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초에 문화, 예술, 역사의 도시이자 버드와이저 맥주의 원조를 탄생시킨 도시로, 여러 사람들이 반드시 한번 꼭 가보라 권장했던 프라하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독일에서 기차를 타고 서서히 입성하여 호텔에 체크인한 다음 거리로 나서니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길가에 나부끼는 삼성의 광고 깃발이었다. 요즈음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도시엘 가도 볼 수 있는 광경이라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웬걸, 대로 하나를 지나 오른쪽으로 틀면 그 거리에도 삼성 깃발이 길 양쪽에 가로수처럼 주루루 꽂혀있고,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마치 삼성이 프라하 도시 전체를 접수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태연한척 하려해도 약간 우쭐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다음날 프라하 캐슬을 둘러보고 서서히 강변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존 레논의 벽’으로 명명된 사랑, 평화, 로큰롤을 외치는 온갖 메시지로 뒤덮인 벽 근처의 한 담장에 누군가가 대문짝만한 글씨로 ‘독도는 우리땅’ 이란 낙서를 남긴 것이 눈에 뜨였다. 체코 프라하 골목길에서 한글을 발견한 것이 반갑기 보다는 불현듯 등장한 독도에 삼성의 깃발이 겹쳐져 떠오르며 두개의 이미지 사이의 확연한 거리감에 약간의 당혹감을 느꼈었다.
요즈음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쇠고기 파동을 보면서 문득 그때 그 프라하에서의 착잡한 기분이 다시 떠올려졌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고 그것을 더 잘하기 위해 자유뮤역협정도 추진하며 상당수 국민이 지구촌 구석구석 여행을 하는 아주 국제화된 일면과, 머나먼 땅 아무 관련도 없는 나라 골목길에서 우리 밖에 알아듣지 못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우리밖에 읽을 수 없는 글자로 대갈일성하는 지극히 국제적이지 못한 일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의 모습임을 되새기면서.
쇠고기 파동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과 미국에 대한 불신이 커다란 이유로 보인다. 불만이 있다는데도 마구 밀어붙이니까 기분이 나쁘다는 것 이고, 믿지 못하겠다는데 그럴 리가 있냐는 태도를 보이니까 더욱 기분 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사태가 흐르자 다양한 그룹들이 그에 편승하여 촛불 집회요 뭐요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MB가 대통령에 나왔을 때 나는 그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CEO라는 점 자체는 긍정적 일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불도저식 CEO’ 라는 점에서 걱정이 되었었다. 과연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도 불도저가 필요한지 의문이었고 그 방식이 먹혀들까도 의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MB는 불도저 수난의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러나 나는 MB에 대해 절망적이지는 않다. 그는 일도 실컷 해보고, 돈도 실컷 벌어보고, 남의 인정도 실컷 받고, 그렇게 원하던 대통령도 되었다. 이제 진짜로 그 일을 잘 해내어 한국 사회의 발전을 이루고 싶은 생각 밖에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그가 지극히 실용적인 비즈니스맨이길 바란다. 자신의 최후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떠한 희생 - 그것이 자신의 에고를 죽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 할지라도 - 그것마저도 감수할 정도로 실용적인.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을 각 분야에 끌어들여 맘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 잠자고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표출할 수 있게 한다면 나라의 공기가 달라지고 촛불시위를 벌일 구실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몇몇 기업들은 이미 이렇게 하여 세계 각 도시에 깃발을 휘날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모처럼 대형 붓과 페인트를 구해 이역만리에서 남의 담장에 한글로 낙서를 할 바에는 그럴듯한 시 구절이라도 한줄 척 써 놓는 발상을 할 수 있고, 미국이든 어느 다른 나라든 욕하고 미워하기 보다는 그들보다 더 좋은 제도와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는 생산적 오기와 진취적 사고를 하는 젊은이들이 쑥쑥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해 줄 것을 기대한 다.
김유경
Whole Wide World In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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