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인 판단은 역사의 몫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난 선거에서 보여준 유권자들의 판단은 실패한 정부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진보정권에 대한 피로감,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 후보가 노대통령과는 다른 스타일의 지도자일 것이라는 믿음이 큰 기여를 했다.
그러면 노무현 정부는 왜 실패 했는가? 노대통령의 실언, 정책의 부재, 핵심 참모들의 아마추어리즘등이 그 이유로 거론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면 그 가장 큰 이유는 노무현식 정치의 실패에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있어도 이를 실현하지 못하면 별 소용이 없으며 정책을 추진하고 실현하는 힘은 정치력에 달려 있다. 국민을 설득하고 야당을 포용하면서 바람직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정치를 하지 못했다. 당정분리를 한다며 여당과의 긴밀한 협조를 소홀히 했고 야당은 물론 보수언론과 각을 세우면서 임기 내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덧셈이 아닌 뺄셈의 정치를 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유심히 살펴보면 훗날 평가를 받을 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 정치개혁등 한국사회의 투명성 제고나 전시 작전권 이양이나 한미 자유 무역협정도 올바른 방향을 설정한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을 실현하고 뒷바침 하는 정치력이 부족했다. 어설픈 언행으로 대통령 탄핵을 불러 왔고 탄핵의 반사이익으로 얻은 국회 과반수 의석이라는 잇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대미 관계에 있어서도 이라크 파병이나 작전권 이양, 한미 무역협정등 미국이 바라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불필요한 자극적 발언으로 미국측의 감정만 상하게 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은 CEO나 행정가로서의 역량은 검증을 받았지만 그의 정치력은 아직 미지수이다. 야당을 상대하고 외교 안보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대통령은 시장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벌써 부터 이 대통령의 정치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작고 강한 정부를 만들겠다던 정부 조직 개정안은 그 취지를 무색케 할 정도로 얼버무린채 마무리되고 말았다. 물론 야당에게 그 책임을 돌릴 수도 있지만 야당을 설득하면서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력은 대통령의 몫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력은 총선후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특히 예상대로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압승할 경우다. 박근혜 전대표등 당의 리더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통치기반을 구축할 것인지, 아니면 역대 대통령이 그러했듯이 이명박당을 만들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처한 국내외적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과제인 경제 살리기는 대내외적인 환경이 호의적이지 않아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대외적으로도 북핵문제등 풀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과제를 풀기 위해선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이 일차적 문제이겠지만 국민적 합의를 모으고 야당과 대화하면서 이를 실편해 가는 것은 결국 정치의 영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의 힘을 과소 평가하거나 무시해서는 결코 안된다.
얼마전 한나라당의 중진의원이 필자가 있는 연구소에 객원연구원으로 머문적이 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자녀들이 학교에서 부모의 직업란에 정치인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공무원이라고 썼다고 한다. 정치인의 자녀라는 것이 부끄러워서.
정치나 정치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나 정치인의 역할을 평가절하 해서는 안된다. 어려운 시대일 수록 미래에 대한 비젼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 한국사회는 이러한 대통령을 원하고 있다.
신기욱
스탠포드 대학교
아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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