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우리가 절약하고 아끼는 이유는 미래를 위해서다. 절약과 희망은 연인 사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대 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강렬한 욕망을 버리고 싶거든 그 어머니인 낭비를 버리라”고 했다. 대공황기 경제위기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이 늘어만 가고 펀드가 반 토막 나며 부동산 붕괴가 우려되는 이때, 정직한 마음과 검소함으로 불황을 이겨내는 한인 가정들도 눈에 띄고 있다. 자린고비의 지혜로 불황 속에서도 최대한 우아하고(?) 즐거운 인생을 사는 두 가족의 절약 손자병법을 공개한다.
■ 한응호.박정심 씨 부부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한응호씨는 부인 박정심씨와 고교 12학년에 재학 중인 진선·치훈 등 두 자녀와 함께 매주 일요일 오전 6시면 맨하탄 센트럴팍으로 향한다. 유산소 운동인 마라톤이 다른 스포츠보다 건강을 지키는데 으뜸일 뿐만 아니라 운동화 하나만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저렴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마라톤이 끝나는 오전 8시. 한씨 가족은 유니언스퀘어에서 열리는 파머스 마켓으로 발길을 돌린다. 농장직송의 신선한 먹거리를 싼 값에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장터별미의 눈요기를 함께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큰돈을 써가며 여행을 가거나 백화점 등에서 쇼핑을 하기보다 값싸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파머스 마켓이나 재래시장, 벼룩시장 등을 찾아 나름의 멋을 즐기며 실속을 챙기는 것이 한씨 가족의 주말 나들이 풍경이다.
최근 병원 행정원으로 일을 시작한 정심씨의 점심식사는 언제나 도시락이다. 처녀시절 직장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에는 회사 인근 맛집을 찾아다니며 점심을 사먹는 미식가였지만 결혼 후 절약이 몸에 밴 그녀에게 점심은 물론 야근하는 날에도 저녁식사는 역시 도시락이 최고다. 매일 빠지지 않고 들르던 커피전문점도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사무실에 비치된 인스턴트커피를 즐기는 것으로 하루 3~4달러의 커피 값이 절약되는 기쁨도 크다.
한씨 가족은 2006년 이민 와 현재까지 3번의 겨울을 맞았지만 집에 한 번도 난방을 켜 본 적이 없다. 대신 온 가족이 주 2회 가량 반신욕을 즐기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물론, 반신욕을 하고 난 뒤에는 욕조의 물을 변기에 버려 재활용하는 방법으로 나름의 절약을 하고 있다. 빨래를 할 때에도 한씨 가족은 옷에 묻은 때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옷에 남은 세제 찌꺼기에 더욱 신경을 쓴다. 세탁 후에 남아 있는 세제 성분이 피부에 좋지 않기 때문에 추가로 헹굼을 하다보면 물 값이 만만치 않게 나오기 때문이다. 정심씨는 마지막 헹군 물을 받아서 다음 옷을 애벌빨래하거나 걸레 등을 빨 때 다시 쓴다. 물 값도 절약될 뿐 아니라 절약 정신에 대한 만족감도 크기 때문이다. 비누 역시 가족들과 함께 직접 폐유로 만든 빨래 비누를 쓴다.
이렇게 생활하는 한씨 가족에게는 대공황 때보다 더 심한 불황이라는 요즘 같은 시기에도 크게 바뀐 것은 없다. 이민 생활 3년 만에 차도 샀고 조만간 집도 살 계획이다. 한씨는 자신을 무조건 아끼기만 하는 구두쇠나 자린고비가 아니라 아낄 땐 아끼고, 쓸 땐 쓰는 현명한 소비자라고 강조한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해 봤냐?’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부인 정심씨는 일반인들은 ‘난 안 될 거야’라고 포기해 버린다. 우리는 그게 아니라 ‘하면 되지,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라고 한다. 그 자체를 즐기면서 하면 된다. 실패하더라도 해보는 게 중요하다며 한인들에게 절약에 대한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저렴한 운동화 한 켤레로 즐길 수 있는 마라톤으로 건강을 지키고 있는 한응호씨 가족. 박정심(왼쪽부터)씨, 한치훈군, 한응호씨, 한진선양 등 일가족이 이른 새벽 센트럴팍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 조형진.임명희 씨 부부
그런가하면 한씨 가족에 버금가는 또 다른 알뜰족 조형진씨 가족의 절약 방법도 이에 못지않다. 쓸 때는 쓰고 스타일은 스타일대로 살리면서 각종 혜택은 절대 놓치지 않는 결혼 4년차 조형진· 임명희씨 부부. 지난해 태어난 딸 성희양까지 베이사이드에 살고 있는 이들 세식구는 오후 7시가 되면 천으로 된 장바구니를 두어 개 챙겨 인근 마트의 식품코너로 향한다. 그들이 노리는 건 바로 마감세일. 보통 9시에 문을 닫는 마트는 오후 7시30분쯤부터 세일을 시작해 8시부터는 파격적인 마감세일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들 가족은 낭비하는 전기도 없다. 온 가족이 집에서는 언제나 함께 있어 전등은 하나 이상 켜지 않는다. TV 역시 가족이 모두 모였을 때만 켠다. 덕분에 2베드룸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들의 한 달 전기료는 언제나 15달러 미만이다. 교통비도 짠돌이 짠순이 부부의 손바닥 안이다. 승용차 사용은 최대한 절제하며 무제한 교통카드 한 장으로 부부가 함께 사용한다. 두 명이 같이 외출할 때 최씨는 임씨를 먼저 지하철에 들여보낸 후 본인은 다음 역까지 뛰어가 먼저 내려서 기다리고 있는 임씨를 만나 같이 지하철을 탄다.
차계부 쓰기는 필수. 연비와 엔진오일, 소모품 교환을 한눈에 파악하고 대처방법도 쉽게 알 수 있다. 시내 주행 시에는 2,000RPM, 고속도로 주행 시에는 2,500RPM을 넘지 않는다. 급정거, 급출발은 그들의 사전에 없다. 가끔 뒤에서 “빵빵~” 하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에 그들의 자동차 뒤 유리에는 ‘초보운전’이 늘 붙어 있다. 1년에 평균 세 번은 지출한다는 교통범칙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교통법규는 꼭 지킨다.
조씨는 평소 습관만으로도 수백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녁식사는 가족이 모두 함께 해 취사용 연료를 절약하고, 조리기 불꽃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은 기본. 일반 솥보다 조리시간이 3분의1 정도 단축되는 압력밥솥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요즘처럼 날씨가 쌀쌀해지면 보일러 점검은 기본. 이민 온 2005년부터 단 한 번도 난방을 사용해 본 적이 없고 창문에는 문풍지를 붙이고 내복 착용을 하는 것으로 버티고 있다. 보일러 에어를 빼주는 것은 원활한 온수 흐름에 필수라고.
조씨는 통신비도 악착같이 절약한다. 먼저 통신사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통화명세를 뽑아보고 통화 스타일을 파악해 최적의 요금제를 선택하는 게 첫걸음이었다. 친척들과 함께 할인 혜택이 큰 패밀리요금제를 이용하고 요금은 할인받는 자동이체를 신청했다. 이러한 ‘현명한 소비’ 덕에 현재 그는 이민 3년 만에 내년 초 코압으로 이사할 수 있게 됐
다.
조씨는 절약의 시작은 가계부로 시작했다. 소비에 대한 기록을 남기자는 생각으로 하나씩 하다보면 어느새 지출 내역이 정리된다. 거기에 수입을 한 번씩 넣어주면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 맞는 것이다. 그게 가계부의 틀이라며 우린 구두쇠처럼 매우 인색한 그런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경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절약생활을 통해 자기 자신의 발전을 이루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부인 임씨는 마음에 드는 옷이 있었는데 그것을 사려고 2년을 버틴 적이 있다. 그 옷은 계절이 바뀌면 값이 내려갈 것을 알았기 때문에 2년 동안 매장에서 입어보기만 하다가 값이 많이 떨어졌을 때 샀다. 20달러였던 옷이 5달러로 떨어질 때까지 2년을 기다린 것이라고 전했다.
합리적으로 절약하고 적절한 투자로 불황을 이겨내고 있는 이들 이민 초년생 두 가족. 지난 몇 년간의 ‘짠돌이’ 생활은 그들의 생활 습관도 많이 바꿔 놓았다. 쓰지 않는 전기 코드 뽑기, TV 보지 않기, 대형마트보다는 재래시장 이용하기 등등. 그들은 한결같이 생활 속에서는 ‘낭비하는 습관을 없애고 무엇을 더 아낄까’를 늘 고민하지만 인간관계를 위한 일, 자기계발을 위한 일에는 예전보다 더 과감해졌다고 강조한다. 이는 절약
과 희망은 연인 사이이기에 남들보다 부지런히 희망과 돈을 모은 우리의 꿈과 포부 역시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3년째 가계부뿐만 아니라 차계부까지 쓰며 생활 속 절약을 실천하고 있는 조형진씨 가족. 부인 임명희(왼쪽)가 딸 성희(1)양과 함께 지출내역을 살펴보고 있다.
<구재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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