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보스턴대 교수실에서 필자와 함께.
전쟁의 폐허 속에서 차이콥스키와 바흐를 쳤던 신동 한동일이 카네기홀에 데뷔한 시기는 그의 미국진출 다음해인 1955년3월이었다. 14세의 나이로 전쟁속에 피어난 천재 피아니스트로 미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그였으므로 콘서트 입문이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미국에 오자마자 인기 앵커맨 월터 크롱카이트와의 인터뷰를 비롯, 에드 설리반 쇼등 TV출연, 각지방 오케스트라의 초청연주가 봇물처럼 터졌다.
덴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초청을 받았고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영 피플스 콘서트 경연대회에 출전, 입선하면서 이듬해 뉴욕필과 협연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때 그가 연주한 곡은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 이른바 카네기홀 데뷔였다.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기대속에 그를 보냈던 온국민이 열광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축전을, 프란체스카 여사는 붉은 장미 두다발을 축하의 선물로 보내왔다.
그가 행운을 얻기 전 구걸 피아노를 치던 시절은 한국전 휴전 무렵인 1953년경. 아들의 천재성을 높이 샀던 그의 아버지가 수소문한 끝에 서울의대 자리 미제5공군 사령부에 놀고있는 피아노 한대의 교섭이 잘 이루어져 그곳서 매일 몇시간씩 연습을 할수 있었다. 조그만 행운이었다. 이 조그만 행운은 곧이어 엄청난 행운을 몰고 왔다. 연습이 계속되던 어느날 공군 사병 한사람
이 찾아와 며칠후 중요한 인사들을 초청하는 쇼가 있는데 그자리에서 한곡 쳐줄수 있겠느냐는 부탁이었다. 며칠후의 쇼에는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미제5공군 사령관 새무엘 앤더슨 중장이 참석하게 되어있었다. 그날 소년 한동일의 바흐 연주는 성공적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앤더슨 장군이 무대 뒤로 그를 찾아왔다. 통역을 통해 한동일의 부친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뜻밖에도 미국 유학과 함께 학비 전액을 부담해 주겠다는 제의였다.
먹고 살기조차 힘든 전쟁시절 그와같은 은인을 만나게된 행운은 하늘의 별따기 였다고 한동일은 회상했다. 이렇게 시작된 앤더슨 장군과의 인연은 그가 타계할때 까지 계속됐다. 앤더슨 장군의 약속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의 유학자금을 모금하는 연주회가 그해 11월과 12월 두달간에 걸쳐 주한 미공군 기지들을 돌며 진행됐다. 연주가 끝나고 통역 아나운서가 이 소년을 줄리어드에 유학시키기 위해 장학금을 모으자고 호소하면서 장내에 모자가 돌려지고 5센트, 10센트짜리 동전이 수북히 쌓인 모자가 돌아올때면 꽤많은 액수가 모여졌다. 54년에 있었던 일본 공군기지에서의 모금은 5천 달러에 달했다. 때마침 6월1일 본국으로 전임되는 앤더슨 장군의 군용기에 동승해 한동일 소년의 미국 유학길은 활짝 열리게 됐다. 당시 배재중 1학년으로 병역 미필자의 해외출국은 불가능할 만큼 엄격했던 시절이었는데도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으로 무사
히 출국할수 있었다.
프로펠러 군용기 편으로 동경-존슨 아일랜드-하와이-샌프란시스코-텍사스주 포트워스-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한 한동일이 거기서 작별인사를 하고 뉴욕행 기차에 오르면서 12세 소년의 외톨이 인생 여정이 펼쳐졌다. 이때쯤 뉴욕의 매스컴은 이 천제소년을 맞아들이는데 성의를 표하고 있었다. 여름방학 중인데도 줄리어드의 로지나 레빈 교수등 전직원이 대기상태에 있었고 뉴욕타임즈. 데일리 뉴스, 저널 아메리카등 미디어들이 대대적으로 그의 도착을 알렸다. 다음날에는 월터 크롱카이트(CBS 유명앵커)와 인터뷰를 했다. 이 엄청난 홍보는 그의 미국 아버지 앤더슨 장군이 소리없이 진행시킨 사전 준비작업에 의해 이루어졌다.
며칠후 실시된 줄리어드의 오디션에서 바흐의 몇곡이 연주되었고 미숙한 면이 있었지만 그의 입학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전쟁터에서 자라난 천재라는 동정심리도 어느정도 작용했다. 예나 지금이나 줄어리어드에는 기숙사가 없었다. 그래서 한동일은 그의 어머니와 이화여전 동창생인 성악가 김자경의 아파트에 임시로 기숙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자경의 자녀들이 다니던 세인트 힐더 사립중학교에 입학했다. 줄리어드는 예비코스였기 때문에 토요일에만 다녔다. 학비와 생활비는 앤더슨 장군이 보내오는 특별장학금 계좌를 통해 적시에 지원을 받을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55년 카네기홀 데뷔 컨서트에 당당히 서게 되었던 것.
줄리어드 졸업등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고 한동일은 1965년 제24회 리벤트리트 국제콩쿨에서 우승함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한국인 최초의 국제 음악콩쿨 입상 기록이었다. 한국인의 예술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무대였고 이때 레너드 번스타인은 그를 가리켜 ‘한국의 모차르트’라고 했다. 이후로 그의 연주경력은 차근차근 쌓여져 갔다. 미국, 캐나다, 유럽, 아시아등
지를 돌며 활발한 순회연주를 가졌다. 뉴욕 필하모닉을 비롯, 시카고 심포니,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심포니, 미네아폴리스 오케스트라. 신시내티 심포니, 인디애나폴리스 심포니, 워싱턴 내서녈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로열 필하모닉, 스코틀랜드 내셔널 오케스트라, 런던 모차르트 플레이어즈, 할레 오케스트라, 로텔담 필하모닉, 오슬로 필하모닉등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과 돌아가며 협연했다.
한편 연주에 못지않게 교육 쪽으로도 눈을 돌렸다. 후진 양성을 통해 음악인생의 정체성을 찾으면서 인대애나 주립대 부교수, 텍사스 주립대 교수, 보스턴대 교수를 역임했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는 평소 바라던 대로 고국의 후진양성(울산대 음대학장)에 마지막 열정을 태우고 있다. 그러나 음악가로서의 기나긴 여정으로 볼때 어린 나이에 일찍 화려한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는 점이 꼭 행운으로만 여겨질 일은 아니었다. 너무 일찍 연주생활에 뛰어든 감이 없지 않았다. 한참 공부에 전념해야 할 나이에 연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결과가 아닐수 없었다. 다른 한편 인간 한동일 그자신으로서는 너무 일찍 세상을 터득하게 되고 조숙한 나머지 평범한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아쉬움도 있었다. 최근 타계한 마이클 잭슨도 그와 비슷한 처지가 되었다고 필
자는 생각한다. 부모는 계시되 고아 아닌 고아로서의 외로운 인생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한때 심각한 우울증과 함께 신경쇠약 증세까지 보였던 그는 베를린 연주때 일부러 틀린 건반을 두드린 적도 있었으나 노력끝에 용케도 그 터널을 벗어날수 있었다.
▲1954년 한동일이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 이승만 대통령의 격려를 받았다. 오른쪽은 당시 이대통령의 양자 이강석.
■ 한동일의 후견인이자 아버지 앤더슨 장군
특별 장학계좌 통해 학비.생활비 지원
▲한동일이 아버지라고 불렀던 새무엘 앤더슨 장군
한동일의 인생을 행운아로 만들어준 미국인 아버지 앤더슨 장군이 도움을 주는 방식은 좀 특이했다. 장학금을 직접 손에 쥐어주는것이 아니라 국제교육기관의 기금에 집어넣고 그가운데 한동일 교육기금이라는 특별항목을 만들었다. 그 계좌를 통해 학자금, 생활비, 용돈등이 일정하게 지급되는 합리적인 방법을 택했다. 앤더슨 장군은 한동일의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끔 연주여행을 주선해 주었다. 거저 주는게 아니라 무엇인가 노력을 해야 얻는게 있다는 식의 교육적인 면을 강조했다.
그후 앤더슨장군은 워싱턴 국방성 근무중 58년 대장 진급과 함께 앤드루스 공군기지 사령관으로 전임됐다가 파리의 북대서양 조약기구(나토) 부사령관을 끝으로 은퇴, 지난 81년 타계했다. 말년 어느날 앤더슨 장군은 그를 찾은 한동일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었다. 토니(한동일의 미국 이름), 나는 정말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아닙니다.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모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네 자신이 모든걸 해내지 않았느냐
조중무<언론인,한국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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