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매년 이맘때면 휴스턴 한인기독교 교회연합회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신년기도회>를 개최해 오신 데 대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매년 휴스턴총영사를 초청해 주고 계신 대 대해서도 깊은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기도 덕분으로, 연합된 기도의 힘에 의하여 우리나라와 민족, 나아가서 세계의 평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믿습니다. 저는 방금 평화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평화라는 말은 매우 아름다운 말입니다.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인류 모두에게 중요한 말입니다. 정치인이든 학자이든 종교인이든 학생이든 일반인이든 평화라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이 자리가 기독교 모임이기 때문에 평화라는 말을 성서에서 음미해보겠습니다. 평화를 히브리어로 살렘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평화라는 단어, 살렘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성서에 가장 먼저 나오는 대목은 창세기 14장 18절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다음 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창 14:19).” 여기서 축복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오는데, 히브리어로 보면 처음에는 waybark이고, 나중 것은 baruk입니다. 둘 다 원형 동사는 barak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 이름이 버락 오바마입니다만, 버락이라는 말이 바로 축복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오바마의 아버지는 히브리어를 알고 버락이라고 붙인 것이 아니라 축복의 뜻을 지닌 아랍어에서 이름 지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평화라는 단어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 7장 1절-28절까지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멜기세덱은 레위 출신의 제사장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축복을 내렸습니다. 축복은 아무나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레위 출신의 제사장이라야 축복을 내릴 자격이 있습니다. 둘째,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내리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고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평화의 왕이며, 의로움의 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멜기세덱을 히브리어로 풀어보면, 멜기는 히브리어 멜렉, 즉 왕이라는 뜻이고, 세덱은 의로움이라는 뜻입니다. 세덱, 즉 의로움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노아, 아브라함, 야곱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의로움으로 가득 차신 분입니다. 시편 48장 10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여기에서 정의, 즉 의로움이라는 한국어는 히브리어 세덱(tsedek)을 번역한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평화는 오직 의로운 사람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의로움 또는 의로운 사람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의로움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살렘 왕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말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레위 출신이 아니지만 가장 위대한 제사장,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말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가장 완전한 의로움으로 가득 찬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생태적으로 불완전하므로 그러한 완전한 의로움을 지닐 수 없습니다만, 우리가 평화, 평화 말로만 할 게 아니라 과연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의로움의 몇 분의 일을 지녔는지 한 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지닌다면 평화는 저절로 오고 모든 사람은 축복, 즉 바락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멜기세덱이 다스리던 땅은 그 후 예루살렘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유산(yreshah)이라는 뜻입니다. 불행하게도 지금 예루살렘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평화의 유산은 깨어지고 전쟁뿐입니다.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정한 후에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 산에 머무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 유다 왕국의 왕들이 의로움을 버리자 하나님은 시온 산을 떠나 버리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지금 예루살렘에 머물고 계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의로운 사람, 평화를 지키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신 것은 그들이 의로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약속을 주신 것은 의로운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움이 있는 곳에 머무십니다. 의로운 사람과 함께 계십니다. 우리 휴스턴 한인교회 사회에도 이제는 평화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휴스턴에 의로운 교역자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습니다. 의로운 크리스챤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 32절에서 구원을 구함에 있어서 율법으로 하지 말고 믿음으로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9장 32절에,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믿음은 그리스어로 pistis입니다. 라틴어로 번역하면 fides이고, 영어로 번역하면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faith입니다.
믿음 또는 ‘믿다’를 히브리어로는 ‘aman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7장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너희가 굳게 믿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ta’aminu라고 합니다. 동사 원형으로는 ‘aman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굳게 서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te’amenu입니다. 동사 원형으로는 ‘aman입니다. 똑 같은 동사 ‘aman이 앞에서는 ‘굳게 믿다’를 뜻하도 뒤에서는 ‘굳게 세우다’를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갖는 사람을 세워줍니다. 믿음을 갖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의로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마치면서 쓰는 말 ‘아멘’이라는 말은 바로 ‘aman이라는 히브리어에서 왔습니다. 아멘이라고 말씀하실 때, 이사야 7장 9절을 한 번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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