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흑인들, DNA 검사 통한 ‘뿌리 찾기’ 활발
오바마 등장·경제력 성장 등이 원인
자선사업·비즈니스 투자 날로 확대 추세
이중국적 허용 요구 캠페인도 적극 전개
휴스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아프리카에 대해 처음으로 받은 인상은 TV를 통해 접한, 타잔을 솥에다 집어넣으려고 하면서 라피아 야자 주위를 돌던 코에 뼈를 낀 원주민들에 대한 불편한 이미지였다고 아이재아 워싱턴은 말했다. ‘그레이 어내토미’에 출연한 45세의 이 흑인 배우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프리카에 대해 말한 적이 없으며 학교에서도 조상들의 대륙인 아프리카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뉴스들은 아프리카를 가난과 전염병, 부패와 전쟁의 땅으로 투영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제 워싱턴은 아프리카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최근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국적을 취득해 이중 국적자가 됐다. 그리고 시에라리온 한 마을의 추장으로 추대됐다. 워싱턴은 시에라리온을 돕기 위한 재단을 만들었으며 학교 건립과 병원 복구, 번스 섬에 있는 흑인노예 유적지 보존 등을 위해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무지에서 시작돼 뜨거운 애정으로 발전한 아프리카에 대한 워싱턴의 기나긴 장정은 지난 2005년 받은 DNA 검사 결과에 의해 가속화 됐다. 이 검사에서 그는 시에라리온 멘데 부족과 연결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은 자기와 같은 노예의 후손들이 이제는 모국의 발전을 돕기 위해 돌아 갈 수 있다고 말했다.
DNA 검사에 의해 수세기간 지속된 근원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믿는 미국 내 일부 흑인들은 아프리카에 대한 깊은 관심을 쏟고 있다. 이런 연관성을 확인한 후 아프리카를 더 많이 찾고 더 많은 자선 사업을 한다. 비즈니스 투자도 늘리고 이중 국적도 취득하려 한다.
이런 추세는 케냐와 캔사스의 아들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으로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유명한 오바마의 지난 2006년 아프리카 고향 방문으로 더 많은 흑인들의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DNA 검사에 따라 일부 미국 내 흑인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이중 국적을 요청하고 있다. 칼스테이트 도밍게즈 힐 정치학과의 외래교수인 앤소니 아처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미국 내 흑인들에게 이중 국적을 허용해 달라는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그의 관심은 초등학교 시절 유대인 선생이 고국에 돌아가려는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콤 X를 소개해 주면서 시작됐다. 이후 수년간 매 주말이면 그는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족보를 뒤지는 일에 골몰했다. 그러다 지난 봄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DNA검사가 바로 그것이다. 검사결과 그는 카메룬의 티카, 하우사, 풀라니 족과 조상이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조사에 의거해 가나에 뿌리를 둔 것으로 생각해 왔었다. 그는 카메룬 대통령에게 카메룬 국적 허용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고 있다.
아처와 다른 이중 국적 옹호론자들은 이중 국적이 단절의 상처를 치유하고 양쪽에 협조와 교역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두개의 여권을 가지게 되면 미국의 흑인들은 조상의 나라에서 재산을 소유하고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으며 여행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고 아처는 강조했다.(미국 법은 다른 나라 국적 취득을 금하고 있지 않다고 한 국무부 관리가 설명했다.) 그는 “미국 흑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아프리칸들”이라며 “아프리카는 이들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고 미국 흑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처는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인사들과 함께 베닌, 가나, 탄자니아 등 국가들을 대상으로 이중 국적 허용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탄자니아에서 열린 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제출한 63페이지의 건의문에서 아처는 DNA 검사를 통해 조상 확인이 되면 이중 국적을 허용해 달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내 흑인들에게 확실하게 이중 국적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가나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수년간 이 나라에 거주해야 한다는 거주권에 의거하고 있다. 아처는 이 규정 폐지를 바라고 있다.
또 자유를 얻은 미국 노예들이 세운 나라인 라이베리아는 한때 미국 흑인들에게 국적을 부여해 왔으나 지난 1986년 헌법 개정으로 현재는 규정이 모호한 상태이다. 워싱턴에게 국적을 허용한 시에라리온에서는 대통령 위원회에 의해 케이스별로 심사가 이뤄진다. 서아프리카의 베닌은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문제를 심사숙고 중이다. 이 나라는 10여년 전 노예무역에 관여한 과거의 죄를 미국 흑인들에게 사과했으며 양측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매년 축제를 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워싱턴은 아프리카 나라들로부터 국적을 받은 소수 가운데 한명일 뿐이다. 시에라리온의 어네스트 바이 코로마 대통령은 DNA 검사 결과와 자선 사업, 그리고 유명도 등을 들어 지난 가을 워싱턴에게 국적을 주었다. 주미 시에라리온 대사는 “우리나라는 오랜 내전을 겪었기 때문에 이미지 개선을 위해 워싱턴과 같은 유명인사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 흑인 의식운동은 아프리카와의 연대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오바마의 등장과 DNA 검사의 인기뿐 아니라 미국 내 흑인들의 경제적 성장, 라이베리아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치적 안정, 그리고 타임 워너 케이블을 통해 150만 가구에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아프리카 채널 등은 이런 관심을 한층 더 폭발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오프라 윈프리는 남아공에 학교를 세웠으며 랩 수퍼스타인 숀 ‘제이 Z’ 카터는 아프리카 대륙에 1,000개의 워터펌프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코미디언 크리스 락과 그의 부인은 남아공의 고아들과 조모가 아이들을 기르는 가정들을 위한 교육과 생필품, 치료 등을 지원하는 일을 벌이고 있다.
교인 수 2만2,000명인 ‘웨스트 앤젤레스 하나님의 교회’의 찰스 블레이크 비숍은 에이즈에 걸린 21개국 20만 아동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이보다 조금 규모가 작은 교회들도 이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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