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이민을 오게 된 이유는 큰누이 때문인데 1970년대 말 미국 이민은 모든 사람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자식들에게는 선진화된 교육환경과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심어주던 때였다. 우리 가족도 여느 가족과 같은 이유였다.

3남2녀인 자녀중 큰누이는 어려서부터 매 학년 수석에 그것도 최고의 여자대학을 나오고, 미모에 신앙심까지 깊어서 늘 부모님에게는 최고 자랑거리였다. 같은 교단에 있는 전도사가 누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구애를 하여 대학 졸업후 결혼하여 같이 유학을 가게 되었다. 유학온 학교가 Boston Univ. 라 큰누이에 이어 우리가족 모두 보스턴에 정착 하게 되었다. 어머니 말씀이 시집을 오니 시어머니 세분(할아버지가 삼형제)이 모두 경기고녀를 나온 신세대
여성으로 일요일이면 뾰족구두를 신고 교회에 다니셨다고 할만큼 우리 집안은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중 큰 할머니는 여자의 몸으로 신학교를 나와 전도사로서 일제시대 때 기독교 감리교로서는 가장 오래된 명동 상동감리교회를 세우시고 해방후에는 명문예술고인 예원예술학교를 세우셨으니 집안분위기로도 나이 많고 가난한 전도사가 사위가 되는 것이 큰문제 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 사위덕에 전 가족이 미국 이민을 오게 되었고 또 그 사위는 감리사도 하고 본인의 전공분야에서는 최고 권위자로 이름 날리며, 같은 계열인 감리교 명문대학의 학장도 했다.

70년대 말에 보스턴에 오려면 대한항공은 하와이와 중서부 지역을 거쳐 상당히 오래기간 비행기를 타고 와야 했다. 1979년 2월에 먼 여행후 보스턴에 도착한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 헤어진 누이를 17살에 다시 만났다. 서로 나이차도 많이 나고 오랜 기간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처음 대면이 상당히 낯설고 먼 거리를 느껴야 했다.긴 여행과 시차에 지친 나는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바로 잠이 들었는데 그 밤이 내게는 어린시절에 작별을 고하는 마지막 밤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튿날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나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 나에게 큰 누이는 미국은 남녀노소 모든 사람이 일을 해서 자기인생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된다고 하며 오후에 매형과 같이 잡 인터뷰를 가라고 어제 미국에 도착한 나로선 잡이 뭔지 전혀 알 길 없었다. 그래서 나는 보스턴에서 북쪽으로 20분 올라가있는 우번이라는 공장지대를 찾아가 금발에 얼굴 가득 수염이 난 수퍼바이저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바로 직장을 갖게 되었다.

처음오니 눈 색깔, 머리 색깔 다른 모든 미국인이 내게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하이테크 산업이 (유수 대학이 많아서인지) 매우 발달되어 있는 그곳에서 공장 일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128번 도로 주변으로는 전기전자, 북쪽 로렌스와 로웰지역 등은 섬유 산업등이 상당히 발달 했었던 곳이어서 공장의 조립공으로 첫 직장을 갖게 되었다. 집안의 막내인 나는 한국에서 어머니가 밥을 안차려주면 밥을 먹을 줄도 몰랐을만큼 세상물정을 몰랐었는데 미국에 도착한 삼일째 부터 손에 기름때를 묻혀가며 방과후 밤 11시까지 일을 해야되는 노동자가 되었다. 많이 미국화 된 누이 덕에 미국 이라는 나라를 이해하고 느끼기도 전에 이튿날부터 직장을 얻고 3일째는 고등학교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참 어렵고 힘든 일이었고 고난의 시작이었다. <계속>
미국으로 떠나는 날, 나(가운데 흰 바바리 입은 이)를 배웅하기 위해서 김포공항에 나왔던 선후배, 친구들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