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으로 들어오는 비행기 자리는 전보다 비어 있다. 국제 금융 센터에 있는 할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쉬워졌다. 바다 건너 구룡반도에 있는 이탈리아 모피 패션 가게 점원은 한가하게 오후를 보내고 있다. 대폭 세일을 하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손님이 없느냐고 묻자 “주식, 주식, 주식 때문”이라고 소리 높여 답한다. 올 들어 홍콩 주식 시장은 50% 이상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가 최소 내년까지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인근 중국 영토는 이미 불황에 빠져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담담히 받아 들이고 있다.
금융중심 미·유럽 등 서양에서 동양으로
97년 아시아 경제난 경험 내성 강해져
그 이유의 하나는 홍콩은 이미 이보다 더 심한 불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에서 시작된 경기 침체는 2003년 SARS 질병 소동 때까지 계속됐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과 서브프라임 사태로 시작된 미국의 침체가 세계의 경제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미국과 유럽이 죽을 쑤고 있는 것과 비례해 자본과 재능이 아시아로 이동하리라는 데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 덕을 가장 많이 볼 곳이 바로 홍콩이다. “세계 금융계에서는 뉴스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세군데 있다. 런던과 뉴욕, 그리고 홍콩이다”라고 뉴포트 비치에 본부를 둔 로스 캐피털의 부회장 겸 전 메릴 린치 수석 경제학자인 도널드 스트라스자임은 말한다. 런던과 뉴욕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홍콩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외국인 투자가 쉽고 세금이 낮으며 정부 간섭이 별로 없는 홍콩은 오랫동안 아시아에서 가장 자유 방임주의적인 경제 체제를 갖고 있었다. 이번 금융 위기를 맞아 세계 각국은 은행 등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홍콩은 예외일 것으로 믿고 있다. 그 때문에 이곳의 경쟁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란 얘기다.
홍콩 경제 저널의 편집국장인 만 척 페이는 “금융 혼란으로 정부의 역할이 커지겠지만 미국처럼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홍콩 관리들은 이번이 투자 은행을 설립할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앞으로는 미국 회사들과도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 UBS의 국제 경제학자인 폴 도노반은 헤지 펀드 등 투자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홍콩은 적은 규제에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큰 투자 손실을 본 사람들이 규제가 강한 나라의 안전도를 선호한다면 이는 홍콩에 마니어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느 쪽으로 사태가 전개될 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도노반 같은 사람들은 들은 현재 홍콩을 지역 금융의 중심이지만 세계 최고 수준은 아닌 싱가포르와 비슷한 정도로 본다. 그 이유는 홍콩의 경제 규모다. 인구 700만인 홍콩의 경제 규모는 워싱턴 주와 비슷하다. 또 경제학자들은 홍콩이 공해 등 삶의 질과 인력 풀, 상품 거래소 등 시장의 부족이라는 측면에서 경쟁 도시에 뒤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가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한 재능 있는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들 것은 분명하다. 현재 세계 금융 중심인 뉴욕과 런던에는 아시아만큼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다. 월가와 런던 금융 중심지인 시티에는 이사 짐을 싸는 직원들을 보는 것이 흔한 일이 됐다. 뉴욕시는 향후 2년 내 16만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 이 중 3만5,000개가 금융 관련 직종이다.
대부분의 국제 금융 회사는 홍콩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최근 이 가운데도 직원을 내보낸 곳이 있다. 홍콩 은행들도 불량 모기지 채권이나 파생 증권을 투자가들에게 팔기는 했지만 뉴욕이나 런던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이곳 은행들은 일반적으로 위험한 론을 해주는데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홍콩 은행들이 자본에 문제가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42세 난 두 아이의 어머니인 알리샤 마는 금융 위기에도 불구, 대체로 낙관적인 이곳 사람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 크레디스위스 프라이빗 뱅커 일자리를 잃은 그녀는 이틀 후 두개 다른 은행과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그녀는 또 해외로 나가 투자를 하고 싶어 하는 돈 많은 중국인들을 상대로 컨설팅 비즈니스를 할 것을 계획 중이다. 작년 중국인 백만장자 수는 20%가 증가했다. 메릴 린치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인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폭의 증가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중국에는 39만1,000명의 백만장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돈은 결국 어디론가 가야 한다”고 마는 말한다.
중국 경제의 호황을 타고 최근 홍콩은 신주 발행 수에 있어 뉴욕을 능가했다. 홍콩 최대 은행의 하나인 항생 은행의 부 매니저인 도널드 램은 홍콩 경제 성장의 70%는 이제 중국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9일 5,86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자 홍콩 사람들은 이를 크게 환영했다. 이들은 이것이 부동산 경기 침체와 수출 둔화로 동력을 잃고 있는 중국 경제를 살릴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중국 경기 침체는 광동주와 인접한 수 천 개의 공장을 지원하는 상가와 사무실은 물론 운송 및 물류 업계에 큰 타격을 줬다.
지난 3분기 3.4%를 기록한 홍콩의 실업률은 앞으로 수개월 동안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2003년처럼 8%까지 치솟으리라고는 보지 않고 있다.
정책 연구소인 스트러티직 액세스의 데이빗 다드웰은 지난 번 불황 때 고생한 경험이 이번 경기 침체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부동산 가격 폭락과 은행 도산,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들로 홍콩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은행 관계자들은 지금 모기지 총액이 부동산 가격의 70%를 넘지 않는다고 말한다. 홍콩 토지를 모두 소유하고 있는 정부는 과도한 건설을 규제함으로써 가격 하락을 막고 있다. 홍콩에서 20년 동안 산 영국 출신의 다드웰은 이번 금융 위기가 미 패권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라며 홍콩은 이 시련을 겪은 후 더 튼튼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이 세계 경제 성장의 기관차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다.
홍콩 미 상공회의소 회장인 리처드 부일스틱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홍콩은 중국의 관문으로 호황을 누렸다”며 “그러나 앞으로는 수천 개의 중국 기업이 홍콩을 세계로 진출하는 관문으로 여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은 중국에서 나오는 출구 역할을 맡을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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