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금융인 정원훈 남기고 싶은 이야기 <6> 가주외환은행
외환은행 LA지점 점포 테이블서
당국에 낼 신청서류 등 바쁘게 준비
한인들 첫 현지은행에 뿌듯함 가져
한국외환은행의 전무직을 사임하고 나는 1972년 초가을 집 뒤에 있는 성북동 성터를 자주 산책하는 백수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은행에서 기별이 왔다. LA에 현지은행을 세우게 되는데 맡아 볼 뜻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승낙하고 1973년 3월에 LA에 왔다.
외환은행 LA 지점의 점포 안에 테이블을 하나 빌려줘 거기서 현지은행 설립준비에 착수했다. 이 은행의 설립준비는 이미 상당정도 진척되어 있었다. 뉴욕에 와 있었던 흥완모(후에 외환은행의 전무로 나와는 대학동기) 이사가 이미 가주은행국에 신청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 내용의 외부로는 알려지지 않았었지만 그런 준비를 맡아왔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은행이 발족하면 그가 은행의 운영을 맡았어야 했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반드시 회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엉뚱한 은행 자퇴자인 내가 그 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에 손을 대고 보니 그게 그리 쉽지 않았다. 은행국에 접촉하여 그들이 요구하는 부분을 수정하고 또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예금보험 신청서를 준비하다 보니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는 격’이었다.
날이 갈수록 관계 당국들의 승인을 얻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래도 목표가 저만큼 보이는 판. 당국과 긴밀한 접촉을 하면서 재촉 또 재촉을 거듭했다. 내가 하는 승인 재촉뿐이 아니었다. 새 은행의 이사장이 될 서울의 한국외환은행 김우근 행장이 메주처럼 직접 전화로 나를 밀어붙였다. 되돌아보면 그의 그런 끈질긴 독려가 없었더라면 나의 은행국과 FDIC의 독촉도 실효를 보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외환은행 LA 지점장은 주인기(후에 상업은행장)군, 매일처럼 늘어가는 업무 사이사이 현지은행 설립을 위해 많은 것을 할애해 주었다.
◆ 개점
1973년 12월28일. 가주 은행국장 Jack Taufer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A Little late, but this is our christmas gift to you!
Congratulation”이라면서 우리 은행 설립신철에 대한 승인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은행이 설립된 것은 아니다. 그 뒤를 이어 처리해야 한 일들이 적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영업소를 선정하는 일이었는데 이것은 주의 인가서에 명시되어 있어서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LA Downtown Area & its vicinity”
윌셔가 15~6층의 병원건물을 찾았다. 안쪽에는 벽 금고로 보이는 자리도 보인다. 어떤 금융기관이 사용했던 것이 틀림없다. 총평수 8,000스퀘어피트. 전에 한 저축은행(S&L)이 쓰던 금고도 사용해도 된다는 조건에 임대료는 스퀘어피트당 월 65센트. 임대기간은 10년 플러스.
1974년 9월19일 California Korea Exchange Bank가 문을 열었다. 초기 자본금 300만달러를 2년 후 500만달러로 증자하면서 명칭을 California Korea Bank로 바꿨다. 단 한국외환은행의 단독출자는 계속되었다.
개업일의 점심에는 가주은행 감독원장 Jack Taufer, 담당 원장보, 한인회장, 상공회 회장 등 교포 유지들이 참석해 주었다. 서울 본부를 대표하여 뉴욕 주재 이해명 이사, 때마침 지나가던 BOK의 김성환 이사도 들러주었다.
은행 이사진은 Vincent Bel1, 강영남, 정원훈(이상 3명은 은행집행부), George Dieter, James Lesage, Charles F, Parker, 리오 송, John Game(이상 5명은 외부 초빙이사) 주인기, 김동휘, 김우근(이상 3명은 한국외환은행 대표) 합계 11명이었다.
좀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강영남은 서울 본점 파견으로 새 은행의 차석, 전무라 불렸다. 김동휘, 주인기는 각기 외환은행 뉴욕 및 LA 지점장, 김우근 행장은 이사회 이사장 원격지어서 김지점과 더불어 거의 참석을 못했다. Dieter, Lesage, Parker는 한국과 관련도 있는 건설 및 유류회사의 중역, 송씨는 유일한 한국인 사업가 및 농장주인, Games는 고문변호사로 Manatt, Phelp & Games의 파트너이다.
당시 1976년의 LA 한인타운은 아직 외양도 갖추지 못한 때다. 예들어 웨스턴과 버몬트 사이의 올림픽가에는 아직 2층 건물도 없고 남쪽 한 가운데는 red-block zone이란 낙서 같은 것이 눈에 띄기도 했다. 흑인 위주의 이 지역은 은행이 주택금융의 대상 밖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 교포들은 자신들이 처음 갖게 되는 현지 은행에 대하여 적지 않은 긍지를 가졌던 모양이다. LA 한인타운 지역에서 6~7마일이나 떨어진 곳을 아무런 불평 없이 찾아와 예금도 해주고 대부 신청서도 가져 왔다. 거의 다 소규모 마켓, 주유소, 식당, 페인팅 등 소매업 가게를 구매한다거나 증축하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서 온 은행이니까 돈을 거저 나눠주는 것 아니냐 하는 억척들도 있었지만 웬만하면 찾아온 손님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정책이었다.
후에 적지 않은 이들이 “아무 뒷받침도 없었는데 어떻게 돈을 빌려주었는지 모르겠어요. 덕분에 우리 가게를 마련할 수 있었고 지금은 이렇게 컸어요.” 이런 성공담은 나에게 대한 무엇에도 바꿀 수 없는 찬사다.
그러나 은행의 성장은 이민 온 한국인이란 우수한 고객들이 있었기에 이룩된 것이다. 억척같은 특별한 사람들, 그들의 노력과 모험이 없었더라면 가주외환은행의 성장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은행장들은 나의 설명을 듣고 다들 축하의 말을 던지며 어떤 이들은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 작은 은행그룹 중에는 개업 후 수년이 지났는데도 총자산이 2,000만달러도 안 되는 곳도 있었다. 년 반 후의 우리은행의 자산은 5,000만달러에 달했다.
◆ 에피소드
서울서 외환은행장이 온 적이 있었다. 취임 후 일종의 초도순시다. 본국의 외환은행장은 우리 KEBC의 이사회 이사장이다. 그이가 지점내용 및 우리은행의 운영 상황을 직접 돌보고자 할 것이다. 1968에 출발한 지점에 더하여 자회사인 우리은행까지 갖게 되어 본부행장은 대만족이었다. 도착 다음 날인가 소위 briefing이 있었다. 그는 개인답게 우스갯말도 섞으며 회의는 보고청취보다 가족이 재회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마지막에 그의 총평이 있었다.
“지점 그리고 새 은행이 제각기 자기의 최선을 다 해준데 대하여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두 분의 보고를 들으니까 두 기관간의 협조는 반드시 잘돼 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향했다. “정 행장. 내일부터는 고객탐방 같은 것은 하지 마세요. 나가 다니면서 지점의 예금이나 뽑아가는 것은 쓸데없는 형제간의 집안싸움입니다.” 이런 폭탄선언에 놀란 것은 나뿐이 아니다. 고객 방문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은행에서 이같은 금족령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항의했다. “행장님. 그것은 암만해도 어불성설인 것 같습니다. 은행을 새로 열어놓고 고객 권유에 나서지 않는다면 은행은 어떻게 자립을 하겠습니까? 특히 우리 새 은행은 이곳의 상업은행으로 출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장사를 하러 나온 것입니다.
커뮤니티에 나가서 개척하는 것이 이 은행의 사명입니다. 나가서 손님을 끌어다 장사를 하고 돈 버는 것. 그것이 우리의 임무이며 목표입니다. 혹시 우리 새 은행이 끌어오는 거래가 이곳 지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까 우려 하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그런 상황이 일어날 경우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새 은행의 공격 목표는 그보다 몇 배 큰 뱅크 오브 아메리카, 웰스파고 등 대형 은행들의 한인 고객들입니다. 이곳 외환지점은 branch가 아니고 agency입니다. Agency는 예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서울 행장은 끝내 자기 발언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