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한 성인자녀들 속속 부모 집으로
형제자매가 한 집에 사는 가족도 증가
생활비 절약하지만 사생활 없어 어려움
불경기로 생활이 쪼들리자 한 집에서 대가족을 이루며 사는 가정들이 늘고 있다. 실직한 성인 자녀가 부모 집으로 들어가고, 형제들이 한 집에 살며 렌트비를 나눠 내는 등의 케이스들이다. 어려움이 닥치면 식구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가족 간의 관계가 더 좋아진다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비좁은 공간에 여러 식구가 비비며 살다보면 관계가 오히려 경직되는 경우들이 많다.
상업용 부동산 개발회사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제이슨 파버가 실직한 것은 1년 반 전이었다. 경제가 나빠지면서 여러 건의 호텔 프로젝트들이 취소된 여파였다. 그러더니 지난해 2월 그의 아내 줄리가 감원을 당했다. 17년간 패션업계에서 일해온 줄리는 브랜드 매니저였다.
부부의 연봉 16만달러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금해뒀던 돈도 사라져 버렸다. 아파트를 싼 데로 옮겼지만 연 2만1,000달러의 실직 수당으로는 렌트비 감당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제이슨의 어머니 수지 파버(62)에게 도움을 청했다.
파버는 그 자신이 집 페이먼트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기꺼이 아들 부부에게 문을 열었다. 제이슨과 줄리는 지난 2월말 엔시노의 어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미 전국적으로 경제위기가 심화하면서 감원 당하거나 집을 차압당한 가족들이 부모형제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집이며 청구서, 식품비를 나눠 냄으로써 불경기를 같이 넘어가려는 것이다.
이렇게 가족, 친척들이 가진 것을 나눠 쓰며 불경기를 같이 버티는 행위는 대공황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자 베렌드 UCLA 사회학과 교수는 말한다. 특히 LA 같은 지역은 렌트비나 집값이 타지역에 비해 비싼 만큼 가족들이 같이 모여사는 일이 더 많을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같이 모여 살면 경제적으로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두 집 난방하기 보다는 한집 난방비가 싸고, 4사람 분 보다는 6사람 분 준비해서 나눠 먹는 것이 1인당 식사비로 더 싸게 먹힌다. 그러나 같이 모여 살다보면 가족 간 프라이버시며, 돈 , 집안일 분담 등의 문제로 다툼이 생기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어려운 시기에는 식구들이 더 가깝게 되고 가족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는 설이 있지요.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봅니다…재정적으로 궁핍한 상황이면 사람들이 좋은 모습만 보이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대가족 생활 중 가장 흔한 것은 성인 자녀들이 부모의 집으로 들어와 사는 것. 불경기 이후 이런 가족이 얼마나 늘었는지에 대한 통계는 없다. 하지만 경제가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걷기 전인 2008년에 이미 부모의 집에 얹혀사는 성인(18세에서 34세) 인구는 1,990만명으로 5년 전(1,780만명)에 비해 200만명이상이 늘었다.
형제자매나 사촌, 이모나 고모, 삼촌 등 친척들에게 방을 한 칸 빌려 사는 인구도 늘고 있다. 2007년 기준, 350만명이 형제나 자매의 집에서 살았고, 친척집에 사는 사람은 680만명에 달했다. 7년 전인 2000년 형제자매와 사는 사람은 300만명, 친척집에 사는 사람은 490만명이었다.
엔시노의 수지 파버는 2년 전 71만1,000달러를 주고 지금의 집을 샀다. 당시 부모에게서 유산으로 받은 돈을 보태 15% 다운 페이먼트를 했고, 투자해놓은 돈에서 나오는 이자로 월 3,759달러의 모기지를 감당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투자 자산의 가치가 2/3나 날아가고 앞으로 불경기가 더 계속되면 자산이 다 없어져 버릴 수도 있게 되었다. 집값도 뚝 떨어져 이제는 대출 받은 액수보다도 낮아졌다. 결국 3월1일 페이먼트를 못했다. 파버는 선물포장 회사를 최근까지 운영했지만 지금은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다.
아들 내외가 청구서를 지불하지 못해 도움을 주고 있던 그는 한 집에 다 모여 사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들 부부가 환영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 그는 할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 아들 내외가 더 넓은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자기 침실을 내주고 자신은 손님용 방으로 옮겼고, 차고를 창고로 쓰게 하기 위해 자동차를 길가로 옮겼다.
그는 자신의 재정 형편도 불안하지만 아들이 더 걱정이다. 어머니 집에서 얹혀살고 아내를 부양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아들이 힘들고 자존심을 상할 것 같기 때문이다.
제이슨과 줄리는 직장을 잃은 후 많은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소식이 없다. 너무 오래 어머니 집에 살다가 혹시라도 어머니와의 사이가 나빠질 까봐 제이슨은 걱정이다.
같이 모여 살다 보면 밀월기간은 끝나기 마련이다. 이스트 LA의 마리아 가니카(29)와 그의 남편은 두 아이를 데리고 2 베드룸 아파트에 살았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시댁 가족 5명이 들어와 같이 살고 있다. 렌트비는 오르고 가족들은 직장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카르니카의 거실은 벙크 베드와 침대용 카우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데이케어 센터에서 일하는 가니카는 “도무지 프라이버시라는 게 없다”고 말한다. 전에는 오후면 저녁 준비를 하기 전 카우치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는데 이제는 퇴근하면 바로 침실로 들어가야 한다. 거실에 항상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은 아파트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다보니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식구들끼리 살 형편도 못된다. 인쇄소에서 일하던 남편이 지난달 감원을 당했기 때문이다. 렌트비 1,600달러의 절반을 시댁 식구들이 내고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한 동안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UC 리버사이드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애드리아 벨렌바움은 2008년 졸업 후 아버지가 사는 노인 아파트로 들어갔다. 한달 정도면 취직을 해서 자기 거처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고, 아버지가 퇴거명령을 받지 않도록 그는 숨어서 살아야 했다.
그러다가 40분 떨어진 지역의 공예 재료상에서 진열대에 상품을 진열하고 최저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구했다. 그 돈으로는 겨우 식품비를 조금 보탤 정도였다.
지난달 애드리아와 그의 아버지는 아버지의 여자 친구 집으로 들어갔다. 부동산 관련 일을 하는 그녀가 모기지 페이먼트를 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애드리아는 워싱턴 D.C.의 정부기관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 신원조회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이사할 비용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트럭 운전기사인 아버지가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에 그는 고마워하고 있다.
“아니면 나는 길거리에 나앉았을 테니까요” 하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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