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할머니와 손자들처럼 아이린 봄(84)과 찰리 로스(8)도 둘이서 함께 빠지는 사소한 즐거움들이 있다. “우린 영화보고, 피자 먹고 게임도 해요”라고 아이린 옆에 폭 파묻혀 앉은 찰리는 말한다. 그들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은 아니다. 몇 집 건너 이웃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일상의 ‘모험’을 얼마나 즐기는지는 한 눈에도 금방 알 수 있다. “찰리는 아침마다 전화하여 ‘할머니 안녕하세요?’라고 묻는 답니다” ‘손자’의 자상함에 감동한 ‘할머니’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폐쇄된 군기지에 마련된 입양가족-노인들의 커뮤니티
백인 할머니와 흑인 손자들이 서로를 돌보며 사는 곳
이곳은 ‘희망의 세대’(Generations of Hope)로 이름 지어진 커뮤니티다. 비영리 입양기관이 일리노이주 랜툴에 세운 어린이 양육을 위한 작은 마을로 대리 조부모까지 갖추고 있다. 폐쇄된 공군기지 자리에 마련된 ‘희망의 세대’에선 포스터 케어에서 ‘구출해온’ 어린이들을 이곳으로 이사 온 양부모들에게 입양시켜 살도록 하고 있다. 현재 10개의 가정에서 약 30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 이 커뮤니티는 또 서브렌트를 한 42명 노인들의 주거지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은 1990년대 중반 아동발달에 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브렌다 크라우스 어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는데 현재 켈로그재단으로부터 700만달러의 지원을 받아 11개주로 확대하는 플랜을 추진중이다. 어트박사는 하인츠재단으로 부터도 “입양가족과 노인들을 위한 커뮤니티 모델”을 성공적으로 설립한 것에 대해 25만 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물론 상금은 이 프로젝트에 보태야지요”라고 그는 말한다.
‘희망의 세대’는 차누트 공군기지가 폐쇄된 후 빈 주택에서 시작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그러나 앞으로 시작되는 다른 사이트 들은 기증받은 땅에서 맨손으로 시작해야 한다.
랜툴 커뮤니티의 1년 예산은 약 50만달러로 절반은 정부보조에서 나오지만 나머지는 민간기부와 노인주민들의 렌트로 충당한다.
양부모들은 공군용으로 지어졌던 랜치스타일의 주택에서 무료로 살면서 연 1만9000달러를 번다. 노인 주민들은 월 300달러의 싼 렌트를 지불하는 대신 가정교사나 가드닝 같은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한다.
어트박사는 이들 자원봉사 조부모들의 사랑을 받으며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보다 풍요롭게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프로그램의 정수는 부모나 조부모는 영원한 것이라는 믿음이다.
“아이를 키우는 두가지 방법이 있지요 ; 낳거나 입양입니다. 포스터 케어는 모순이예요”라고 일리노이대학의 연구원이었던 어트박사는 주장한다.
이곳의 아이들은 ‘희망의 세대’에 도착하기 전까지 4~5개의 포스터 홈을 거쳐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형제들이 한꺼번에 오기 때문에 배정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부모와 아이들의 입양관계는 까다롭고 신중하게 연결되는 데 비해 노인주민과 아이들의 관계는 훨씬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불우한 환경을 거쳐 온 아이들은 누구도 쉽게 신뢰하지 못하고 노인들 역시 이처럼 어렵게 자라온 아이들에게 적응하기 힘들어 한다. 또 좋은 일을 하려는 의도가 있다 해도 모든 이웃들의 마음이 잘 맞는 것도 아니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지만 대체로 커뮤니티는 무난하게 돌아가는 편이다.
아이린 봄이 이곳에 온 것은 14년전이다. 은퇴교사인 그녀는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는 미망인이었다. 삶이 외롭고 지루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그녀는 샤핑몰에서 우연히 ‘희망의 세대’에 관한 팜플렛을 본 후 옮겨왔다. “이곳에서 지난 세월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됐습니다. 내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과 어울리면 난 카우 걸처럼 느껴집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찰리네 4남매에게 사랑받는 할머니의 역할은 아이들의 입양엄마인 지넷 로스와의 친분에서 비롯되었다. 아이린의 이웃인 지넷은 하이스쿨에서 근무하며 4남매-딸 새넌(20), 아들 브랜든(19), 앤젤로(9), 그리고 찰리를 키우고 있다.
아이린은 브랜든의 가정교사로 시작했다. 무조건의 사랑을 베풀며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나오며 여러번 어려운 고비를 겪었지만 브랜든은 바른 길을 찾았다. 지금은 로즈 아일랜드에서 대학에 재학중인 브랜든은 아이린 할머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가끔 기습방문을 하기도 한다.
아이린의 집 선반에는 손주들의 사진들이 쭉 놓여있고 찰리는 할머니가 팩스턴에 있는 할머니 친척의 농장에 데리고 갔던 일을 자랑한다. “난 탈곡기도 직접 몰아봤어요”
‘희망의 세대’ 마을에 처음 살러 온 아이들 중엔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혼란스런 감정을 추스르기 힘든 외톨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아이린은 ‘난 널 이해할 수 있다’며 다독인다. 13세 때 아버지의 강압적 명령으로 그녀는 수도원에 보내졌었다. 전혀 수녀가 될 마음이 없어 울면서 지냈던 수많은 밤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녀가 성직을 떠난 것은 40대가 되어서였다.
이 마을의 아이들 대부분은 흑인인 반면 조부모가 되어주는 노인들은 대다수가 백인이다. 자신도 흑인인 찰리의 엄마 지넷은 “여기선 피부 빛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아요. 그러나 아이들에겐 바깥세계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려 애씁니다. 아무데서나 머리 히끗한 백인여성에게 달려가 할머니라고 부르며 얼싸안으면 안된다고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그러나 커뮤니티 안은 햇빛 쏟아지는 마을이다. 어트박사는 “아이린은 아마 오래오래 살 겁니다. 찰리가 고교를 졸업하는 것을 자신이 보아야한다고 생각하니까요”라고 말한다.
<뉴욕타임스-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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