸이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해서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가겠느냐며 걱정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막상 파티시간이 되니 그녀의 할머니, 부모, 삼촌, 숙모, 고모, 이모, 조카들까지 총출동을 했다. 모두가 너무나도 기뻐하며 그녀와 곧 태어날 아기를 축하해주었다. 병원식구들끼리 조촐하게 파티를 열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와서 파티는 아주 성대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하니 문화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우리 한인들 같으면 누군가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면 파티는커녕 쉬쉬 하며 숨기느라 바쁠 것이다. 그런데 히스패닉 가족들은 그날만큼은 그냥 평범한 임신부를 위한 파티인양 아주 즐겁게 즐겨주는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어차피 생긴 아기, 도로 물를 수도 없으니, 애기를 위해서 온 가족이 모여 축하하고 파티를 즐기자”는 그네들의 여유가 부러웠다.
우리 한인들의 정서로는 미혼으로 임신하면 창피해서 임신 내내 비밀로 하며 은둔생활을 하고 자괴감과 자책감에 빠지게 만들 텐데 말이다. 물론 그들도 어린 나이에 임신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후회도 하지만, 지나간 일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다시 밝게 미래를 설계하는 것 같아 부러웠다.
나는 한참 어린, 우리 귀여운 히스패닉 간호사 친구 덕분에 인생을 좀 더 둥글둥글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단 한번 사는 인생, 우리도 가끔은 그들 히스패닉 친구처럼 그냥 둥글둥글 사는 여유를 부렸으면 좋겠다.
박세리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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