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오세티아 독립 싸고 충돌
그루지야, 독립선언 남오세티아 탈환위해 진군 수도 점령
러, 공군기지 공습후 탱크 수백대 앞세워 국경선 넘어
“주민 1천명 이상 희생… 거리·건물에 시신 널려”
그루지야가 지난 1992년 자치를 선언하고 분리해 나간 자국내 남오세티아를 탈환하기 위해 군사작전을 개시한 가운데 러시아군이 8일 그루지야 공군기지 등을 공습하고 수백대의 탱크를 이끌고 남오세티아로 진입,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남오세티아 분리주의자들과 잦은 교전을 벌이던 그루지야는 7일 오후 늦게 휴전을 선언했다가 수시간이 지난 8일 새벽 남오세티아 수도 츠힌발리에 대한 공격을 재개했다.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TV 성명을 통해 그루지야 정부군이 츠힌발리와 주변 고원지대, 주요 마을 등 남오세티아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이날 오후 러시아군과 탱크가 츠힌발리 외곽까지 진출하면서 츠힌발리를 장악하고 있는 그루지야군과 대규모 총격전이 예상되고 있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보도했다.
남오세티아 지도자 에두아드 코코이티는 그루지야의 공격으로 수백명의 민간인들이 사망했다고 주장했고 러시아 군 대변인은 러시아 평화유지군 병사 10명이 숨지고 30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그루지야 재무장관은 러시아군이 그루지야 공군기지 2군데를 공습했다며 4대의 러시아 군용기를 격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루지야가 7일 휴전을 선언했다가 8일 공격을 감행한 것은 세계의 이목이 베이징 올림픽에 집중되고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중국을 방문한 때를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루지야 침공 소식을 접한 푸틴 총리는 “남오세티아에서 전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한편 푸틴과 함께 베이징에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특사를 분쟁지역에 파견했으며 유엔 안보리 회의가 이날 오후 늦게 소집됐다.
남오세티아는 주민들의 대부분이 러시아 국민들로 1992년 전쟁에서 그루지야로부터 사실상 독립해 현지 러시아군이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고 있다. 그루지야는 러시아군이 평화유지 목적이 아니라 남오세티아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거의 2세기 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온 그루지야는 미국의 우방국으로 이라크에 약 2,000명을 파견해 영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지원한 나라이며 미국에선 지난달 해병대 1,000명 이상을 그루지야에 파견해 군사훈련을 도왔었다.
미 국무부의 곤잘로 갈레고스 대변인은 “우리는 그루지야의 영토 보존을 지지한다”며 “휴전을 확보하기 위해 중재 노력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남오세티아에서 민족청소가 자행됐다는 보고가 있다”면서 그루지야의 침공을 규탄했다. 테이무라즈 카사예프 남오세티아 민족장관은 그루지야군 공격으로 1,000명 이상의 츠힌발리 시민들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츠힌발리에서 대피한 피난민 류드밀라 오스타예바(50)는 “시신이 거리와 건물 잔해, 자동차 안에 널려 있다”며 “피해를 입지 않은 건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우정아 기자>
흑해·카스피해 연결 에너지 자원 중간 통로
■그루지야는 어떤 나라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이루는 카프카즈(영어명 코카서스) 산맥의 한 자라에 위치한 그루지야는 카스피해와 흑해를 연결하면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각종 에너지 자원의 중간 통로 역할을 해 서방과 러시아로부터 항상 주목을 받아왔다.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루지야는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로 주변국들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고 1918년 제정러시아로부터 독립했다가 1921년 볼셰비키 붉은 군대의 침공으로 구 소련연방의 일원이 됐다.
1991년 구소련의 몰락과 함께 독립했지만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아 2개 자치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반군 세력과 전쟁을 치러야 했고 유엔의 중재로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이후 그루지야에는 서방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거세게 일었고 지난 2003년 장미혁명으로 친미 성향의 미하일 사카쉬빌리 정권이 탄생했다.
흑해 연안에 위치한 압하지야와 카프카즈 산지에 위치한 남오세티아는 영토 통합을 원하는 사카쉬빌리에겐 골칫거리고 두 자치공화국에 평화 유지 명목으로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 군대도 눈엣가시다.
두 자치공화국은 분리.독립을 호시탐탐 노리면서 그루지야 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지난 2006년 남오세티아는 주민 투표를 실시, 독립에 찬성했지만 러시아를 제외한 미국 등 서방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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