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소녀, 크리스티나 그린의 해말간 미소가 신문 첫 면을 환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 사진에 붉고 작은 관이 보인다. 또래 친구들과 장사진을 이룬 어른들이 관을 어루만지며 눈물 흘리는 장면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지난 정초 , 애리조나 주 총기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크리스티나의 장례식이었다.
그 소녀의 별명이 ‘희망의 얼굴’이었다. 9.11 테러가 일어나던 날, 크리스티나가 태어났다고 한다. 미국의 한 출판사가 그날 태어난 아기들을 각주에서 1명씩 골라 ‘희망의 얼굴’이란 책을 내었었다. 크리스티나도 그 중 한 아기였다.
“크리스티나는 9.11 비극과 함께 태어나 애리조나의 비극과 함께 생을 마쳤습니다. 분명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가 상징했던 미국의 희망을 이런 비겁하고 비인간적인 폭력이 결코 꺾지 못할 것입니다.”
소녀의 아버지 그린의 조사는 국가적 비극이 있을 때마다 늘 결연했던 미국인들의 용기를 그대로 드러내 주었다.
크리스티나는 큰 재목이 될 소질이 많았던 소녀였던 것 같다. 책임감이 강해 공부도 우등이고, 운동도 열심이어서 리틀 야구팀에 당당하게 홍일점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에게 항상 우리는 축복받은 가족이라며 고마워했다는 것이다. 그날도 학급 반장으로 미국의 민주주의 현장을 체험키 위해 개브리얼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의 모임에 참석했던 것이다.
머리에 총상을 입은 기퍼즈 의원의 기사회생과 회복의 소식도 미국에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갓 40인 그녀는 보수적인 애리조나에서 소위 티파티 공화당 후보를 극적으로 이긴 소신 있는 차세대 정치인중 한사람이다. 이런 당찬 그녀의 행보가 극우 보수진영과 그 사주를 받은 맹목적인 추종자들의 증오의 표적이 되었던 것이다.
중상을 입은 그녀에게 둘도 없는 희망의 얼굴은 남편, 마크 켈리일 것이다. 우주비행사이기도 한 그는 의사들도 감지하지 못하는 아내의 미세한 움직임을 사랑의 눈으로 항상 먼저 알아보고 있다.
아내를 재활병원으로 옮기면서 “그녀는 꼭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재기할 것입니다”라고 확신에 찬 약속을 하고 있다. 마치 남편인 내가 꼭 살려낼 것이란 순애보의 부르짖음으로 들린다. 부부란 가장 어려울 때 서로에게 ‘희망의 얼굴’이란 사실을 그들은 보여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크리스티나를 포함, 희생된 6명의 미국인들을 보내는 범국민 장례식에서 추모사를 읽었다. 그 자신이 미국의 ‘희망의 얼굴’로 등장했던 사실과 걸맞게 그의 조사는 명연설로 알려졌다.
그는 이 참담한 비극 앞에서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주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남을 증오하길 멈추고,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동지로서 이해하고 배려하자고 호소했다. “이 길만이 크리스티나와 같은 후세들이 미국사회에 걸었던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길이 될 것입니다.” 라고 설파했다.
크리스티나는 떠날 때도 ‘희망의 얼굴’이었다. 자신의 장기를 얼굴도 모르는 아픈 또래에게 주고 떠났다고 한다. 그녀는 생사를 초월해 미국의 얼 속에 살아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떤 얼굴로 살고 있는가?
김희봉 수필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