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나는 아기들 이름 중 남자는 제이콥(Jacob), 여자는 에밀리(Emily)가 가장 많다. 제이콥은 1999년부터, 에밀리는 1996년부터 1위를 고수해오고 있다. 그 뒤를 남자는 마이클·이탄·조슈아·대니얼, 여자는 이사벨라·에마·아바·매디슨 순으로 잇는다. 존· 매리·피터·제인 등 전통적으로 선호돼온 이름은 이젠 10위 안에도 못 든다.
한국 아이들의 이름도 많이 변했다. 영자·순희·철수·복남 따위는 볼 수 없다. 돌림자를 따르거나 작명소에 가서 돈 주고 지은 딱딱한 이름도 거의 없다. 대신 (이)기쁨, (고)은별, (강)바람, (금)나라, (한)송이 등 참신한 한글 이름이 많다. 업소들까지도 ‘까끌래뽀끌래’(미용실), ‘돼지땡기는 날’(식당) 등 톡톡 튀는 상호로 고객의 눈길을 끈다.
미국에는 작명가들이 이름을 짓는 상품이 있다. 자동차다. 새 모델을 내놓는 메이커들은 디자인 못지않게 ‘marque’(차 이름)를 중시한다. 이름이 멋져야 잘 팔리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진이 자기들 자식이름 짓는 것만큼이나 신경 쓰기 때문에 마크 작명작업이 보통 수개월씩 걸리고 비용도 경우에 따라 20만 달러 이상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기획·설계·제·작광고 등 일선분야 실무자들이 신형 차의 이미지에 걸맞은 이름을 모조리 적어낸다. 거기에 전문 작명회사가 고안한 신조어(neologism)가 추가돼 일차후보 이름이 대개 100개를 상회한다. 이들 이름은 중역회의에서 10~20개로 축소된 후 소비자들의 반응조사를 통해 다시 6~7개로 줄어든다. 그 뒤 작명회사가 이들과 똑같거나 흡사한 이름이 이미 사용됐는지 여부를 조사한 후 중역회의가 그중 한 개를 최종 선택한다.
반세기 전에 나온 포드 차 중에 ‘엣즐(Edsel)’이 있다. 포드사는 당대 유명시인인 마리안 무어가 작명한 ‘은칼(Silversword, 야생화)’ 등 멋진 이름 5~6 개와 일반인들이 추천한 6,00여개의 이름을 모두 제쳐두고 창업주(헨리 포드)의 아들이름을 따 ‘엣즐‘이라고 명명했다. 그 차가 어찌나 안 팔렸던지 지금도 실패한 자동차 모델은 ‘엣즐’로 불린다.
요즘 미국시장을 주름잡는 도요타의 ‘캠리’(Camry)와 ‘코롤라’(Corola)는 ‘왕관’(Crown)이라는 일본말의 로마표기이고 혼다의 ‘어코드’(Accord)는 ‘일치’를 뜻하는 영어 보통명사이다. 근래엔 특별한 의미를 암시하는 신조어 마크가 유행한다. ‘애큐라’(Acura)는 ‘정확’(Accurate)을, ‘렉서스’(Lexus)는 ‘고급’(Luxury)을, ‘올티마’(Altima)는 ‘최고’(Ultimate)를, ‘인피니티’(Infiniti)는 ‘무한대’(Infinite)를 각각 뜻하는 잘된 신조어로 꼽힌다.
현대차가 지난주 시애틀에서 고급신차 ‘제네시스(Genesis)’의 시승식을 가졌다. 모방이나 개조가 아닌 창조(기원)를 의미하는 ‘제네시스’는 현대 수출차의 효시였던 ‘엑셀’(Excel, 뛰어나다는 뜻) 이후 가장 멋진 이름이다. 특히, 제네시스는 기독교인들에겐 구약성경의 ‘창세기’로 더 친근하다. 그 책에 나오는 아브람-사래 부부와 손자 제이콥(야곱)은 여호와가 직접 지어준 아브라함, 사라, 이스라엘 등 새 이름으로 바꾼 뒤 큰 형통을 누렸다. 현대차 제네시스도 뛰어난 성능에 더해 멋진 이름 덕분에 대박을 터뜨릴 것 같은 감이 든다.
그렇긴 해도 ‘현대’(Hyundai)라는 회사명이 좀 찜찜하다. 미국인들은 ‘Hyun’을 대개 헌(Hun)으로 발음한다. ‘Hun’은 4~5세기 유럽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아시아의 야만인’(훈족)을 뜻한다. 기아차의 ‘KIA’도 썩 좋은 마크는 아니다. ‘MIA’가 ‘전쟁실종자’(Missing In Action)의 약자이듯, KIA는 ‘전사자’(Killed In Action)를 연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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