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나는 이 영화를 보았으니까 20번도 더 보았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보면 볼수록 싫증이 나기는커녕 감동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이 영화를 보는 앵글이 달라지고 감격 포인트도 변한다는 사실이다. 전에는 무심코 넘겼던 장면이 굉장히 클로즈업 되어 다가온다.
바로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이라는 영화다. 작품의 내용에 맞게 의역한다면 ‘나의 삶은 정말 의미가 있었어’쯤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경제적인 고통으로 자살하려다 극적으로 구출되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본 결과 의외로 자기가 의미 있는 존재였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에 관한 영화는 많다.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의 참회를 그린 ‘크리스마스 캐롤’ 산타가 있느냐 없느냐의 판결을 둘러싸고 고민하는 판사를 묘사한 ‘34가의 기적’ 등 수십 편이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이 어느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멋진 인생’을 추천하고 싶다. 프랭크 카프라가 감독하고 제임스 스튜어트와 도나 리드가 주연한 ‘멋진 인생’은 1946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개봉 당시에는 인기순위가 별로였다고 한다. 5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나 하나도 못 탔다.
가짜는 날이 지날수록 색이 바래는 법이고 진짜는 빛을 발하는 법이다. 음식도 시간이 지나면 썩는 것이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발효되어 점점 가치를 더 만들어내는 것이 있다. 포도주가 대표적이다. 사람도 그렇고 상품도 그렇다. 포도주와 같은 친구가 좋은 친구다.
영화 ‘멋진 인생’은 날이 지날수록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작품성을 인정받아 1990년대에 들어서자 ‘흘러간 할리웃 명화 100’에 선발되더니 지난해에는 ‘명화 10’에 끼었고 올해에는 마침내 미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명화 3위(판타지 부문)에 올랐다. 아카데미상을 주최하는 AFI (American Film Institute, 미영화학회)가 선발한 권위 있는 순위다.
‘멋진 인생’은 왜 미국인들에게 올해 더욱 감동을 주는가. 1930년대 경제공황 시대에 미국인 가장이 겪은 불안과 실망이 오늘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파동에서부터 실직바람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똑같아 자본주의는 일정 시간이 흐르면 홍역을 치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시대에 아버지 노릇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제임스 스튜어트의 실직 가장 신경질 연기는 압권이다. 이 영화에서 왜 그가 아카데미상을 못 탔는지 이해가 안 된다.
살아갈 의미가 있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내게 마련이다. 경제 불황은 일종의 한계상황이다. 생로병사처럼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 일도 안하면 실패도 없는 법이다. 그런 사람 인생은 박수가 없다. 육상경기에서 잘 달리는 사람이 1등 해도 관중이 박수치지는 않는다. 쓰러졌다 일어나 달린 끝에 1등한 사람에게 뜨거운 감동과 박수가 있는 법이다. 이것이 인생의 예술이다.
영화 ‘멋진 인생’은 쓰러졌다 다시 달리는 사람과 그의 가정이 겪는 크리스마스를 그린 스토리다. 그래서 경제 불황을 겪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올해 가장 감동적인 작품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1940년대와 지금의 미국 중산층 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비교해 볼 수도 있는 좋은 작품이다. 이 계절에 이 영화는 정말 명화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크리스마스이브(24일 저녁)에 NBC-TV에서 상영한다. 이전에 봤더라도 경제 불황인 올해 보면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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