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러웠다. 대지진으로 20만명이 목숨을 잃은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 아이티. 과연 이 땅에서 감히 행복을 이야기할 수가 있을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아이티를 품에 안은 한인 목사가 있다.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사랑의 교회’ 백삼숙(67) 목사가 바로 그 주인공. 이번 지진으로 자신도 부상을 입었지만 현장에 남아 구조작업을 펼치며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 백 목사(blog.naver.com/lovehaiti)를 소개한다.
조심스러웠다. 대지진으로 20만명이 목숨을 잃은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 아이티. 과연 이 땅에서 감히 행복을 이야기할 수가 있을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아이티를 품에 안은 한인 목사가 있다.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사랑의 교회’ 백삼숙(67) 목사가 바로 그 주인공. 이번 지진으로 자신도 부상을 입었지만 현장에 남아 구조작업을 펼치며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 백 목사(blog.naver.com/lovehaiti)를 소개한다.
■아이티 아이들의 엄마
최악의 지진이 라틴 아메리카의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를 덮쳤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현장에서는 한인 선교사들이 피신하지 않고 남아 구조작업을 돕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사랑의 교회 백삼숙 목사.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평소에도 그들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던 목사님이 그들을 버리고 안전한 곳으로 갈 리 없다”며 백 목사의 헌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백 목사가 아이티에서 교회와 고아원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50세가 넘어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단기선교를 다니던 중 아이티에서 밥 대신 진흙 쿠키를 먹고,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배낭 하나만 메고 온 동네를 다니며 아이들과 주민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환갑을 앞둔 나이였지만 아이티 사람들과 같이 길거리에서 잠을 잤다. 사랑의 교회와 고아원인 사랑의 집이 생겼고 지금은 이곳에서 10여명의 어린이들과 5명의 신학생이 한솥밥을 먹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처음엔 그를 ‘할렐루야 아줌마’라고 불렀으나 이제는 ‘엄마’라고 부른다. 한글학교도 운영하고 있어 고아원 아이들과 지역사회 사람들은 한국말을 곧잘 한다.
백 목사의 어머니는 지난 2005년 86세로 숨져 아이티에 묻힌 최초의 한국인이 됐다. 백 목사 자신도 “나도 아이티에 묻힐 것”이라고 말한다.
■피난처가 된 사랑의 집
사랑의 교회도 지진 피해를 피해 가진 못했다.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머물던 한 신학생이 신학교 건물이 붕괴되면서 매몰돼 혼수상태로 구조됐다. 백 목사도 옆구리를 다쳤다. 혈압도 크게 떨어졌지만 자신의 건강만 돌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지진이 발생하자 부상자들과 주민들은 사랑의 교회를 찾아왔다. 백 목사는 집에 있던 식량과 식수, 비상약을 모두 꺼내 사람들을 먹이고 치료했다. 평소에도 사랑의 교회에는 비상약품이 갖춰져 있어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곤 했다. 백 목사는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먼 길을 걸어온 이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용돈까지 쥐어 보냈다.
참혹한 지진 피해의 현장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사람들을 도왔지만 모든 것이 역부족이었다. 마지막 물이 떨어지기 직전, 한국과 미국에서 도착한 구호단체와 기적처럼 연락이 닿았다.
현재 백 목사는 구호재건 작업이 한창인 아이티에서 구호물품을 지역사회에 순차적으로 나눠주는 일과 한국에서 온 목회자와 기자, PD 등을 안내하며 아이티의 고통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희망 속 변화를 꿈꾸며
미국에 거주하는 백 목사의 후원자인 노봉균씨는 “극적으로 통화가 됐는데 목사님은 여전히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고 희망을 찾는 목소리였다”면서 “전화위복의 계기가 돼 국제사회에서 이들을 보다 폭넓게 도우며 함께 성장하길 기대한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지난 2006년부터 백삼숙 목사를 돕기 위해 매년 2주 정도 아이티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노봉균씨는 대지진 이전부터 죽음이 현실인 아이티 사람들을 보았다. 늘 먹을 것이 부족했고, 입을 옷도 없어 바닥에서 잠을 자다 밤사이 얼어 죽기도 했다.
그러나 희망의 빛은 있었다. 처음엔 빵이나 쌀을 나눠줄 때 질서는 고사하고 앞에 있는 사람을 밟고 달려들던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줄을 서게 됐고, 늦게 온 사람에게 두 개 받은 빵 중 하나를 나눠주더라는 것.
노씨는 “영양실조로 노랗게 된 눈빛과 항상 축축하게 젖어있는 손을 보면서 이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반증해 보기도 했지만 백 목사님의 사역 속에 변화와 희망이 있었다”며 “멈추지 않고 사역과 선교를 이어가면 언젠가는 이들의 삶도 변화되고 가난의 대물림이 끊어져 행복에 조금은 가까이 다가가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노씨는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아이티로 가서 백 목사가 이어오던 고아원 및 예당 신축, 어린이 사역, 치료사역 등을 도울 계획이다.
<김동희 기자>
‘사랑의 교회’ 백삼숙 목사 품에 안긴 여자 아이의 표정이 편안하다. 현재 사랑의 교회 고아원에는 지진으로 갈 곳을 잃은 피해자들과 고아 50여명이 머물고 있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 사랑의 교회 앞에서 고아원 원생들과 현지 신학생들, 봉사자들이 밝게 웃고 있다. 가운데 줄 회색 옷 입은 사람이 백삼숙 목사, 맨 뒷줄 한인이 노봉균씨.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