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된 영문인지 새해를 맞이하는 흥분된 마음과 기대가 해마다 그 농도를 떨어뜨린다. 설날아침이면 어김없이 TV를 통하여 방영되는 로즈 퍼레이드를 놓친다든지, 뉴욕의 타임스스퀘어에서 벌어지는 젊음의 열기로 가득 찬 새해의 카운트다운을 보려고 자정까지 기다린다든지, 그러한 연중행사에 대하여 해가 갈수록 시들해지는 우리부부의 반응이 그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아예 TV도 켜지 않고 지나간다. 이것이 뜻하는 이유를 나는 안다.
벌써 그것이 몇 년째인가. 아무래도 이것은 어떤 변화가 나에게 일어나는 조짐임에 틀림이 없다. 아마도 모두 자라서 이제는 우리의 곁을 떠나간 아이들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며, 우리의 나이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멀리서 사는 아이들이 명절 때마다 부모를 보려고 온가족을 거느리고 비행기를 탄다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과 그래서 홀가분한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 하지만 연세가 많으신 시어머니를 모시는 우리로서는 그러한 일을 실천한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두 달 전에 우리의 곁을 떠나서 천국으로 가신 시어머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었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안목에도 변화를 주신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일년을 단위로 바라보던 세월을 이제는 한 사람의 일생을 단위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어린 손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할아버지가 나오는 광고사진을 보는 때가 있다. 그 노인의 행복 속에는 서두름이나 염려하는 모습은 없고 어딘지 모르게 나오는 편안함, 자신의 모습도 객관화한 듯한 여유,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느낌 같은 것이 보인다.
그것은 내가 전에 알지 못하던 인생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20년 전에 친구의 젊은 죽음을 대하던 우리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왔다. 이제는 더 이상 친구의 죽음이 이상한 일이 아니며,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삶의 한 부분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세대는 가고 새로운 세대가 주역을 맡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로 인해서,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의 단위를 일년으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생이란 하루의 시작과 끝남의 연속이며, 모든 사람의 일생도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에 그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하루도 변함없이 성실하고 부지런히 살았던 사람이 반드시 값진 삶을 살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헛된 일로 시간을 낭비하는 듯 하여서 주위의 사람들을 걱정시키던 사람의 일생이 남보다 훨씬 훌륭하였던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헛되어 보이던 일들이 사실은 용기가 필요했으며, 보통사람들이 감히 할 수 없었던 노력과 남몰래 흘린 눈물의 결정판임을 뒤늦게 알게도 된다. 어떤 경우에는 그 공적으로 인하여 후세들이 두고두고 혜택을 받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새해를 맞아 나는 어쩔 수 없이 생각을 또다시 정리해 본다. 매일을 열심히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일생을 가치 있게 살아갈 것인가. 쉽고도 어려운 일인 듯하다.
임문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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