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에서 교수직을 시작한 80년대 초반부터 대학교 외국어 전공학과에서는 해당 외국어로 강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모든 교수들이 원어 강의를 할 수가 없었고, 학생들이 못 알아듣는다고 해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인 교수가 정상적인 원어 강의를 하려면 다년간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학위를 취득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강의 중에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도 원어로 하고, 학생들이 지은 외국어 작문도 고쳐줘야 하는 등 해당 외국어를 완전히 구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 대학에서는 한국인 교수는 그만 두고 직접 외국인 교수를 더 많이 채용해서 학생들이 발음도 배우고 자연스런 원어 강의에 익숙토록 했다.
지금 한국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원어로 강의하고, 다른 과목들까지 영어로 가르치는 방안을 얘기하고 있다. 한 마디로 대학교 외국어 학과에서도 아직 원어 강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마당에 불가능한 얘기다. 영어 교사들이 대학에 다닐 때부터 영어로 교육을 받았어야 자기들도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칠 때 원어로 강의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게다가 외국 유학을 다녀와야 문화적 배경까지도 강의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당장은 원어민 교사를 더 많이 채용하고, 우선 대학의 외국어 학과에서부터 원어 강의를 실시해야 할 것이다.
외국어가 아닌 다른 과목들도 영어로 강의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럴 필요도 없이 우리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모국어를 가지고 있고,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면 우리의 국어를 말살한다는 뜻이다. 보통 과목들을 왜 외국어로 배워야 한단 말인가. 모국어로 배워도 어려운 학과목들을 영어로 배울 이유가 없다.
게다가 수학이나 물리나 역사 등 다른 과목들을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교사는 영어권 국가에서 그런 과목을 공부하고 학위를 따 온 사람들뿐이니, 강의할 사람도 없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교육정책은 주객이 전도되고 근본까지 흔들리고 있다. 외국어가 많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외국어는 목적이 아니고 수단일 뿐이다. 외국어를 잘 하기 위해서 대학부터 외국어 과목은 원어 강의를 하도록 하고, 우선 외국인 교수를 많이 채용해야 하며 앞으로도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는 대학에서 영어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들만 채용해야 할 것이다.
섣부른 회화를 조금 한다고 하여 아무나 영어 교사로 채용하면, 영어 교육의 뿌리가 흔들리고, 문법을 비롯한 학문적 배경은 강의를 못하므로 결국 엉터리 교육을 하게 되어 돈과 노력의 낭비를 가져올 뿐이다. 하나의 외국어 교육은 그 문화권 전체에 대한 지식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외국어의 구사는 모국어의 튼튼한 기초와 바탕 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조기 교육을 한다고 해서, 한국어 맞춤법도 모르는 어린이들을 마구 외국으로 보내어 서투른 회화와 속된 일상적 표현만 배워 오게 하는 것도 시간과 돈의 낭비이다. 우리는 섣부른 일상적 회화가 전부가 아닌, 문법과 문화적 바탕 위에 올바로 정확히 구사하는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과목들은 모두 한국어로 착실히 배워, 올바른 모국어의 구사를 우선 익힌 학생들이 정상적인 한국적 교육의 바탕 위에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여럿 구사할 수 있도록 부모와 교사들이 헌신적으로 지도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한국적인 가치관과 인간적인 기초가 잡히기도 전에 무방비적인 외국어 범람에 희생 되도록 방치하면 안 될 것이다. 영어가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가치와 존속 위에 입각한 한국인의 정체성이 확립될 때 모든 외국 문화를 올바로 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연행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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