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파가 심각하던 지난해 1월부터 뉴욕타임스는 캘리포니아, 모레노 밸리의 한 동네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주민들의 상황을 살폈다. LA 다운타운에서 동쪽으로 60마일 떨어진 이곳을 표본으로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한 주택 차압난이 어떻게 중산층 동네를 변모시켜 나가는 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NYT, 모레노 밸리 동네 주민들 삶 1년간 관찰
주택차압, 실직으로 어렵던 가정들 차츰 안정세
일자리 찾고 월상환금 재조정하며 새 출발 의지
모레노 밸리에 있는 동네인 베스 코트는 깊은 불황 속에서 고통 받던 미국의 축소판이었다. 주택경기 거품이 터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불경기가 들이 닥쳤을 때 이 구역에서는 8개 주택 중 절반인 4개 주택이 차압당했다. 차압당하지 않은 나머지 가족들의 사정도 거의 비슷했다.
뉴욕타임스가 베스 코트 동네사람들의 삶을 추적해온 지 1년. 캘리포니아의 실업률은 여전히 상승 중이고 주택 시장은 여전히 침체 상태이며 주정부 예산적자는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불경기 타파를 위한 정책들이 시행되면서 미 전국에서 서서히 변화가 찾아오듯 이곳에서도 변화가 찾아들고 있다. 희미하나마 낙관론이 떠오르고 있다.
베스 코트의 주민 필 윙클러는 요즘 옆집 틴에이저에게 돈을 주고 잔디를 깎게 한다. 미국 교외주택가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어른들은 너무 바빠서 잔디 깎을 시간이 없고 10대들이 적당한 가격에 일을 맡는다. 그러나 윙클러가 잔디 깎는 일을 남에게 시킨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그는 자동차 부품들을 e 베이에 내다 팔아 생활비를 보탰다. 일자리를 잃고 아내와 실직수당에 의지해서 식구들을 먹이고 입혔다. 이웃들의 사정도 거의 비슷했다. 아빠들은 실직하고 엄마들이 쥐꼬리 만한 봉급으로 생계를 꾸렸다. 어른들이 시간이 넘쳐나니 잔디 깎는 일이며 집안 여기저기 고치는 일을 직접 했다.
미 전국 곳곳에서 차츰 상황이 호전되고 있고, 베스 코트도 그 중 하나이다. 주인 없이 버려졌던 집들에 새 주인이 들어오고 윙클러를 비롯한 아버지들은 일자리를 다시 얻었다.
재정적 재난의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많은 이웃들은 크레딧카드가 없고 자동차를 압류 당한 후 다시 장만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매달려 있던 상태에서 이제는 좀 버티는 수준이 되었으니 발전이다.
지난해 봄 감원 당했던 교사는 다른 학교에 새로 나가게 되었고, 주택 상환금 조정을 위해 은행 측과 씨름을 하던 사람은 마침내 월 납입금을 재조정 받았다. 부셔진 자전거가 뒹굴고 잡초가 여름 내내 그득하던 빈집의 잔디밭은 이제 새 주인을 만나 깔끔해졌다.
이곳의 실직 아빠 중 한사람으로 조경업 종사자인 엘라디오 소토는 “이제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고 말한다. 그도 새로 취직을 했다.
“작은 미니밴을 하나 생각 중이에요. 그게 지금으로서는 내 삶의 목표이지요”
그는 상황이 어려워 집을 팔아야 했지만 그 집에서 계속 살 수는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의 집을 산 새 주인에게서 다시 집을 빌려 세를 살면서 주거비를 매달 900달러 정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7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타던 대형 트럭은 끝내 압류 당했다.
“이제는 식구들이 다함께 어디를 갈 수가 없어요. 며칠 전 딸의 밴드가 포모나에서 연주를 했는데 아내와 다른 아이들은 집에 남아 있어야 했어요. 그게 좀 슬퍼요”
그래서 그가 장만하고 싶은 것이 미니밴이다.
그의 옆집에 사는 공장근로자 윙클러는 1년 이상 일 없이 지내가다 지난해 9월말 풀러튼에 있는 킴벌리-클락 공장에 취직이 되었다. 집에서 50마일 정도 떨어져 출퇴근길이 멀다. 게다가 야근을 할 때면 두 딸들을 며칠씩 못보고 지낼 수가 있다. 딸들은 그가 늘 집에 있으면서 학교로 데려다 주고 데려오며 말썽이 생기면 책임을 지던 데 익숙해 있던 터였다.
12살짜리 딸 에바가 학업성적이 부진할 때 그는 문자 그대로 딸을 교실에서 교실로 따라다녔다. 딸도 그것을 괘념치 않았다. 그리고 나이 이제 에바는 우등생이 되었다.
근무시간이 길고 힘들지만 그는 불만이 없다. 바쁜 게 좋고 아이들에게 건강보험을 줄 수 있는 게 행복하고 감사하다. 4개월 후면 봉급도 인상된다고 그는 기뻐한다.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르던 근년 베스 코트의 이웃들은 거의 대부분 집 에퀴티에서 수천 달러씩을 꺼내 썼다. 1997년 12만 달러 정도 하던 집값은 한창 때 35만 달러를 넘어섰다.
2008년 10월부터 2009년 8월 사이 베트 코트에서는 주택 4채가 차압당했고 그중 2채는 새 주인을 만났다. 새 주인들은 연방 주택융자기관을 통해 전통적 주택융자보다 다운페이를 적게 하고 융자를 받아 집을 살 수 있었다.
그중 한집이 알메이다 가족이다. 침실 3개에 뒷마당이 멋진 이 2층집에서는 기쁨의 소리가 넘쳐난다. 지난해 여름 만해도 이 집은 차압상태였고 엄마가 샤핑 몰로 일하러 나간 사이 아이들만 TV 앞에 앉아 있곤 했다.
지난 10월 호세 알메이다가 15만달러에 이 집을 샀다. 전 주인이 2003년 살 때에 비하면 70%의 가격이다. 알메이다 가족에게는 처음 장만한 내 집이다. LA의 험한 동네 아파트에 살던 때에 비하면 이곳은 너무 조용하고, 가진 돈을 몽땅 집어넣었지만 이 가족은 너무 행복하다.
코니와 테드 핸슨 부부는 이 동네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은퇴한 노부부로 젊은 시절 착실하게 저축해 해마다 여름이면 유럽여행을 가고, 캠퍼가 있으니 기분이 동하면 언제든지 여행을 떠난다. 이웃들을 한데 뭉치는 아교 같은 존재로 이웃집 잔디밭을 돌보고 문제 있는 친구들을 보살피며 동네 아이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역할을 오래 해왔다.
그런데 북가주에서 교사로 일하던 딸이 지난여름 실직하면서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이웃들이 핸슨 부부의 손자들을 돕게 되었다.
핸슨 부부는 여행갈 때마다 윙클러의 딸들에게 고양이 밥 주고 화초에 물주는 일을 맡겼었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핸슨의 13살짜리 외손자가 윙클러 집의 잔디를 깎는다.
동네에는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이 없지 않다. 전기기술자 애드리안 블랑코는 1년 전 허리를 다쳐 일을 그만둔 후 아직 실직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낙관적 무드에 동참한다. 주택 월 상환금 조정을 위해 몇 달 동안 애쓴 끝에 마침내 월 페이먼트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했고 허리통증이 계속되고 있어요. 그래도 행복합니다. 여전히 여기에 살고 있으니까요”
<뉴욕타임스 -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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