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역사적 공연이 펼쳐진 평양의 동평양 대극장. 거슈윈과 바그너, 드보르작의 선율들, 북한 국가와 미국 국가, 그리고 아리랑이 울려 퍼진 감동의 현장에는 한 특별한 손님이 앉아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희끗희끗한 머리, 동그란 얼굴에 생기 넘치는 한 노부인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로 알려진 이 부인은 75세의 요코 나가에 체스키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일본 여성으로 이탈리아 백작과 결혼해 체스키나 백작부인이 되었다. WSJ 보도에 의하면 뉴욕 필의 이번 평양 방문을 스폰서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뉴욕 필은 이번 평양 방문에 앞서 지난 11일부터 아시아의 5개 도시를 순회 공연했다. 이들 5개 도시 공연은 크레딧 스위스라는 기업이 후원했다. 그런데 북한 공연에 대해서는 선뜻 후원할 기업이 없었다. 북한 관련 행사를 후원했다가 정치적으로 어떤 궁지에 몰릴 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치와 무관한 체스키나 부인이 스폰서를 자청했다. 연주자와 스탭 등 280명 방문단의 북한 내 숙식을 그가 맡았고, MBC 방송과 아시아나 항공이 일행의 교통편을 제공했다.
상당한 비용이 들었을 이번 뉴욕 필의 평양 방문을 그가 후원한 것은 음악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고 그는 밝혔다. 말이나 외교가 힘을 못 쓰는 곳에서 음악은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1932년 쿠슈 섬의 쿠마모토에서 태어난 요코 나가에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가정환경은 비교적 유복 했지만 집안에 문제가 많아서 그때마다 음악을 도피처로 삼으며 자랐다고 한다. 도쿄국립대학 음대에서 하프를 전공하고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 멤버로 연주할 정도로 그 자신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
대학 동창과 결혼 했다가 2년 후 이혼한 그는 1960년 이탈리아에 장학생으로 유학을 가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베니스에서 하프를 공부하던 어느 날 카페에서 렌조 체스키나 백작을 만난 것이었다.
요코 보다 26살이 연상이었던 백작은 다이아몬드, 모피, 금박 하프 등 온갖 선물공세를 펼치면서 구애를 했다고 한다. 결국 1977년 두 사람은 백작이 70세 때 결혼을 했다. 하지만 5년 후 백작이 사망했고, 이어 10년에 걸친 소송 끝에 그는 1억9,000만 달러 상당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이후 그는 좋아하는 음악가들을 후원하고 전 세계를 무대로 그들의 연주를 쫓아다니는 일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뉴욕 필, 카네기 홀, 이스라엘 필, 키로프 오케스트라, 국제 하프 콘서트 등을 그가 후원하고 있고 몇몇 음악가들은 가족처럼 챙기고 있다.
특히 러시아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는 그가 손자처럼 보살피는 음악가이다. 90년대 중반 벤게로프가 스위스에서 독감에 걸려 앓아눕자 체스키나 부인은 즉시 비행기를 타고 베니스에서 날아가 병간호를 했을 정도이다.
재산은 많고 자녀는 없는 그에게 삶의 유일한 낙은 음악 사랑이다. 한 일본 여성의 음악 사랑이 어쩌면 북한의 얼어붙은 가슴에 봄바람을 불어넣는 밑거름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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