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 실직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장애 많이 나타나
폴 바크머스의 9세 된 딸 레베카는 지난 여름부터 머리카락을 꼬는 버릇이 생겼다. 레베카의 언니인 한나(12)는 벌컥 화를 내는 경우가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바크머스는 아이들의 변화가 자신의 실업과 상관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날로 명백해지는 증거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바크머스는 말했다.
가장 실직 경우 자녀 유급률 15% 높아
가사분담 불균형으로 부부 갈등도 심화
실업이 길어지면서 바크머스 가족은 실업수당과 저축, 그리고 부인이 파트타임으로 버는 돈으로 생활하면서 외형적으로는 버티고 있지만 가족들은 점차 지쳐가고 있다. 안을 들여다보면 이 가족은 벼랑 끝에 몰려 있는 형국이다. 바크머스 부부는 아이들이 행동 상 문제와 스트레스 관련 장애로 힘들어 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전국의 수많은 가정에 이번 경기침체가 가져다 준 가장 큰 충격은 재정적인 것만이 아니다. 감정과 심리적인 충격 역시 심각하다. 특히 아이들은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들이다. 부모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안으로 삭히고 있다.
몇몇 연구는 부모의 실직, 특히 아버지의 실직이 아이들의 학교 성적에서부터 자아 존중감에 이르기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일자리를 잃은 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오히려 축복이 됐다는 실직자들의 말을 많이 들었다. 나도 가족을 사랑하고 가장 소중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축복이 되지 못했다”고 바크머스는 말했다.
최근 UC 데이비스의 연구는 가장이 실직한 가정의 아이가 유급할 확률은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15%나 높다고 밝히고 있다. 시카고 대학의 애리얼 칼릴 교수와 뉴욕 아동 및 빈민연구소의 캐슬린 지올-게스트가 공동으로 한 연구에서도 오랜 실직 상태의 싱글 맘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중퇴율이 높고 행복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적으로 부모가 실직한 집안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보다 어른이 된 후 소득 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백악관 재정부서 책임자인 피터 오스작이 최근 뉴욕대학 연설에서 말한바 있다.
수많은 연구들은 가족 수입의 하락이 아이들의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발달 심리학자인 칼릴 교수는 중산층 가정에 있어서 더 중요한 요소는 가족 다이내믹스의 변화라고 지적한다. “실직자가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정도는 아이들에게 문제가 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부모간의 갈등이다. 이런 것들이 아주 나쁜 가족의 다이내믹스를 형성한다는 것을 많은 연구들이 반복적으로 확인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칼릴 교수는 아버지가 실직했을 경우가 엄마의 실직보다 아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칼릴 교수는 실직이 남성의 자아 이미지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엄마의 실직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려 줘 충격을 완화시켜 주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기사를 위해 인터뷰를 한 10여 가정 가운데 어떤 가정들은 실직이 가족들 간의 유대에 도움이 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드니스 스톨(39)과 남편 래리(47)는 지난해 10월 샌앤토니오 한 은행의 일자리를 동시에 잃었다. 드니스는 부행장이었고 남편은 지점의 론 매니저였는데 아내가 훨씬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럼에도 래리는 아내보다 실직을 훨씬 충격적으로 받아 들였다.
기죽지 않으려 수개월 노력한 끝에 최근 캔사스 시티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온 가족이 이사 갔다. 수입은 예전보다 적지만 다시 일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해 하고 있다. 아내 드니스도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한편으로 5살 된 세쌍둥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이들에게 절약의 소중함을 심어주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아이들과 과자를 구웠다. 아이들의 숙제도 돌봐 줄 수 있다. 교회도 나간다. 집안일은 내가 한다”고 드니스는 말했다.
그러나 실직은 역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디애나 피셔스의 로버트 식크(42)는 지난 3월 콜센터 매니저 자리를 잃었다. 이후 11세 된 양아들 코디와 보낼 시간이 많아졌는데 사소한 일로 크게 다투는 등 아들과 관계가 나빠졌다. 아이의 성적은 떨어지고 부모에게 말대꾸 하는 것이 부쩍 늘었다.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더 악화됐다. 심한 말을 뱉어내게 된다. 집안에 있다 보면 신경이 날카로워 지는데 실직의 압박감 때문”이라고 식크는 말했다.
바크머스가 지난해 12월 연봉 12만달러 짜리인 에너지 컨설팅 회사 일자리에서 감원됐을 때 이 사실을 차마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수일 동안 그는 옷을 차려 입고 매일 아침 6시에 집을 나서 커피샵과 도서관 등을 돌아다니다 돌아오곤 했다. 실직 8개월 전에 이 자리에 채용됐던 바크머스는 어스틴에서 우들랜즈로 이사 해 뒷마당 수영장과 스파가 있는 드림 하우스를 구입한 상태였다.
경기가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의 부인은 남편에 대한 분노를 지울 수 없었다. “아내의 마음속에는 감원된 것이 부분적으로는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별로 훌륭한 직원이 아니었다는 생각 말이다.” 상담을 통해 갈등이 많이 해소되긴 했지만 그의 부인은 지금도 가끔씩 우울해하면서 눈물을 흘리곤 한다. 돈을 둘러싼 다툼 외에 부부의 바뀐 역할이 갈등을 유발한다. 그의 부인은 프리스쿨에 파트타임 일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요리와 청소, 빨래 등 집안일 대부분은 여전히 그녀 몫이다.
칼릴 교수는 최근 한 연구에서 실직 아버지가 풀타임 일자리를 갖고 있는 엄마보다 집안일을 훨씬 덜 하고 아이들 돌보는 일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바크머스도 딸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레베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은 그가 한다. 숙제를 도와주고 한나와는 축구도 하고 잡담도 나눈다.
그러나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다툼도 늘었다. “아빠와 항상 옆에 있어요, 일자리 때문에 좌절하는 것을 보는 게 이상해요. 같이 있어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24시간 집에 있다 보니 싸움도 늘어나는 것 같아요”라고 한나는 말했다.
레베카가 머리카락을 시작했을 때 아이는 “단지 지루해서” 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단 결과 스트레스성 장애로 판명됐다. 부모와 심리치료사는 아버지의 실직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는 머리 꼬는 행동은 안하지만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행동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어느 날은 엄마에게 자기가 나중에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뉴욕타임스 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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