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스 플레밍의 이력서는 어디에 내놔도 빛이 난다. 스탠포드에서 산업공학과 영어를 복수 전공했고, 하버드에서 MBA를 취득했으며, 휼렛 패커드에서 중간관리직에 있었고 소규모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사장 경력이 있다. 그런데 지난 2007년 크림슨 헥사곤이라는 회사를 공동 창업해 투자자를 구하러 나서면서 생각지 못한 상황에 부딪쳤다. 투자자를 구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당시 한 벤처 투자가가 한 말을 그는 잊지 못한다. 그가 어떤 경력을 가졌든지 투자가들의 눈에는 단지 ‘엄마’ 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이텍 분야 전공 여성 수적으로 적고
가정 병행 어려워 여성들 중도 탈락
난관 극복하고 창업해도 투자자들 외면
투자를 의뢰했던 다른 한사람은 플레밍을 어느 주말 요트파티에 추청하면서 자신의 사진을 보내왔다 - 옷 하나 걸치지 않고 요트에 서서 찍은 사진이었다. 세 번째 투자전문가는 플레밍의 남편이 자전거 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사업 계획은 뒷전이고 자전거 타기와 남성의 생식능력에 관한 관심에만 시간을 쏟았다.
결국 플레밍은 투자를 의뢰했던 30개 벤처 투자기업 중 아무데서도 돈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8년 3월 마침내 골든 시즈 같은 투자기관을 통해 180만달러의 자금을 모았다. 골든 시즈는 여성 창업 회사들에 투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금이다. “이런 일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줄 몰랐다”고 플레밍(37)은 말한다.
실리콘 밸리나, 뉴욕, 텍사스의 오스틴, 그리고 플레밍이 사는 보스턴 등 하이텍 커뮤니티는 철저하게 능력위주라는 점을 자랑으로 내세운다. 아이디어만 좋다면 교육이나 나이 등 조건과 상관없이 누구든 기꺼이 맞아들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일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성 비즈니스 연구 센터에 의하면 미국의 사기업 중 여성 소유는 40%이다. 하지만 밴처 기금으로 투자를 받은 하이텍 신생 기업의 경우는 8%만이 여성 소유이다.
이런 성적 불균형은 창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100대 하이텍 기업의 사장 중 여성은 6%에 불과하고, 전체 하이텍 기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중 여성은 22%라는 것이 전국 여성과 정보 테크놀로지 센터의 집계이다. 그리고 벤처투자기업에서 하이텍 신생회사들에 대한 투자 담당 재정전문가의 14%만이 여성이라고 전국 벤처 투자 협회는 말한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과정에서 남녀 학생들이 택하는 진로가 다른 것이 한 원인일 것으로 한 전문가는 말한다. 즉, 남성들은 컴퓨터 과학과 공학을 전공하고 이어서 창업이나 관리직 직위를 거쳐 두각을 나타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여성은 현재 명문 대학, 법과대학, 의과대학, 그리고 전체 노동력 시장에서 수적으로 남성을 능가한다. 그런데도 유독 하이텍 세계에서는 성적 불균형이 확연하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여성 하이텍 창업자에게 투자하는 것은 손익 면에서 유리하다. 벤처 투자를 받은 여성 창업회사는 남성 창업회사에 비해 평균 40% 적은 액수를 투자를 받고 주식공개에 성공적이라는 보고서가 있다.
“조직 내에 남녀 성별의 다양성이 있을 때 보다 혁신적이 되고, 혁신은 하이텍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성 창업 기업들에 투자하는 일루미네이트 벤처의 대표는 말한다.
이 벤처기업 외에 전국 여성과 정보 테크놀로지 센터 같은 비영리기구, 애스티아, 스프링보드 엔터프라이지스 등이 하이텍 분야 성적 불균형 해소를 위해 창업 여성들을 위한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보면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 비해 과학과 수학에 대한 관심도가 낮고, 하이텍 분야를 전공하는 여성이 수적으로 적은 것이다. 플레밍의 경우 여자고등학교 재학 시절, 수학과 과학 과목의 수준은 남자학교 수준을 따르지 못했다. 스탠포드 재학 시절 공학과목들에서 여학생은 남학생의 1/3에 불과했다.
2009년 SAT 시험을 본 학생들 중 컴퓨터나 정보과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한 여학생은 1%에 불과, 5%인 남학생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2008년 컴퓨터과학 전공으로 졸업한 대학생 중 여성의 비율은 18%로 1985년의 37%에서 오히려 하락했다.
아울러 이미지 문제도 여성들에게는 걸림돌이다. 컴퓨터 과학도의 이미지는 바짝 마르고 사교생활이라고는 없이 정크 푸드를 먹으면서 비디오 게임에 열중하고 공상과학물을 좋아한다는 이미지가 대단히 강하다. 그래서 그런 이미지에 맞지 않는 사람들, 특히 여학생들은 그 분야 전공을 꺼려한다는 것이다.
하이텍 분야에서 성공한 여성 역할모델이 별로 없는 것도 여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메그 휘트먼 전 이베이 사장, 칼리 피오리나 전 휼렛 패커드 CEO 등이 있지만 수적으로 대단히 적다. 그래서 스탠포드에서는 컴퓨터과학 전공 여성 졸업생들이 조직을 만들어 신입 여학생들의 이 분야 전공을 격려하고 있다. 하이텍 전공자들이라고 모두 기계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음악도 좋아하고 연극도 좋아하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의도이다.
하이텍 분야에 여성들이 적은 또 다른 이유는 이 분야는 특히 가정을 병행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성들은 가정에 대한 꿈이 있는 데 “일주일에 60시간 씩 일하려면 가정생활을 희생해야 하니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녀 양육을 위해 잠시 직장을 떠난 후 복직하기도 어렵다. 하이텍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하이텍 회사를 새로 시작하면 그 다음 닥치는 것은 투자 유치의 어려움이다. 투자는 대부분 인맥을 통하기 마련인데 벤처 투자가들 중 대다수가 남성들이니 여성들은 그만큼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리콘 밸리의 현주소는 남성 클럽 수준이다.
<뉴욕타임스 -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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