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시대의 막이 올랐다. 이명박 시대를 이해하려면 갖은 회오리바람 속에서 이명박 후보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느냐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후보의 압승에 여러 가지 메시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권심판 선거였다.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이인제 후보의 표를 모두 합해도 35.7%로 이명박 후보의 48.7%에 못 미친다. 범여 세력이 후보 단일화를 못해 보수 세력에 패배했다는 논리는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명박과 이회창(15.1%) 후보의 표를 합하면 63.8%다.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뿐만 아니라 좌파 비슷한 세력은 모조리 외면했다. 투표율이 낮았던 것은 이명박이나 이회창 유권자들이 아니라 후보자에 실망한 범여 후보 지지자들의 불참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막판에 “내가 BBK를 창립했습니다”라는 엄청난 동영상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에 대한 국민 분노를 정동영 후보가 조직화 하는데 실패한 것은 국민들의 ‘노무현과 노무현 비슷한 사람들’에 대한 규탄 결심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왕년의 ‘노사모’가 “노무현에게 사기당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변했다는 조크가 생겨날 정도다. 말만 무성하고 실천력이 빈약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사실상 이명박 당선의 일등공신이다.
‘이명박 압승’을 자세히 살펴보면 좌파세력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담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명박 후보가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인물로 평가 받아 승리했다는 이야기는 승리 원인의 핵심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의 맥을 끊어 놓아야겠다는 국민의 비장한 각오 덕분이다. 만약 이명박 후보가 범여 후보로 입후보했다면 당선이 되었을까. 불가능하다고 본다. 로이터 통신이 “한국에서는 보수 세력에서 개를 후보자로 내놓아도 당선될 것”이라고 실례되는 표현을 했지만 사회 밑바닥에 흐르는 국민들의 정서는 제대로 파악한 것이라고 본다.
민심이 천심이다. 이회창, 손학규, 정동영, 문국현, 이인제씨 등 유능한 정치인들이 민심을 읽는데 실패했다. 통합신당이 대통령 당선자를 특검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도 민심을 못 읽은 또 하나의 실수라고 본다. 국민은 정치인들의 싸움을 지겨워하고 있다. 특검은 양날을 지니고 있으며 역풍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만약 조사 결과 이명박 당선자의 혐의가 별 것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때는 신당이 괴멸할지도 모른다. 국회의 노무현 불신임 파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가가 살아있는 교과서다.
선거기간 내내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은 것은 묻지 마 지지세력 덕분이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 다음날 동작동 국립묘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방명록에 “국민을 잘 섬기겠습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습니다”라고 쓴 것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한 처신이라고 본다. 도덕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압승한 그는 국민들에게 엄청난 빚을 안고 있다. 선거에서 자신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들이나 인신공격을 한 사람들에게 보복한다면 그는 ‘제2의 노무현’이 될 것이다. 겸손이 이명박 대통령의 필수요건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당선자의 인사를 보면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윤곽이 떠오른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려면 인사에서부터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끼리끼리 해먹는 노무현 스타일 인사에는 국민이 질렸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 - 그것이 있어야 국민 사기에 불을 댕길 수 있으며 경제 회복을 위한 국민 참여의 에너지를 생산해낼 수 있다.
<서울에서>
이철 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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